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동물이 물건이라고 생각하세요?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남종영 | 기후변화팀 기자
두달 전, 동물권행동 카라가 주최한 서울동물영화제의 포럼에 참석했다. 아르헨티나 법원에서 인신보호영장을 받아들여 동물원에 갇힌 오랑우탄 ‘산드라’를 풀어 준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비인간인격체>가 화두가 됐다. 인신보호영장은 이유 없이 구금된 이를 풀어달라는 소송인데, 놀랍게도 아르헨티나 법원은 전향적인 결정을 내렸고(미국에선 번번이 패소 중이다), 산드라는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유인원 생추어리(보호시설)로 갔다.
비인간인격체론은 동물이 인간은 아니지만(비인간) 사람처럼 고통과 쾌락을 느끼고 자의식과 개성 같은 특성(인격체)을 갖췄으니, 상황에 맞는 법적 권리(법인격)를 부여해야 한다는 논리다. 뉴질랜드에서는 환가누이강의 법인격을 인정하고 법인 사무국을 설치해 법적 권리를 대리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제주 남방큰돌고래에게 법인격을 부여하는 ‘생태법인’ 제도를 올 초 진희종 제주대 강의교수가 제안했고,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이를 검토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누군가 삼성전자의 건물을 훼손하면, 삼성전자라는 ‘법인’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하물며 회사도 그런 권리가 있는데, 동물이라고 안 될 이유는 뭔가? 그런데 안 된다. 동물은 물건이라고 규정한 법률 때문이다. 민법 제98조에서 동물은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에 속해 ‘물건’으로 정의된다.
이날 포럼에는 박미랑 한남대 교수(범죄학)가 나와 자신이 써온 글을 읽었다. 여태 장황하게 이야기한 이유는 그의 글을 소개하고 싶어서다.
“2014년 대구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오피스텔 성매매 업소 실장으로 일하던 한 남성이 그곳에서 일하던 20대 여성과 사귀기 시작하죠. 남성은 여성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다 남성은 여성의 새로운 남자친구로 의심되는 사람을 카톡에서 발견합니다. 여성은 잠들어 있었지만, 이 남성은 주방에 있는 칼을 가져와 목 부위를 여러 차례 찔렀습니다. 그다음 눈에 들어온 것은 숨진 여성의 반려동물이었어요. 강아지 목을 조르고 칼로 찔렀습니다. 남성은 급기야 강아지를 세탁기에 넣고 돌립니다. 여성의 피 묻은 옷가지와 함께 말입니다. 순장인가요? 살인 현장에 남긴 하나의 증거쯤으로 여긴 것이죠. 이 사건 판결문에는 죽은 강아지가 ‘시가 20만원 상당의 애완견’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타인 소유의 재물을 손괴했고,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였다’라고 합니다. 그 남성에도, 재판부에도 죽은 생명체는 ‘시가 20만원’에 상당하는 물건이었습니다.”
박 교수는 다수의 투견도박 사건의 판결문을 분석해봤다고 했다.
“2건은 약식명령으로 간단히 처리됐고, 27건은 단독부로 배정돼 사건의 중대함이 그다지 법원에서는 높게 평가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22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평균 선고량은 (징역) 9개월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60%가량 되는 13명이 집행유예를 받았어요. 범죄자들은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실형을 면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투견에 동원된 핏불테리어들은 철제 링 안에서 살기 위해 물어뜯고, 물어뜯기고, 죽어야 했습니다. 중독은 뇌에서 브레이크가 망가진 겁니다. 그래서 도박범죄는 통상 ‘피해자 없는 범죄’로 분류되죠. 투견도박도 그럴까요? 사람들의 왜곡된 오락과 유흥의 대가로 동물이 죽었는데, 피해자가 없다고 볼 수 없습니다. 다른 도박에 비해 더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하고, 도박중독 치료도 명령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일반 도박범죄자에 비해 관대한 처벌을 받았고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았습니다. 처벌 이후 무엇이 달라질까요? 이들의 도박에 대한, 학대에 대한, 인간이 아닌 비인간에 대한 재판부의 무관심이 원망스럽습니다.”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얼마 전까지 과학이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동물은 물건이다’라고 규정한 법치국가에서 산다. 진정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가?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동물이 물건이라고?
그의 발표를 들으며, 어쩌면 동물권을 위한 난해한 철학, 지난한 법적 투쟁이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우리는 우리 마음의 소리를 들으면 되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었다.
“저는 동물학대와 한국사회의 동물격에 대한 이야기를 적으려고 했지만, 앞에 ‘동물’이라는 단어를 굳이 붙이고 싶지 않습니다. 생명에 대한 학대를 염려하고 그들을 지켜주는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그 힘이 미약하여 미안할 따름입니다.”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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