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소멸시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늙어갈 대비해야죠”
[짬][짬] 이주민 연대 활동가 이란주 작가
“몇 달 전에 29년간 살았던 경기 부천을 떠나 인구 2만1천여명인 강원도 양구로 이사했어요. 앞으로 한국을 향한 이주는 더 늘어날 겁니다. 지금껏 부천에서 수도권 이주 현상을 봤다면 앞으론 인구소멸이 우려되는 곳에서 이주민 증가로 겪는 지역사회의 변화를 보려고 해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지는 천천히 생각해야죠.”
이란주씨는 1994년부터 이주민과 연대하는 활동을 해왔다. <한겨레21> 창간호에 실린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보고 서울 구로 지역의 외국인노동자피난처를 찾은 게 첫 만남이었다. 이듬해부터 거주 지역인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등에서 이주민 상담과 교육 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그는 이주민이 한국에서 당하는 차별과 고통을 글로 알려온 작가이기도 하다. 행색이 초라하고 말이 안 통한다는 이유로 ‘1종 행려병자’로 처리돼 6년4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갇혔던 네팔 여성노동자 찬드라 구룽의 이야기를 담은 첫 책 <말해요, 찬드라>(2003)는 ‘제2의 전태일 평전’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미등록 이주민의 현실을 기록한 르포 소설 <로지나 노, 지나>(2020)와 최근 <한겨레> 연재물을 모아 낸 <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한겨레출판) 등 이주민의 현실을 다룬 책을 6권이나 냈다.
지난 20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저자를 만났다.
“그동안 제도적 진전도 있긴 했어요. 1990년대 초 산업기술 연수생 제도로 이주노동자를 처음 받아들일 땐 연수생이라며 노동자성도 인정하지 않았거든요. 노동법도 적용하지 않았죠. 그러다 2003년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면서 노동자로 인정하고 대체로 노동법 적용도 받게 했어요. 하지만 이주민이 늘어 생활 공간에서 부딪히는 사례가 잦아지면서 ‘이주민 혐오’는 커지고 있어요. 이주민들이 ‘권리투쟁’을 시작하면서 혐오는 더 증폭했죠.” 그가 “지난 30년 이주민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시각이 평등 단계로 볼 때 열 발자국에서 겨우 두 발자국 정도 나간 것 같다”고 보는 이유이다.
그의 최근작에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한 제도적 차별과 혐오로 고통받는 이주민 24명의 이야기가 담겼다. 현재 한국 거주 이주민은 대략 220만명 정도다. 스리랑카 노동자 니로샨과 캄보디아 농업이주노동자 미니어는 한국인 사장의 동의가 없으면 회사를 옮길 수 없는 고용허가제 규정으로 고통과 좌절을 겪었다. 니로샨은 비전문 취업 비자(E-9)와 숙련기능 인력 비자(E-7)로 한국에서 12년간 용접 노동자로 일하며 ‘달인’ 소리까지 들었지만 급여는 최저임금에서 요지부동이었다. ‘E-7’ 비자는 가족동반이 가능해 아내와 아이를 초청했고 또 한국에서 둘째 아이도 생겨 생활비가 크게 늘었지만 사장은 월급을 올려달라는 니로샨 요청에 귀를 막았다. 현 제도에서 급여를 더 줄 회사로 옮길 방법은 없어 그는 결국 한국을 떠나기로 결정했단다. 깻잎 농장에서 일한 미니어는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점심 시간 제외) 하루 11시간 깻잎을 땄지만 농장주는 8시간만 일한 시간으로 인정했다. 미니어가 노동부에 이의를 제기하자 농장주는 하루 할당량 18박스(깻잎 2만7천장)를 채우지 못해 어쩔 수 없다고 억지를 부렸고 근로감독관은 대화로 풀 것만 종용했단다.
이주민 역사가 쌓이며 새롭게 불거지는 문제들도 책에서 엿볼 수 있다. 필리핀 출신 엄마와 한국인 아빠가 헤어진 뒤 새로 맞이한 파키스탄 양부의 종교적 특성이 담긴 규율 때문에 힘들어 하는 15살 수정이의 고민이나, 양파를 깐 돈으로 집을 나간 한국인 사위와 몸이 아픈 딸을 대신해 손주 셋을 돌보는 베트남 할머니의 고투 등이 그렇다.
1994년 ‘한겨레21’ 창간호 기사 보고
외국인노동자피난처 찾아가 첫 인연
부천 중심 이주민 상담·교육 활동
2003년 네팔 여성 ‘찬드라’ 책 비롯
‘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 펴내
“이민청 앞서 혐오·차별 없애도록”
저자는 “이제까지 고용허가제로 이주노동자 정주를 막는 단기순환 정책을 펼쳤다면 앞으론 정착형 이민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민으로 지역소멸을 해결하겠다고 밝혔고 법무부도 이민청 설립에 적극적입니다. 이민으로 부족한 노동력을 충원하고 동시에 인구 감소를 해결하겠다는 거죠. 하지만 지금과 같은 이주민 차별과 혐오 앞에서 누가 한국에 오려고 하겠어요. 이제는 차별을 없애 이주민과 함께 일하고 함께 늙어가는 것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그는 현 이주민 정책 중 가장 큰 문제로 고용허가제 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불허하는 점을 꼽았다. “사장의 동의가 없으면 사업장을 옮길 수 없어 유해한 작업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암에 걸리거나 불임이 되는 이주민도 있어요. 현재 중국 동포들은 특례를 적용해 고용허가 업종에 한해 자유롭게 사업장을 옮길 수 있어요. 다른 이주민에게도 이런 권리가 주어져야죠.” 그는 “정부는 ‘영세사업자들이 고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이주민의 사업장 이동을 막고 있다”면서 말을 이었다. “어떤 산업 분야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면 직업선택의 자유와 같은 인간의 기본권을 이주민에게서 빼앗는 방식이 아니라 공공의 지원으로 푸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재작년에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속헹)가 열악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살다 숨진 뒤 일부 지자체들이 이주민을 위한 공공 기숙사를 만들고 있어요. 그 전까지는 방법이 없다는 말만 했었죠.” 그는 이어 “정부는 현재 사업자 등록도 하지 않은 농장주도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해놓고 문제가 생기면 방관하고 있다”면서 “지자체 책임 아래 이주노동자를 확보한 뒤 농장주 신청을 받아 일터로 보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커지는 이주민 혐오를 해결하기 위해선 다수자인 한국인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지금까지 이주민의 현실이나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교육 활동에 힘을 쏟고 책도 여러 권 펴낸 배경이기도 하다.
교육 때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물었다. “인권은 보편적이며 누구에게나 다 있다는 점을 강조하죠. 사람들은 자신에게 인권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모두에게 인권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또 다양한 문화와 그 문화를 가진 사람을 존중해야 공존이 가능하다고도 말하죠. 사람을 쏙 빼고 문화만 있는 게 아니니 그 사람을 존중해 우리 안으로 받아들일 때 문화다양성도 이룰 수 있다고요.”
오랜 시간 이주민과 함께하면서 가장 기쁠 때와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물었다. “이주민들과 활동가들이 협력해 체불임금을 받아내거나 산재 적용을 따내는 등 작은 승리를 거둘 때가 기뻤죠. 함께해온 이주민 친구들이 세상을 뜨거나 한국을 떠날 때는 힘들어요. 그런 일이 잦아 이주민 활동가들은 상실감을 자주 느낍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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