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2022. 12. 28.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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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재벌집…’ 결말 호불호
사람들의 경험·지식·정서 따라
받아들이는 정보와 관점 달라
훗날 2022년은 어떻게 기억할까

지난 몇 주간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의 감정 이입이 너무 컸는지 작가가 제시한 결말에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것 같다. 결말은 하나인데 왜 사람들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일까? 조금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우리는 가끔 과거 일에 대해 가족이나 친구들과 기억이 엇갈려 다투는 일이 있다. 사실 우리가 어떤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은 우리가 경험한 일을 기존 경험과 그때의 감정을 통합해 재구성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인출하는 것이니 다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1950년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사람들의 이런 행동을 잘 묘사한 영화 ‘라쇼몽’을 연출한다. 어떤 사무라이의 죽음이란 한 사건을 목격한 4명이 관청에 가서 모두 다른 증언을 한다. 이후 어떤 한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이 각기 상반된 기억 혹은 해석을 내놓는 현상을 ‘라쇼몽 효과’라 부르게 되었다. 이는 한 가지 사실이라도 그 사실을 겪은 개인의 기존 경험, 그간 축적된 지식, 동기나 정서로 인해 뇌 속에 저장된 기억은 객관적이지 못함을 설명한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드라마 결말을 자신의 개인적 관점으로 재단하여 스스로에게 부여한 의미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야기가 옆으로 빠졌지만 뇌과학자 입장으로 돌아와 ‘재벌집 막내아들’에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점은 하나 있다. TV는 더 이상 바보상자가 아니었다!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작품에 몰입하며 작가가 제공하는 정보를 능동적으로 수용해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자신의 관점으로 재구성하게 했다. 사실 정보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능동적 지적, 정서적 참여가 없다면 뇌 속에 의미 없이 파편화된 채로 불안정하게 남게 된다. 즉 정보가 뇌 속에서 개인의 지식으로 온전히 승화하려면,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능동적 참여가 필수적이란 말이다.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대학원장 뇌과학과 교수
이는 미술 작품을 관찰할 때 쉽게 경험한다. 여러 각도로, 다양한 거리에서 작품을 관찰하며 뇌 속에 자신만의 심상을 만들고 부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비로소 작품은 나의 기억에 각인된다. 이처럼 예술은 지각 경험이 경험자의 참여에 달려 있다는 점이 오랫동안 주장되었다. 이를 오스트리아 미술사학자 알로이스 리글은 관람자가 작품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심리적 측면을 강조한 ‘감상자의 참여’ 이론으로 정리했다. 이를 다시 제자인 정신분석학자 에른스트 크리스와 미술사학자 언스트 곰브리치가 시각적 정보를 해독하고 그 의미를 결정하며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에 시각신경생물학, 인지심리학, 정신분석학 등의 관점을 도입하여 보는 사람(관람자)의 마음 작용을 설명하는 ‘감상자의 몫’이란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미술 작품 속 사물을 감상하는 동안, 눈을 통해 2차원 망막에 배치된 핵심 정보를 추출한다. 그리고 뇌로 송출된 이 정보는 뇌에서 다시 원래의 3차원 구조의 사물 정보로 재구성된다. 뇌는 이 정보를 개인의 경험, 기존 축적된 지식과 통합하여 새로운 지식과 경험으로 인지한다. 눈과 뇌 사이의 ‘상향 정보처리’는 매우 기계적이지만 뇌 속에서 새로운 지식으로 해석되는 ‘하향 정보처리’는 고차원의 인지 활동이 가미되어 뇌의 창의성을 단련한다. 따라서 어느 한 사람의 지식이란 그의 뇌가 상향 정보처리를 통해 받은 정보를 자신의 경험, 그간 축적한 지식과 통합하여 새로운 해석을 통해 내놓은 창작물이라 하겠다.

1995년, ‘재벌집 막내아들’ 신드롬에 비견할 만한 드라마가 있었다. 귀가시계라 불리며 많은 사람을 TV 앞에 모이게 한 ‘모래시계’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 드라마 이야기를 하면 놀랍게도 최고의 명장면에 대한 동료들 기억이 모두 다르다. 그저 그 장면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하며 그 시절을 추억한다. 뇌는 시간의 풍화를 거치면 기록은 지우고 감상만 남기는 것 같다. 그럼 먼 훗날 우리 뇌는 2022년 마지막 주를 어떻게 기억할까? 갑자기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이 그 답을 주는 것 같다.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대학원장 뇌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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