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비판한 러 재벌, 인도 호텔서 의문의 추락사… 올해만 21명째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2. 12. 2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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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최대 육류가공업자 사망
올들어 기업인 20여명이 의문사
러시아 최대 육류 가공 업체 ‘블라디미르 스탠더드’의 창업자 겸 부사장 파벨 안토프(65)/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드러냈던 러시아 기업인들이 잇따라 사망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 알려진 것만 20명이 넘는다. 러시아 당국은 이들이 자살 또는 사고사로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서방 정보기관과 언론은 “러시아 정부가 개입한 타살(他殺)일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영국 BBC와 AFP 통신 등 외신은 27일(현지 시각) 러시아 최대 육류 가공 업체 ‘블라디미르 스탠더드’의 창업자 겸 부사장 파벨 안토프(65)가 지난 24일 인도 동부 오디샤주 라야가다에 있는 ‘사이 인터내셔널 호텔’ 3층 발코니에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직접적 사망 원인은 외상(外傷) 및 과다 출혈로 알려졌다. 사건을 조사한 오디샤 지방 경찰국은 “안토프가 (함께 여행 중이던) 친구 블라디미르 비다노프의 급사(急死)에 충격을 받고 호텔 발코니를 방황하다 실족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살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러시아 영사관과 협의해 조사 중”이라고 했다.

러시아에서 ‘소시지 재벌’로 유명한 안토프는 자신의 생일(22일)을 맞아 친구 3명과 함께 여행 중이었다. 이 호텔에는 21일 투숙했다. 현지 경찰은 “안토프는 자신의 생일에 절친 비다노프가 호텔 1층 자기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되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비다노프는 발견 당시 빈 술병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런 정황을 근거로 비다노프의 사인을 과음·약물 남용에 따른 심장마비로 추정했다. 비다노프 시신은 러시아 영사관 승인에 따라 24일 현지에서 화장됐다. 그런데 바로 그날 안토프도 석연찮은 죽음을 맞았다. 러시아 영사관은 “경찰이 별다른 타살 가능성을 찾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서방 언론들은 안토프가 지난 6월 러시아 폭격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민간인 여러 명이 사상한 사건이 벌어진 직후 자신의 왓츠앱 메신저 계정에 “이는 테러라고밖에 할 수 없다”는 글을 올렸던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글은 잠시 후 삭제됐지만 러시아 내 친(親)정부 매체들은 ‘비(非)애국적 행위’라고 비난을 쏟아냈다. 안토프는 뒤늦게 “다른 사람이 쓴 글이 오류로 잘못 게시된 것”이라며 “나는 애국자이고, 푸틴 대통령의 지원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모스크바 동부 블라디미르시(市) 시의원이자 푸틴 대통령이 속한 ‘통합 러시아당’ 당원이기도 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러시아 정부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비판적 언행을 한 기업가가 사망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안토프 죽음에 러시아 정부가 개입했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올해 1월부터 최근까지 사망한 러시아 기업인은 모두 21명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가 러시아 에너지 업계 경영인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 제재와 기업 경영난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해 왔다.

대표적 인물이 지난 4월 모스크바 자택에서 아내(47), 막내딸(13)과 함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블라디슬라프 아바예프(51) 가스프롬뱅크 부회장이다. 이 은행은 러시아 천연가스 기업 가스프롬의 자회사로 가스프롬의 실질적 ‘금고’ 역할을 하고 있다. 아바예프 부회장은 가스프롬의 세세한 자금 흐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로 알려졌다. 당시 모스크바 경찰은 “발견 당시 그의 손에 권총이 들려 있었다”며 아바예프 부회장이 아내와 딸을 먼저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그가 왜 자살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이어 7월에는 유리 보로노프(61) 아스트라시핑 대표가 상트페테르부르크 교외 자신의 저택 수영장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숨졌다. 현장에는 권총과 탄피 여러 개가 발견됐다. 아스트라시핑은 러시아 굴지의 운송기업으로, 가스프롬과 북극 가스전 사업을 추진했다. 9월에는 러시아 최대 민영 석유 업체인 루크오일의 라빌 마가노프(67) 이사회 의장이 모스크바 중앙임상병원 6층에서 추락사했다. 사법 당국은 “그가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었다”며 자살 가능성을 제기했다. 서방 언론은 “마가노프의 측근 상당수가 그의 자살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그는 지난 3월 회사 웹사이트를 통해 “우리 회사 이사회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전쟁의 조속한 종식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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