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도 뜻대로 안되네요” 부동산 침체에 코너 몰린 중개업소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robgud@mk.co.kr) 2022. 12. 28. 16: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20일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중개수수료 인하 정책에 반대하는 휴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 본 기사와 관련 없음. [한주형 기자]
“매매 거래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아서요. 임대료나 경비 부담이 큰 신축 상가 쪽 중개사무소들은 이전이나 휴·폐업을 고민하고 있는 곳이 적지 않아요.”

부동산 경기 침체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문을 닫는 부동산중개업소가 덩달아 늘고 있다. 거래를 몇 건만 성사시켜도 웬만한 직장인 몇달치 월급을 중개보수로 벌 수 있다는 그동안의 인식과는 다른 모습이다. 지난해 공인중개사 1·2차 시험 원서접수자는 40만명에 육박하기도 했다.

28일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의 공인중개사 신규 개업은 853건, 폐업은 1103건으로 집계됐다. 폐업 건수에서 개업 건수를 뺀 차이는 9월 56건에서 10월 151건, 11월 250건으로 매달 100건가량 증가했다.

올해 8월부터는 폐업이나 휴업을 한 부동산 중개업소가 새롭게 문을 연 곳보다 더 많았다. 특히 지난달 새로 문을 연 중개업소는 전년보다 약 25% 줄었다.

폐업을 하려 해도 새로 개업하려는 사람(새 임차인)이 없어서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강남구에서 중개사무소를 운영 중인 A씨는 “폐업을 선택하면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 나와 손님을 기다린다”면서 “주변에 양도를 위해 사무소를 내놓은 중개사들도 권리금을 계속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연이은 금리 인상에 부동산 매수 수요가 사라지면서 중개 수수료에 기대 생존하는 공인중개사사무소는 거래 멸종의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만 봐도 석 달째 개업보다 폐업이 많다. 강남구에서는 지난 10월에만 30여 곳이 넘는 공인중개사사무소가 폐업했다.

서울 강남구의 또다른 중개사무소 관계자 B씨가 이달 들어 중개한 매물이 월세 3건뿐이다. 그는 “이 정도 거래로는 사무실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대출금리가 오르면서 아파트뿐만 아니라 빌라까지 매매와 전세 거래가 아예 사라져 굉장히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최근 치러진 제33회 공인중개사 시험 현장에서도 감지됐다. 공인중개사 시험은 대학수학능력시험처럼 1년에 1번만 치러진다. 그런데 실제 수험장에 나온 이들이 적었다는 말이 수험생들사이에서 나온다.

한 시험 응시자는 “지난 8월 시험 접수할 때에는 좌석을 못 잡을 만큼 인원이 몰렸는데 막상 시험 당일은 절반 이상 비어 있었다”면서 “시험 난이도는 점점 어려워지는데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다 보니 많은 이들이 등록만 하고 포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공인중개사 시험 신청자 수는 40만명에 달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 10월 치러진 33차 공인중개사 시험 신청자는 39만8080명으로 집계됐다. 44만명대인 올해 수능 응시생 수를 뺨치는 것이다.

중개업계 관계자는 “실제 종사하고 있는 공인중개사가 한 12만여 명이 좀 안 되는데 장롱 속에 있는 것까지 합치면 50만 개에 가까운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배출돼 있다”며 “지난해에 정부에서 시험 난도를 높였는데도 해마다 지나치게 배출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인중개사 시험의 합격자 수를 지금보다 더 제한하고 상대 평가를 적용하는 등 자격증의 수급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공인중개사 시험을 보는 응시자 중 절반 이상은 자격증이 미래에 유망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3일 교육기업 에듀윌의 공인중개사 수험생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50.3%가 ‘미래에 유망할 것 같아서’라고 응답했다.

일각에서는 부동산중개업계의 불황이 정부의 수수료율 조정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수년 동안 집값이 고공행진 하면서 이른바 복비라 불리는 수수료가 과도하게 높아지자 정부는 수수료율을 조정했다.

매매금액 구간별로 요율이 다르지만 기존에 수수료율이 0.5~0.9%이던 게 지난해 11월 19일 이후로 0.4~0.7%로 전반적으로 낮아졌다.

일례로 서울에서 시세 10억원의 아파트를 매매할 경우 기존에는 900만원의 중개수수료를 부담한 데 비해 지금은 500만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요율도 낮아졌지만 급매물 출현으로 시세가 하향 조정되기도 했다. 같은 기간 전월세 계약 수수료율도 내려갔다.

여기에 임대차 시장에서 수익을 챙기기가 어려워진 것도 또다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전월세 계약을 연장하는 대필 건에 대한 정해진 비용이 없기 때문이다. 통상 임대인과 임차인이 각각 5만원 씩 지불해 중개사에게 총 10만원 가량 정산하는 게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

서울 중구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C씨는 “개업공인중사들 중에는 대리운전 등 부업을 하는 이들이 많다”면서 “내년 전망이라도 좋으면 모르겠지만 밝지가 않다. 사무실 유지도 힘든 상황에 휴·폐업 밖엔 길이 없다”고 말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