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남은 ‘도로 위 최저임금법’…안전운임제 운명은? [이슈+]

구현모 2022. 12. 28.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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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 안전운임제 원점 재검토 방침 굳힌듯
노동계 안전사고 우려…재계는 시장경제 따라야
與 “연장 안해” vs 野 “대국민 약속 헌신짝 취급”

“화물차주에게 적정수준 임금 보장 없이는 빛 좋은 개살구입니다.”

노사관계 전문가인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는 28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현재 정부·여당이 일몰을 나흘 앞둔 안전운임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방침을 세운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이 교수는 “현 정부가 당장은 힘으로 누를 수 있겠지만 안전운임제가 일몰되고 화물차주의 과로·과속·과적 운전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노동계와의 갈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로 위의 최저임금법으로 불리는 안전운임제의 일몰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국회에 계류된 3년 연장안을 두고 여야가 여전히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일몰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노동계에서는 당장 내년부터 15시간 운전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조합원들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민영화금지법 제정,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하고 안전운임제 사수를 결의하고 있다. 뉴스1
◆안전운임제 시행 후 어떤 점들이 달라졌을까?

안전운임제는 화물차 기사들의 과로 및 과속 운전을 막기 위해 안전 운임보다 낮은 운임을 지급하는 경우 화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다. 노동계에서는 안전운임제가 일몰되면 화물차 기사들이 또다시 과로에 시달릴 뿐 아니라 이로 인한 안전사고도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실제로 안전운임제가 시행된 이후부터는 화물차 교통사고와 과적 적발 건수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 5월에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분석 결과 자료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적용 대상인 컨테이너와 시멘트 차종을 포함한 사업용 특수 견인차 교통사고 건수는 안전운임제 시행 전인 2019년 690건에서 2020년 674건으로 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용 특수 견인차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자는 2019년 1079명에서 2020년 991명으로 8.2% 줄었다. 다만 같은 기간 사망자 수는 21명에서 25명으로 19.0% 늘었고, 과속 적발 건수는 220건에서 224건으로 1.8% 증가하는 등 안전운임제가 과적·과속 개선에 미치는 영향이 명확하지는 않았다. 

다만 안전운임제로 인해 화물차주의 근무 여건이 개선된 것으로 분석됐다. 컨테이너 화물차주의 수입은 2019년 월평균 300만원에서 2021년 373만원으로 24.3% 늘었고, 시멘트 화물차주의 수입은 같은 기간 201만원에서 424만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월평균 업무시간은 컨테이너 화물차주의 경우 292.1시간에서 276.5시간으로 5.3% 감소했고, 시멘트 화물차주는 375.8시간에서 333.2시간으로 11.3% 줄었다.

우리보다 먼저 안전운임제를 시행했다가 2016년 폐지했던 호주 정부도 내년 상반기부터 안전운임제를 재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안전운임제가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약화하고 도로안전의 효과성을 검증받지 못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을 비롯해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단은 지난 26일 국회를 방문해 김도읍 법사위원장, 법사위원인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 등을 만나 이런 내용의 건의문을 전달했다. 정 부회장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우리만 도입한 안전운임제는 정부가 정한 가격을 화주에게 강제하고 있어 시장경제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될 뿐만 아니라 당초 도입 명분으로 내세웠던 교통안전 확보에도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사진=뉴스1
◆‘3년 연장안’ 본회의 상정 불발 가능성 높아

앞서 여야는 28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일몰을 앞둔 안전운임제, 추가 근로제 등 쟁점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지만, 견해차로 법제사법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전날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과 한국가스공사법 개정안 등 비쟁점 법안 등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만 진행될 전망이다.

특히 키를 쥐고 있는 정부·여당이 일몰 연장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연장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여권은 애당초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에는 반대하면서도 일몰을 3년 연장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지만 화물연대의 파업 이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여당 안인 3년 연장안을 수용하겠다며 국회 국토교통위에서 화물자동차법 개정안(안전운임제)을 단독 의결했지만,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어 법안은 가로막혀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전날 기자들과 만나 “안전운임제 관련해 저희가 연장할 생각 없고 정부도 안전운임제가 이름부터 잘못됐고 기능도 잘못됐다 해서 제도 재조정 계획이 있어서 동의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28일 광주광역시당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광주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에서 “3년 연장안은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가 노정 교섭을 통해 발표한 ‘사회적 합의’”라고 강조하며 “그 후에도 정부의 입장발표, 당정 협의 결과 등 정부·여당이 세 번에 걸쳐 공식 약속한 사안이다. 정부·여당이 뻔뻔하게 돌변해서 대국민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졌다”고 비판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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