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포퓰리즘이 아니라 복지부동이 문제다
[기고]
[기고] 김윤 |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윤석열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 핵심은 ‘문재인 케어’ 폐기다. 문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이 건보 재정을 파탄내고 있기 때문에, 지금 건강보험을 개혁하지 않으면 국가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과거 비급여였던 진료항목 건보 적용 등 문 케어의 보장성 강화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말 기준 건보 누적적립금이 20조원에 이르러 현 정부 임기 안에 재정위기가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욱이 초음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남용으로 인한 진료비를 줄인다고 해도 전체 건보 진료비 약 100조원의 0.2%인 2천억원 수준에 불과해 재정이 크게 좋아질 리도 없다. 다만 급속한 노인인구 증가와 의료기술 발전으로 인한 의료비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전 정부와 차별화되는 건보 개혁을 추진하길 원한다면, 우리 의료체계의 고질병부터 손대는 구조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첫째,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의 20~30%에 달하는 재정누수를 없애야 한다. 2016~2022년 건보공단 연구용역으로 우리나라 의료공급체계 개편방안을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비 3배 수준인 병상 수를 줄여 불필요한 입원이 줄면 11조원, 실손보험으로 인한 과잉진료를 해소하면 5조~10조원, 동네의원에서 만성질환을 잘 관리하면 5조원, 경증 환자가 대학병원을 찾지 않도록 의료전달체계를 정비하면 5조원을 줄일 수 있다.
지난 2000년 우리나라 병상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을 넘어섰지만, 회원국 중 유일하게 병상이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2018년 국회에서 병상이 과잉 공급된 지역에서는 더 이상 병상 신증설을 허가해주지 않는 법을 만들었지만, 정부는 4년 넘게 이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단순 두통으로 자기공명영상 검사를 남용하는 환자보다, 계속 늘어나는 병상을 방치하는 정부의 복지부동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실손보험, 만성질환 관리, 의료전달체계 모두 정부의 복지부동으로 인해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둘째, 건강보험료를 부담능력에 맞게 공평하게 걷어야 한다. 하지만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은 직장가입자에 비해 매우 과중하다. 직장가입자는 보험료 중 절반만 본인이 내고 나머지 절반은 고용주가 부담하지만, 지역가입자는 모두 본인이 부담한다. 지역가입자는 소득이 같은 직장가입자에 비해 보험료를 2배 부담하는 셈이다.
지역가입자는 소득 이외에 재산과 자동차까지 반영돼 보험료가 책정된다. 월 소득 200만원인 자영업자가 시가 5억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을 경우, 재산 보험료는 소득 보험료의 4배에 이른다. 최근 정부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해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을 줄여줬다고 하지만, 크게 오른 부동산 가격을 고려하면 실제 보험료가 줄었는지 의문이다.
의료체계를 개혁해 낭비되는 재정을 줄이고 그 돈으로 지역가입자에게 불공평하게 매겨진 보험료를 줄여줘야 한다. 직장가입자와 달리 지역가입자의 재산과 자동차에 부과되는 보험료를 점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 소득파악률이 낮아서 없앨 수 없다면 재산보험료 기본 공제액을 지역별로 주택 평균가격 수준으로 높이고, 재산과 자동차에 부과되는 보험료 수준이 낮은 소득파악률로 인한 보험료 손실분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지역가입자에겐 고용주가 없으니 보험료의 절반은 정부가 대신 내줘야 한다.
셋째, 건강보험이 사회적 합의에 기반해 운영될 수 있도록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건강보험 관련 여러 이해당사자들로 구성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있지만 진정한 사회적 합의기구라고 하기 어렵다. 보건복지부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원이 절반 이상을 차지해 사실상 정부 뜻대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강보험 재정 낭비 요인으로 지목된 병상 과잉공급 같은 보건복지부가 다루기 꺼려 하는 정책은 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한다. 국회가 위원을 추천하고 독립된 실무기구를 둬, 정부가 하기 싫은 정책도 필요하면 하게 만드는 강력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있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건보 개혁에 성공하려면 이런 핵심 개혁 과제에 집중함으로써 건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현 정부가 아무리 부인해도 건보 개혁을 ‘문재인 지우기’로 보는 시각이 여전한 것은, 정부의 정책과제에서 건보 재정을 파탄내는 이런 핵심 원인에 관한 대책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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