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 겨울농구 이야기
▲11월 24일에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SK와 모비스의 경기. |
대학은 방학을 맞았다. 나에게는 농구 경기를 조금 더 볼 기회다. 생각만큼 자주 보지는 못한다. 대학에는 교수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이들은 본질적으로 연구자다. 그래도 집에 가는 길에 차를 돌려 잠실에 있는 두 경기장을 찾을 수 있다. 경기를 중계하는 텔레비전의 채널을 고정하거나. 그렇게 할 생각이다.
나는 이번 시즌이 개막한 다음 경기장에 한 번밖에 가지 않았다. 11월 24일에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SK와 모비스의 경기였다. 몇몇 반가운 얼굴과 마주쳤지만 가능하면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그들도 대개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경기는 매우 재미있었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치열한 경기. 승패는 마지막에야 갈렸고, SK가 주인공이 됐다.
경기가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나는 품에서 수첩을 꺼내 내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내가 기록하고 있음을 한참 뒤에야 자각했다. 지금 수첩을 열어 보니 경기 흐름과 더불어 ▲1쿼터 6분 36초쯤 SK의 최준용 선수 교체기용 ▲2쿼터 시작하자마자 모비스의 조동현 감독 타임을 요청 ▲아바리엔토스 선수의 움직임 ▲이규섭 씨의 해설 등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이우석과 최준용
이우석 선수의 경기를 직관하기는 처음이었다. 196㎝나 되는 큰 키에 민첩하고 담대했다. 출전시간은 28분42초. 그 사이에 24득점, 6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우석 선수가 골밑으로 치고 들어갈 때 나는 언뜻 홍대부고 시절의 이상민 선수를 떠올렸다. 포지션도 같지 않고, 경기 스타일도 다르지만 재능과 본능이라는 면에서 공유하는 면이 있다고 느꼈다.
이우석 선수의 기록은 최준용 선수와 비슷하다. 최 선수는 26분45초 동안 19득점, 6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슛 성공률 58.3%였는데 이우석 선수(58.8%)와 크게 다르지 않다. 최 선수는 부상 때문에 쉬다 나와서도 뛰어난 경기력을 발휘했다. 세련되면서도 억센(지도자들 가운데는 이런 태도와 방식을 ‘짓궂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플레이 스타일을 느꼈다. 경기 흐름을 감지하고 상대의 의도를 간파하는 능력도 만만치 않았다.
최준용 선수의 몸이 완전하다면 어떤 상대도 수비하기가 쉽지 않다. 기술적으로 장점을 지닌 선수가 터프하기는 어렵다. 테크니션은 ‘아웃복서’가 되기 쉽다. 기술 좋은 센터는 흔히 몸싸움을 꺼리고, 커리어의 후반으로 갈수록 슛 거리가 길어진다. 최 선수는 골밑 선수가 아니지만, 골밑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시도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기술과 높이라는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유재학
최준용 선수는 연세대학교에서 뛸 때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그가 프로에 진출할 때, 드래프트 1, 2순위를 다투었다. 경쟁자는 고려대학교에서 명성을 떨친 이종현 선수였다. 당시 모비스의 유재학 감독은 드래프트를 앞두고 고민했다. 1순위 지명권을 얻을 경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유 감독은 최준용 선수에게 매력을 느꼈지만 결론은 이종현 선수였다. 타이틀을 차지하려면 강한 센터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의 선택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프로진출 이후 이종현 선수의 이야기는 다른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
유재학 감독은 코트 건너편에서 경기를 지켜보았다. 나는 맞은편에 앉은 유 감독을 금방 알아보지 못했다. 유 감독은 경기가 끝난 다음 내가 있는 쪽으로 건너왔다. 조금은 나이가 들어 보이는, 그러나 빛나는 두 눈과 명쾌한 말솜씨. 우리 프로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부사를 오랜만에 경기장에서 보았다. 유 감독은 “뭘 그렇게 적느냐?”며 나를 놀렸다. 그는 경기 결과를 아쉬워했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우리 선수들이 경험이 부족해요. 이길 수도 있는 경기를 막판에 실책해서 지는 것 보세요. 좀 지나면 더 나은 경기를 할 겁니다.”
그에게는 일행이 있었다.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길지 않았다. 유재학 감독과 헤어진 다음, 나는 이 사람이 벤치를 떠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전투기의 연료탱크에 기름이 잔뜩 남았는데 모함(母艦)에 착륙한 것은 아닌가. 누군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유재학 감독에게는 지금의 휴식이 달콤하기만 할까. 유 감독의 생각을 읽기는 어렵다. 어찌됐든 그에게는 (역설적이지만) ‘강요받을 권리’가 있다.
빈 잔(盞)
유재학 감독과 헤어진 다음 조금 더 앉아서 경기장 전체를 둘러보았다. 뭔가. 아쉬웠다. 경기를 조금 더 보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경기는 오후 9시가 되기 전에 끝났다. 30분만 더 보았으면. 나는 KBL 출범 당시부터 1쿼터 12분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감독들은 모두 반대했다. 선수층이 얇아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경기의 품질이 떨어질 거라고 했다. 지금도 그럴까.
김영기 총재
SK와 모비스의 경기를 지켜본 뒤 한참이 지난 다음, 여의도에 가서 김영기 전 총재를 만났다. 나는 지난달에 내가 속한 한국체육사학회의 학술지(한국체육사학회지)에 김영기 전 총재와 관련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을 쓰기 위해 거의 1년 가까운 자료 조사와 검토, 여러 관련 인물에 대한 인터뷰가 필요했다. 당연히 김 전 총재께도 폐를 많이 끼쳤기에 인사를 올려야 마땅했다.
김 전 총재는 선명한 눈빛과 카랑한 목소리로 나를 맞았다. 점심을 함께 하고,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면서 국내외 농구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국내농구, 특히 프로농구의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는 점에는 김 전 총재와 나의 생각이 같았다. ‘위기’라는 표현은 너무나 진부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단어를 고르기도 쉽지 않다. 어쨌든 농구는 겨울철 실내스포츠의 주인공도 아니고, 배구와 경쟁하는 입장도 아니다.
농구 이야기를 하면 언제나 길어진다. 두 시간 가까이 말씀을 나누었다. 김영기 전 총재께 최근에 프로농구 경기를 본 소감을 말씀드렸다. ‘프로농구의 경기품질은 나쁘지 않더라. 선수들의 신체조건이나 기술은 농구대잔치 시절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더 크고 빠르고 기술도 발전했다. 지난번에 현장에서 경기를 직관했는데 끝난 다음에도 아쉬운 나머지 일어서기 싫을 정도였다. 이 정도 품질이면 더 많이 더 비싸게 팔 수 있을 것 같은데….’ 김 전 총재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날 훌륭한 말씀을 많이 들었다.
“지금 프로농구가 많이 어려워요. 경쟁 대상은 배구만이 아니에요. 당구가 스포츠 채널을 점령한 거 보세요. 골프, 핸드볼, 그뿐인가. 유럽축구도 경쟁자라고 봐야 해요. 그런데…. 언제나 가장 어려울 때가 기회야.”(김영기 전 총재)
프로농구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외환위기가 닥쳤다. 당연히 리그 전체가 위기감을 느꼈다. 그 때도 (당시에는 KBL의 중심이었던) 김 전 총재는 비슷한 말을 했다. ‘미국의 프로스포츠는 경제공황기에 오히려 대중들 속에 뿌리를 내리고 오늘날의 성공을 예비했다. 이런 시기일수록 프로농구가 국민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줄 수 있어야 한다.’ … 물론 지금의 어려움은 외환위기 당시와 다르다. 그렇기에 더 어려운 과업으로서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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