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평화·번영” 한국판 인태전략…‘미국 편중’ 외교 재확인
정부가 28일 윤석열 대통령의 인도·태평양 지역 외교 전략인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인·태 전략)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달 13일 한·미·일 3국 정상이 발표한 ‘인도·태평양 한미일 3국 파트너십에 대한 프놈펜 성명’에 이어, 미-중 패권 경쟁 속에 한국 외교가 ‘미국 편’에 섰음을 재확인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성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브리핑을 열어 자유·평화·번영을 3대 비전으로, 포용·신뢰·호혜를 3대 협력 원칙으로 삼은 인·태 전략 최종 보고서를 공개했다. 9개 중점 추진 과제로는 △규범과 규칙에 기반한 질서 구축 △법치주의와 인권 증진 협력 △비확산·대테러 협력 강화 △포괄안보 협력 확대 △경제안보 네트워크 확충 △첨단과학기술 분야 협력 강화 및 역내 디지털 격차 해소 기여 △기후변화·에너지안보 관련 역내 협력 주도 △맞춤형 개발협력 파트너십 증진을 통한 적극적 기여 외교 △상호 이해와 문화·인적 교류 증진을 제시했다.
김 실장은 “지정학적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인·태 지역에서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는 국익을 실현하고자 하는 포괄적 지역 전략”이라며 “그간 윤 대통령이 강조해 온 자유와 연대의 가치를 인·태 지역에 투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 ‘인도(양)·태평양’은 지난 2007년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대중국 견제를 위해 ‘아시아·태평양’을 대신해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미-중 전략 무역전쟁에 불을 지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017년 이를 받아들였고, 조 바이든 행정부도 지난 2월 독자적 인·태 전략 보고서를 공개한 바 있다. 한국판 인·태 전략 추진은 지난 5월21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처음 공식화했다. 당시 공동회견문을 보면, 한-미 두 정상은 △인·태 지역의 중요성에 인식을 같이하고 △인·태 지역에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판 인·태 전략 수립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런 맥락 때문에 한국판 인·태 전략이 중국 견제를 뼈대로 하는 미국의 대외전략과 그대로 동조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번 최종 보고서에도 중국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 내용들 가운데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 간 연대 △규칙과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지역 질서 촉진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 등은 모두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사용하는 표현이다. 정부는 한·미·일 3국 협력을 비롯해 한·미·호주 3자와 AP4(한·일·호·뉴질랜드 등 아시아태평양 파트너 4개국) 간 협력 확대 등을 강조했다. 미국, 일본, 인도, 호주 등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와 “협력의 접점을 확대하고자 한다”고 명시한 점 또한 ‘중국 견제’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인·태 전략의 주요 원칙 중 하나가 ‘포용’”이라며 “특정 국가를 배제하거나 견제하려는 것과 거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보고서에는 중국을 “주요 협력 국가”로 언급하면서 “상호존중과 호혜를 기반으로 공동 이익을 추구하면서 보다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관계를 구현해 나갈 것”이라고 적시했다. 정부는 이 보고서에 한중일 정상회담 재개 등 3국 협력 필요성을 거론한 점도 강조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후 주한 외교사절단 등 200여명을 초청해 연 관련 설명회에서 인·태 전략에 대해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 독트린”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본이 만든 개념을 미국이 확장시켰는데, 윤 대통령의 ‘독트린’이라고 하기엔 독자성이 떨어진다”고 짚었다. 인·태 전략 보고서 첫 문장인 ‘대한민국은 인·태 국가’란 표현은, 국명만 바꿔 미국 쪽 보고서에도 똑같은 자리에 등장한다.
‘가치’와 ‘국익’의 관계 설정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혜정 중앙대 교수는 “이를테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보호무역의 상징이자 자유무역에 대한 위협으로 떠올랐고, 한-일은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등 과거사 문제로 갈등하고 있다”며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 간 협력을 강조했지만, 이들 국가와 국익이 충돌할 때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선 언급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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