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의 아침] ‘너 일본인 맞냐?’ 비난에도 강제동원 할머니들 돕는 ‘나고야의 바보’
- "다카하시, 강제동원 피해 관련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 배상 촉구"
- "다카하시, 나고야에서 역사 교사 재직 중 여자근로정신대 사연 접해"
- "다카하시, 강제동원 피해 할머니들 지원 위해 '나고야 소송 지원회' 구성"
- "'너 일본인 맞냐?' 비난에도 할머니들 일본 소송비·체류비 등 지원"
- "다카하시, '내 유골의 절반을 무등산에 뿌려달라'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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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그램명 : [출발! 무등의 아침]
■ 방송시간 : 08:30∼09:00 KBS광주 1R FM 90.5 MHz
■ 진행 : 정길훈 앵커(전 보도국장)
■ 출연 :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 원장
■ 구성 : 정유라 작가
■ 기술 : 김영조 감독
▶유튜브 영상 바로가기 주소 https://youtu.be/f4LHl44lOBo
◇ 정길훈 앵커 (이하 정길훈): 남도의 역사를 재미있게 들어보는 시간이죠. 노성태의 '스토리로 듣는 남도역사' 오늘도 남도역사연구원 노성태 원장과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남도역사연구원 노성태 원장 (이하 노성태): 안녕하십니까?
◇ 정길훈: 오늘 주제는 뭘까요?
◆ 노성태: 영화 택시운전사에 위르겐 힌츠페터라고 하는 분 있잖아요. 5.18을 전 세계에 알린 최초의 외국인인데 일본의 다카하시 마코토라고 하는 분은 조선 여자근로정신대 문제를 최초로 세계에 알린 분이죠. '내가 죽으면 내 유골의 절반은 무등산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고요. '나고야의 바보'라고 불린 광주 최초의 외국인 시민권자인데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대표이기도 합니다. 오늘 국경을 뛰어넘는 다카하시 마코토 씨의 감동적인 삶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 정길훈: 다카하시 마코토 씨, 저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요. 몇 주 전엔 TV 뉴스에 이분이 광주를 다녀간 게 뉴스에도 짤막하게 나왔던데요. 어떤 일로 이번에 광주를 방문했던 거죠?
◆ 노성태: 2주 정도 됐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광주 방문이 3년 만이었는데 실은 이번 방문이 119번째 방문이었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연이 담긴 연극 ‘봉선화 2022’라고 하는 연극이 나고야에서 무대에 올라갔는데 이것의 광주 공연 문제를 협의하는 목적이 하나 있었고요. 두 번째는 양금덕 할머니 등이 참여했던 근로정신대 소송에 대한 2018년 대법원 최종 승소 판결 이후에 4년이 지나도록 배상에 진척이 없는 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한 것도 있었고요. 그리고 근로정신대 할머니 등을 기리는 가칭 '일제 강제징용 역사관' 건립을 위한 기금 100만 엔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 정길훈: 노 원장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다카하시 대표가 119번이나 광주를 찾았다고 하니까 참 놀라운데요. 이 분의 방문이 조선여자근로정신대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근로여자정신대와 관련해서는 많은 분이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노성태: 일제 말기죠. 태평양전쟁이 계속되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지니까 근로정신대라고 하는 것을 조직해서 전쟁 수행을 위한 노역에 투입하기 시작했는데 여성 대원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노동 부대가 여자근로정신대인 것입니다. 12살 이상 40살 미만의 배우자가 없는 조선 여성이 소속되었는데 나고야 등으로 끌려가서 각종 군수공장 등에 투입이 됩니다. 관청에서 알선했거나 학교나 단체를 통한 선전 등 다양한 형태로 동원됐는데 이때 끌려갔던 조선의 여성은 5~7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그중 한분이 요즘 자주 언론에 나오고 있습니다만 13살에 나고야로 끌려간 광주에 거주하고 계시는 양금덕 할머니가 그중 한 분이시죠.
◇ 정길훈: 우선 가장 궁금한 게 다카하시 대표가 어떻게 해서 여자근로정신대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그 부분이 가장 궁금하네요.
◆ 노성태: 다카하시 대표는 나고야에 있는 야스타고등학교 세계사 교사였습니다. 그가 근무했던 나고야는 많은 분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만 태평양전쟁 당시 대표적인 공업 도시였고요. 미쓰비시, 나카지마, 가와사키, 아이치항공 등 일본 항공기 전력의 40%를 생산했던 지역이었습니다. 1986년 세계사 교사였던 다카하시는 40년대 일제가 저지른 태평양 전쟁 당시 10대 초중반의 어린 나이에 미쓰비시 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여자근로정신대를 처음 접하게 됩니다.
◇ 정길훈: 다카하시 대표가 근로정신대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근로정신대로 왔다가 숨졌던 분들, 이분들의 추모비를 건립한 게 가장 먼저 한 사업이라면서요?
◆ 노성태: 그렇습니다. 1944년에 도난카이 지진이라고 당시 나고야 일대를 휩쓸었던 지진이 일어났는데 그때 끌려갔던 근로정신대 소녀 6명의 유가족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유가족을 찾기 위해서 1988년 광주 땅을 처음 디뎠고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이후에 119번이나 찾게 되는데요. 아무튼 1988년 12월 나고야 시민의 성금을 모아서 옛 미쓰비시 공장 터에 근로정신대로 끌려왔다가 지진으로 희생됐던 6명의 조선인 소녀들을 기리는 추모비를 세우게 됩니다.
◇ 정길훈: 다카하시 대표가 추모비만 세웠을 것 같지는 않고 광주를 119번이나 방문했었다고 하니까요. 이후에는 어떤 활동을 했을까요?
◆ 노성태: 추모비 건립 10여년이 지난 1998년 11월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피해 배상 그리고 진실 규명을 지원하기 위해 '나고야 소송 지원회'라는 것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1999년 3월 1일 일본 정부 또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나고야 지방 재판소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그리고 나고야 소송 지원회는 양금덕 할머니 등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소송을 진행하면서 소송비, 항공료, 숙박비 등 여러 가지 지원해야 될 사항을 전부 나고야 소송 지원회에서 지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10년 동안 진행된 재판은 1965년 한일 간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맺었던 한일청구권 협정에 의해서 개인 차원의 배상은 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최종 패소하게 됩니다.
◇ 정길훈: 10년 동안 진행된 재판에서 패소했으니까 실망이 컸을 텐데 그런데도 다카하시 대표가 강제동원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는 않았죠?
◆ 노성태: 그렇습니다. 재판을 통한 진실 규명의 길이 막히자 다카하시 등 소송 지원에 참여했던 이들은 제2의 투쟁을 전개하는데 그것이 2007년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 금요일만 되면 도쿄에 있는 미쓰비시 본사에서 집회를 열어서 진실을 알리는 '금요행동' 집회를 열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510회가 넘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고야에서 도쿄까지는 360km나 되거든요. 광주에서 서울까지 300km 정도니까 더 먼 거리. 그리고 신칸센 1인당 왕복 비용도 25만 원에 이르는 비용까지 감수하면서 500번 넘게 '금요행동' 집회를 열고 있는데 대단한 행동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정길훈: 시간도 많이 들고 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런 금요행동에 대해서 일본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 노성태: 일부 양심 있는 일본인들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호의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루 내내 80이 다 된 회원들이 전단지를 나눠주지만 받아가는 분은 50명 내외에 그치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너희는 일본인 맞냐?' 이런 비난도 들어야 했고. '그렇게 한국이 좋으면 한국에 가서 살아라' 이런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다카하시 대표의 나이가 80이거든요. 그 일행들은 지금도 금요일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금요행동' 집회를 위해 나고야에서 도쿄로 출발을 하는데 이런 그들을 보고 많은 사람이 다카하시 대표 등을 '나고야의 바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 정길훈: 그런 다카하시 대표의 활동상이 한국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면서요?
◆ 노성태: 그렇습니다. 2020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가 8종이 있는데요. 그중에 3곳 교과서에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과 그 모임을 이끌고 있는 다카하시 마코토 씨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정길훈: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내용을 소개해주시겠습니까?
◆ 노성태: 세 곳 출판사가 해냄에듀 그리고 동아출판, 천재교육인데요. 해냄에듀의 서술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다카하시 마코토와 고이데 유타카는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 동원 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돕고 있는 일본인이다. 이들은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 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을 만들어 피해 할머니들의 소송비와 항공료, 체류비를 지원하는 등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 회복과 피해 구제를 위해 노력하였다. 할머니들의 고향인 광주광역시는 이들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하였다.’ 이렇게 서술돼 있고요. 이 서술과 함께 2017년 광주광역시로부터 두 분이 명예시민증을 받거든요. 이때 찍었던 사진을 함께 첨부해서 싣고 있습니다.
◇ 정길훈: 다카하시 대표가 모두에도 말씀하셨지만 무등산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는데 이것은 어떤 이야기입니까?
◆ 노성태: 다카하시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의 만남은 저는 운명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더 운명적이게도 그의 사위가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인을 선택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딸이 캐나다에서 만난 유학생이 우연히 한국인이었고 한국인과 결혼하게 됐는데 아무튼 다카하시는 '신이 근로정신대 문제를 계기로 딸과 한국인 사위를 묶은 것 같다'면서 '내가 만약 죽으면 화장된 유골의 절반을 광주 무등산에 뿌려달라' 그런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 정길훈: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 노성태: 감사합니다.
정길훈 기자 (skynsk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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