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웅래 체포동의안 부결···민주당 내에서도 ‘제 식구 감싸기’ 우려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169석의 민주당 의원 다수가 무기명 자유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 당내 일각에서 ‘제 식구 감싸기’ 논란으로 민심이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노 의원 체포동의안을 재석 271인 중 찬성 101표, 반대 161표, 기권 9표로 부결시켰다. 21대 국회 들어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것은 처음이다. 체포동의안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 출석 의원 과반 찬성으로 가결된다.
체포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본회의장 연설에서 “노 의원이 청탁을 받고 돈을 받는 현장이 고스란히 녹음된 녹음 파일이 있다”고 발언했다. 한 장관은 “구체적인 청탁을 주고받은 뒤 돈을 받으면서 ‘저번에 주셨는데 뭘 또 주냐’라고 말하며 돈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녹음돼 있다”며 가결을 주장했다. 반대 토론에 나선 노 의원은 “사실 조작”이라며 “이렇게 엮이면 살아남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라며 부결을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체포동의안 찬반을 당론으로 정하지 않고 자유투표에 부쳤다. 169석의 다수당인 민주당 의원 상당수가 반대표를, 국민의힘 의원 상당수는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의당은 “국회가 비리·부패 혐의자의 방탄막을 자처해서는 안 된다”며 당론으로 찬성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부결에 뜻을 모은 이유는 체포동의안 제출이 ‘야당 탄압’이라는 노 의원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노 의원이 검찰에 출석했는데도 구속영장을 청구해 체포동의안을 보낸 것은 검찰의 지나친 정치 공세라고 보는 당내 의견이 많았다. 검찰이 전날 국회 소통관을 압수수색한 것도 의원들의 반발감을 자극했다. 한 중진 의원은 “검찰이 이미 한 번 국회를 압수수색했는데, 노 의원 혐의와 크게 상관 없는 국회 소통관에 굳이 표결 전날 왜 또 들어왔는지 의아하다”며 “보여주기식 압수수색 쇼”라고 했다.
특히 친이재명계 의원들 상당수는 이재명 대표를 지키기 위해 노 의원 체포동의안 가결에 반대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 내에서는 노 의원 체포동의안이 이 대표 수사의 전초전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당 관계자는 “노 의원 체포동의안에는 동의하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는 반대하면 당내 논란이 커지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을 위해서라도 노 의원 체포동의안을 부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야당 인사들에게 집중된 검찰 수사에 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거부감도 크다. 한 초선 의원은 “검찰이 명확한 근거도 별로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뻑하면 체포동의안이 날아오면 그때마다 구속(심사)에 동의해줘야 하나”라고 말했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이날 광주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야당 관계자 수사는 KTX급인데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김건희 (여사) 수사는 고장이 나 녹슨 열차처럼 멈춰서 있다”고 토로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체포동의안 부결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국민에게는 제 식구 감싸기로 보일 수 있다”고 걱정했다. 당 관계자는 “노 의원 자택에서 현금 수억원이 나왔기 때문에 국민 정서에 맞지 않을 수 있다”며 “체포동의안 부결이 당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거대 의석을 앞세운 민주당은 불체포 특권 뒤에 노 의원을 겹겹이 감싸준 셈”이라며 “민주당은 이 대표에게 다가올지 모를 그날을 위해 부결 예행 연습이라도 한 모양”이라고 비판했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비리·부패 혐의에 대한 체포동의안에 민주당이 당론을 결정하지 않고 자유투표를 선택한 것 자체가 비겁하다. 방탄정당의 오명을 피할 수 없다”며 민주당에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민주당은 “한 장관의 본회의 발언은 피의사실 공표”라고 맞받았다.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한 장관의 본분을 저버린 피의사실 공표와 자기 정치는 오늘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의 부결을 불러왔음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노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당사자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녹취록의 내용을 담당 검사도 아닌 법무부 장관이 어떻게 그리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인지 국민 앞에 소상히 밝혀달라”고 했다.
한 장관은 이날 부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도 오늘의 결정을 오래도록 기억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1대 국회는 2020년10월 정정순 민주당 의원, 2021년4월 이상직 무소속 의원, 2021년9월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 체포동의안 3건을 모두 가결시켰다. 정 전 의원은 21대 총선 기간 회계 부정 혐의를, 이 전 의원은 회삿돈 횡령·배임 혐의를, 정 의원은 뇌물 수수 혐의를 각각 받았다.
노 의원은 2020년 2월~12월 5차례에 걸쳐 뇌물 및 불법 정치자금 6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체포동의안 부결로 노 의원은 앞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국회의원의 직위를 이용하여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구속 사유가 명백함에도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결과에 대해서 유감”이라며 “이는 21대 국회에서 부패범죄 혐의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모두 가결된 사례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형평성에 어긋난 결과”라고 밝혔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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