[이철영의 정사신] '정쟁'의 불씨가 된 尹 대통령식 '국민통합'
검사 시절 '중대범죄'라던 尹대통령, 지금은 왜 사면했나
MB·김경수 사면이 국민통합? 정치적 논쟁으로 또 분열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강가의 한 낚시꾼이 있다. 그의 바구니에는 잡은 물고기가 가득했다. 낚시를 물에 넣기만 하면 물고기를 잡는 모습에 이를 지켜보는 이들로부터 감탄을 자아냈다. 그런데 이 낚시꾼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바구니에 있던 물고기를 다시 다 놓아주었다. 사람들은 의아했고, 그 이유를 물었다. "내가 잡았으니 놓아주는 것도 제 마음이죠." 주변 사람들은 낚시꾼의 말이 틀리지 않으니 이해하면서도 왜 잡았을까 의문을 가지게 됐다.
물고기를 잡은 사람만이 다시 물에 놓아줄 권한이 있다.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놓아줄 권한은 없다. 이 이야기는 어떤 책의 내용은 아니다. 지난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행사한 사면을 보며 든 생각에 적어본 것이다.
윤 대통령은 27일 국무회의에서 신년 특별사면·감형·복권에 대한 안건을 논의하며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서 신중하게 사면 대상과 범위를 결정했다"며 "이번 사면을 통해 국력을 하나로 모아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치인, 공직자, 선거사범, 특별배려 수형자 등 1373명에 대한 신년 특별사면·복권을 단행했다.
이번 사면의 명분은 국력을 하나로 모으는 이른바 국민통합에 있다는 게 윤 대통령과 정부의 입장이다. 그런데 경제인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의아하다. 또, 사면·복권 대상 정치인(9명)과 고위공직자 66명에는 논란의 인물이 다수로 시선이 곱지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됐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 조원동 전 경제수석, 우병우 전 민정수석, 박근혜 씨 측근 3인방인 안봉근·이재만·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윤 대통령 핵심 참모인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은 유죄가 확정된 지 불과 2개월 만에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또, 원세훈 전 국정원장,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사면·복권됐다. 물론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도 사면됐다.
대상자 면면을 보면 윤 대통령과 인연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윤 대통령이 검찰 시절 수사 지휘해 구속한 피의자들이다. 윤 대통령은 검사시절 이들에 대해 '반헌법적 행위' '중대 범죄'라며 엄벌을 요구하고 유죄를 받아냈다. 그랬던 이들을 대통령이 된 후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으로 다시 또 사면·복권 시켜주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윤 대통령의 이번 사면은 일단 잡고, 다시 물에 놓아주는 낚시꾼과 다름없어 보인다.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당시 정권의 외압을 폭로하며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은 이 발언으로 일약 국민의 주목을 받는 검사가 됐다.
이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검팀을 거쳐 문재인 정부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을 지냈다. 사면된 사람 대부분은 현재의 '윤석열'을 만드는 데 큰 공이 있다는 해석은 무리일까. 분명한 사실은 검사 윤석열에게 있어 국정원 수사와 국정농단 수사가 전국적 인지도를 만들고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의 바람처럼 이들의 사면을 통해 '국민통합'은 이뤄질까.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갈등과 분열만 더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심지어 이번 사면 대상자에 친이계와 친박계가 다수를 차지하면서 친이계와 친박계의 대통합이라는 말도 나온다. 또, 윤 대통령이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집권 기반을 다지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국민통합을 내세운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언제나 많은 논란을 만들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기 말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치권은 대체로 사면이 단행되면 '내편 챙기기' '끼워 맞추기' 등으로 비판했다. 중대범죄를 저지른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의 사면이 절대 국민통합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국민은 '통합'이라는 대의보다, 권력의 무게를 다시 한번 실감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진정한 국민통합은 윤 대통령과 정치권이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민심'을 향할 때 가능하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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