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21대 후반기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에 김태호

이균진 기자 2022. 12. 2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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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궐 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이후 3선 고지를 밟는 동안 줄곧 여권 잠룡으로 꼽히던 김태호 의원이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김 위원장은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장 보궐선거에서 투표수 250표 중 202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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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가 모래 위에 세운 외교·안보, 반석 위에 뿌리내리겠다"
김태호 외교통일위원장.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이균진 기자 = 재보궐 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이후 3선 고지를 밟는 동안 줄곧 여권 잠룡으로 꼽히던 김태호 의원이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김 위원장은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장 보궐선거에서 투표수 250표 중 202표를 얻었다.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거창농림고를 졸업한 거창 토박이인 김 위원장은 1992년 14대 총선을 앞두고 이강두 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 등을 거쳐 1998년 경남도 의원에 당선됐다. 2002년 40세의 나이로 거창군수가 됐고 2004년 6월 재보선에서 경남도지사에 당선돼 최연소 민선 광역단체장에 올랐다. 이어 2006년 5·31지방선거에서 김두관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를 제치고 경남도지사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정치 인생도 한차례 위기를 겪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8월 김 의원을 국무총리에 내정하면서 '40대 기수'로 급부상했으나 청문회에서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 등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 21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이후 김 위원장은 중국 베이징 유학길에 올랐으나 여권의 권유로 귀국해 2011년 경남 김해을 보궐선거에서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를 누르고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19대 총선에서도 다시 당선됐다.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 잠행을 이어오다 지난 2018년 경남지사 선거에서 당시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대항마로 나섰지만 낙선했다.

지난 총선에서는 고향 출마를 위해 미래통합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국민의힘으로 복당했다. 21대 국회에서는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8일 '국회 상임위원장 후보자 선출 의원총회'에서 "우리 외교, 안보, 통일이 지난 정부에서 어떻게 됐나. 모래 위에 세워졌다"며 "이를 단단한 반석 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쓸모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겠다"고 밝혔다.

△경남 거창(50) △거창농림고·서울대 농업교육학과△서울대 대학원 교육학 석·박사 △육군 병장 전역 △서울대 강사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 △경남도의원 △경남 거창 군수 △제32·33대 경남도지사 △18·19·21대 국회의원

asd12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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