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 윤석열식 법치, 사회적 갈등 풀 ‘정치’ 실종[아듀 2022 송년 기획]
‘출근길 문답’ 최초 시도…소통으로 시작 설화로 잠정 중단
5·18 기념식 때 ‘님을 위한 행진곡’ 부른 첫 보수정당 대통령
장관 인사 잇단 실패로 ‘장관 없는 국정감사’ 첫 사례 남겨
민주당 중앙당사 압수수색…야당, 이례적 ‘시정연설 보이콧’
화물운전자에 ‘업무개시명령’ 첫 발동…노조 때리기 장기화
‘사상 초유’는 윤석열 대통령의 집권 첫해를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다. 헌정사 최초의 검사 출신 대통령,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첫 ‘0선’ 대통령으로 집권한 그는 그간의 정치 문법을 하나씩 깨뜨리며 파격 행보를 이어갔다.
출근길문답(도어스테핑)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한 대통령의 직접 소통은 “윤석열이라서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설화 또한 끊이지 않았고 결국 6개월 만에 잠정 중단됐다. 야당과의 극한 대치 속에 야당 당사 압수수색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불거졌고, 제1야당 없는 대통령 시정연설이라는 또 하나의 전례 없는 장면으로 귀결됐다.
화물연대 총파업에 윤 대통령은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 발동으로 맞섰다. 총파업을 계기로 대형노조를 겨냥한 윤 대통령의 강공 드라이브는 갈수록 속도를 올리고 있다. 노조 옥죄기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보수 지지층 결집을 이끌며 지지율 상승의 주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출근 첫날부터 시작된 도어스테핑… 6개월 만에 중단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들어선 윤 대통령이 기자들을 향해 손 흔들며 인사했다.
장관 임명 여부를 묻는 질문에 윤 대통령은 “글쎄, 출근해서 챙겨봐야 하는데 많이 도와주십시오”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 취임 다음날인 5월11일 오전의 한 장면이다. 청사 출근 첫날의 일회성 에피소드가 될 것으로 보였던 이 문답은 이후 6개월이 넘도록 이어졌다.
매일 같은 대통령의 출근길 소통은 전에 없던 파격으로 받아들여졌고, 탈권위 행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발언들로 인한 논란이 작지 않았고, ‘내부 총질’ 문자 파동 등 민감한 이슈 앞에서 출근길문답을 피하는 듯한 모습도 비판을 받았다.
위태롭게 이어지던 출근길문답은 지난달 21일 잠정 중단됐다. 대통령실은 특정 출입기자의 질문 태도를 문제로 삼았다. 출근길문답 중단 이후 윤 대통령 지지율은 상승했다. ‘불통의 역설’이다.
대통령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잦아들면서 결과적으로 리스크 관리 효과를 거뒀다. 출근길문답은 중단 직전까지 총 61회 이뤄졌다. 재개 여부는 미지수다.
■대통령이 이끈 광주행
지난 5월18일 윤 대통령은 KTX 특별열차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 대통령실 참모들과 국무위원,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함께했다. 여권 인사들이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에 총집결한 셈이다. 이들은 5월단체 대표들과 함께 5·18 묘지 정문인 ‘민주의문’을 지나 기념식장에 입장했다. 보수정당 대통령 중 민주의문을 지나 기념식에 참석한 이는 윤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정부·여당 인사들의 광주행을 이끈 이도 윤 대통령이었다.
윤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맞잡은 손을 아래위로 크게 흔들며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다른 여당 인사들도 모두 함께 노래를 불렀다.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광주와 불화했던 이전 보수 대통령들과 차이가 컸다. 이명박 정부는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합창단 식전 공연으로 대체했다. 박근혜 정부도 제창 순서를 생략했다.
■계속된 인사 논란… 초유의 장관 없는 국정감사
소통과 통합으로 주목받던 윤 대통령의 행보는 인사 문제를 두고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검사 출신 편중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고, 도덕성 문제 등으로 인한 장관 후보자들의 낙마가 잇따랐다. 대통령실 내부의 ‘사적 채용’ 논란도 도마에 올랐다.
보건복지부 장관 인사를 둘러싸고 윤 대통령 임기 초반의 인사 난맥상이 극적으로 드러났다. 정호영 후보자가 윤 대통령 취임 10여일 만인 지난 5월24일 사퇴했다. 후임으로 지명된 김승희 후보자도 편법 증여, ‘관사 테크’, 막말 논란에 이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의뢰까지 받으면서 물러났다. 두 사람은 같은 부처 장관 후보자가 연이어 낙마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교육부 장관 인사를 둘러싼 진통도 컸다. 김인철 후보자가 대통령 취임도 하기 전 ‘아빠 찬스’ 논란 등으로 물러나면서 윤석열 정부 1호 낙마 인사로 기록됐다. 음주운전 논란 속에 뒤를 이은 박순애 장관은 취학연령 인하 논란으로 임명 한 달여 만에 사퇴했다. 후임 인사가 늦어지면서 교육부 국정감사는 초유의 ‘장관 없는 국정감사’로 진행됐다.
■야당 의원은 형사고발, 여당 대표는 직무정지
지난 10월24일 검찰은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를 압수수색했다. 민주당은 “사상 초유의 야당탄압”이라며 반발했고, 다음날 열린 윤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 소속 의원 전원이 불참했다. 전례가 없던 제1야당의 대통령 시정연설 보이콧에 윤 대통령은 “헌정사 관행이 무너졌다”며 불쾌함을 표시했다.
여소야대 아래에서 윤 대통령은 ‘마이웨이’를 달렸고, 민주당은 거대 의석수로 맞섰다. 충돌은 필연적이었고, 중재와 조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취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윤 대통령과 야당 지도부 사이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야당과의 반복적인 충돌은 형사고발 사태로 비화했다. 지난달 22일 대통령실은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장 위원이 김건희 여사의 캄보디아 일정과 관련해 ‘콘셉트 촬영’이라고 비판한 것을 문제 삼았다.
용산과 여의도 사이 충돌은 집권여당 내부에서도 불거졌다. 대선 기간 내내 계속됐던 윤 대통령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불편한 동행’은 집권 2개월 만에 파탄이 났다. 지난 7월 당 윤리위원회가 이 전 대표에게 당원권 6개월 정지 중징계를 내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 대통령의 ‘내부 총질’ 문자가 언론에 포착됐다. 문자 파동을 계기로 윤 대통령과 이 전 대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친윤석열계 의원들은 비대위 체제 전환에 박차를 가했다.
속도전으로 체제 전환이 진행되면서 지난 8월16일 ‘주호영 비대위’가 출범했지만 불과 10일 만인 26일에 막을 내렸다. 이 전 대표가 비대위 전환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인용했다. 여당 대표가 당 징계로 직무에서 물러나고, 집권 2개월 만에 여당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고, 그렇게 들어선 비대위가 다시 와해되는 일련의 사태 전부가 사상 초유였다.
■‘노조 때리기’ 신호탄 된 초유의 업무개시명령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 총파업 엿새째인 지난달 29일 시멘트업계 화물운전자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열흘 뒤인 지난 8일에는 철강·석유화학 운전자를 상대로 범위를 확대했다. 화물운전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이 법제화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이지만 실제로 발동된 적은 없었다.
2차 업무개시명령 다음날인 지난 9일 화물연대가 파업을 철회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윤 대통령은 노조를 향한 공세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21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윤 대통령은 ‘노조 부패’를 공직 부패, 기업 부패와 함께 3대 부패로 규정하고 엄정한 법집행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지난 2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노노 간 착취 구조 타파가 시급하다”고 역설했고, 노조 회계 공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7일 국무회의에서도 “노조 부패를 막는 확실한 길은 회계 투명성 강화”라고 공세를 이어갔다. 화물연대 총파업 강경 대응 이후 윤 대통령 지지율은 상승곡선을 그렸다. ‘노동개혁’을 명분으로 한 ‘노조 때리기’가 장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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