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새해 기자회견이 없는 나라 [권태호의 저널리즘책무실]

권태호 2022. 12. 2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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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책무실]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 회견 때 “언론인 앞에 자주 서겠다. 질문받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언론인 없는’ 자리, ‘질문 안 받는 자리’에 자주 선다.
신년 회견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에게 ‘그래도 기자회견 하시는 게…’라고 말할 참모가 지금 대통령실에는 없다.

권태호 | 저널리즘책무실장 겸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1일 신년사를 생중계로 발표한다고 한다. 새해 기자회견은 없다. 표면적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다. 부처 업무보고가 21일부터 1월까지 이어진다. 또 지난 15일 국민패널 100명과 함께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국정 구상을 이미 다 밝혔다고 한다. 대통령실 공식 입장은 “안 하기로 결정하지 않았다.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다들 안 하는 걸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시간이 없다’는 건 이유가 안 된다. 업무보고 끝난 뒤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국정과제 점검회의는 ‘국민패널 100명’을 내세웠으나, ‘국민 질문’들은 대통령 하고픈 말로 유도하는 지렛대였을 뿐이다. ‘까칠한 질문’ 없는 건 당연하다. 패널들은 각 부처 추천을 받아 선정됐다. 대통령 불편하게 만드는 패널 나온다면, 그 패널 추천한 부처 담당자는 어찌 되겠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국민패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그래서 기자회견이 필요하다. 또 할 말만 툭 던지고 총총히 사라지는 도어스테핑(약식 회견) 100번이 기자회견 1번에 못 미친다. 그 옛날 박정희 대통령도 매년 ‘연두 기자회견’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 이후, 신년 기자회견을 거른 적은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내세운 2022년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다. 그때도 응당 했어야 했다. 좋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당시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되는 신년 기자회견을 할 시간이 없을 만큼의 그런 상황인지 되묻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어떤가. 넉달 뒤 떠나는 대통령과 취임 1년도 안 된 대통령의 새해 회견은 무게가 다르다. 퇴임연도 신년 회견은 대선 이후, 퇴임 회견으로 대체하는 게 오히려 나을 것이다.

새해 회견 취소 소식이 전해진 21일치 사설 제목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 올랐다고 소통 닫아서야”(한국일보), “부처 업무보고가 신년 기자회견을 대신할 순 없다”(동아일보), “신년 회견 보류…대통령-국민 소통은 많을수록 좋아”(중앙일보), “‘국민과 대화’도, 신년 회견도 모두 소통에 필요”(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지난 1월25일치 사설 제목 “상황 어렵다고 신년 회견 안 한다는 문, 끝까지 비겁할 건가”에 비하면, 같은 사안에도 날이 무척 부드럽다. 조선일보 독자를 배려 또는 의식했기 때문이라 본다. 김순덕 <동아일보> 대기자는 22일치 칼럼에서 “대통령이 진정 민심을 알고 싶다면, 매일 국민과 만나는 기자들과 까칠한 신년회견을 갖는 게 백번 낫다”(‘칸막이 친 대통령실, 청와대와 뭐가 다른가’)고 했고, 서승욱 <중앙일보> 논설위원도 “친절하고 물러터진 ‘엄선된 국민 패널’과의 약속 대련만으론 어림도 없다”(‘156분 드라마, 3분20초 다큐’)며 ‘불편한 기자회견’을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17일 취임 100일 회견 때 “언론인 앞에 자주 서겠다. 질문받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언론인 없는’, ‘질문 안 받는’ 자리에 자주 선다. 국정과제 점검회의(15일), 3대 분야 개혁 간담회(20일), 비상경제민생회의(21일), 그리고 예정된 신년사(1월1일). 대부분 생중계를 한다. 윤 대통령 표정은 무척 밝다. 마치 ‘도어스테핑’ 대안을 찾은 듯한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연 첫 공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최근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각 방송사에 정부를 비판하는 보수 패널을 교체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것도 맥락은 비슷하다. 정 위원장은 “시사 프로그램 보수-진보 패널 균형을 맞추라”며 “대통령을 비아냥거리고 집권여당을 시도 때도 없이 공격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수를 대변하는 패널인가”라고 했다. 왜 그럴까. 그들이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출퇴근 때 듣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이 3개다. 팟캐스트 기능을 활용하면, 방송 이후에도 들을 수 있다. 이때, 출연자 이름을 보고 일부 항목은 거른다. ‘시도 때도 없이’ 자기 진영을 억지 변호하거나 무논리로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패널들이다. 이런 내용을 몇십분간 듣는 건 시간 낭비일 뿐 아니라 고역이다. 보수든 진보든 마찬가지다. 오히려 보수를 비판하는 보수 패널, 진보를 비판하는 진보 패널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할 여지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방송사는 바보가 아니다. ‘집권여당을 공격하는 보수 패널’이 자주 나온다면, 그건 집권여당에 문제가 있음을 방증한다. 또 야당보다 집권여당에 비판 빈도와 강도가 몰리는 건 당연하다. 정 위원장 공문은 정무적으로도 패착이다. 방송사는 이제 정 위원장이 지목하는 패널을 자르지도 못한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 위해 애쓴다’는 것만 남았다.

아마 새해 회견은 없을 것이다.(예측이 틀리길 바란다.) 최근 지지율 상승에 도어스테핑 중단이 한몫했다니, 더더욱 그렇다. 그보다 윤 대통령에게 ‘그래도 기자회견 하시는 게…’라고 말할 참모가 지금 대통령실에는 없다.

권태호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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