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4일, 청와대와 통계청에선 무슨 일이?

홍진아 2022. 12. 28. 16: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1분위) 가계의 명목소득이 역대 최대로 급감했습니다. 반면 소득상위 20%(5분위) 가계의 명목소득은 1분기 기준 역대 최대로 급증해 소득분배지표가 2003년 통계청 집계 이후 최악으로 나타났습니다." -2018년 5월 24일 기사 中

2018년 5월 24일 발표된 통계청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펼치던 문재인 정권에 타격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홍장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통계청 소득통계 담당 과장과 주무관을 청와대로 호출했습니다. 회의에는 3개월여 뒤 통계청장으로 임명된 강신욱 전 청장도 보건사회연구원 소속으로 동석했습니다.

지금 진행 중인 감사원 감사는 이 회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청와대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통계 발표, 긴급 소집된 회의, 그리고 회의 참석자가 후임 통계청장에 발탁되기까지 윗선의 '압력'과 통계 왜곡이 있었는가, 밝히겠다는 겁니다.

그날, 청와대와 통계청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전현직 통계청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봤습니다.

■'소득 분배 최악' 결과에 靑 긴급 회의…통계청 직원 노트북 들고 참석

청와대에서는 소득분배 격차가 벌어진 이유를 찾기 위해 표본에 특정 집단이 과도하게 포함되는 등 오류가 생기진 않았는지, 확인을 요구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통계청 담당자가 밤 늦게까지 표본 데이터가 들어있는 노트북으로 1인 가구를 비교분석 해보는 등 표본을 일일이 뜯어봤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없다는 것을 청와대 관계자들과 함께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이에 홍 전 수석은 ‘심층 분석이 필요하니까 동일 가구 확인정보가 추가된 마이크로데이터를 강신욱 박사에게 보내달라’는 지시를 합니다. 통계청은 홍 전 수석의 요청대로 다음 날 오후 16시 52분에 가계동향조사 통계 원자료인 마이크로데이터를 강신욱 박사(3개월 뒤 통계청장 임명)에게 보냅니다.

자료를 받아 본 강신욱 전 청장은 가구 표본에서 신규 표본이 많이 늘어나면서 소득분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청와대에 설명했다고 합니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설명을 토대로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최저임금 증가로 인한 소득주도성장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밝혔습니다.

■ 靑 "통계청에서 자료 받았다" vs 통계청 "준 적 없다"…진실은?

이런 분석이 나온 뒤, 정치권에선 청와대가 어떻게 해서 통계청 원자료를 분석하고 인용했는지 문제 제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청와대와 통계청 간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청와대는 통계청에서 원자료를 받았다고 했지만, 황수경 당시 통계청장이 '청와대에 자료를 준 적 없다'고 반박한 겁니다.

결과적으로, 당시 공방은 통계청 담당 과장의 착오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밤 늦도록 이어진 회의에서 구두로 지시를 받고 다음 날 자료를 제공했는데, 이후 착오로 자료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잊고 청장에게 '자료를 준 적 없다'고 잘못 보고했다는 게 복수의 통계청 관계자 증언입니다.

담당 과장의 보고를 받고 '청와대에 자료 준 게 없다'고 반박했던 황수경 당시 청장은 난감해졌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잘못 보고한 통계청 과장은 다른 과로 전보 조치됐습니다. 한 달 뒤인 8월, 황 청장도 취임 13개월 만에 교체됐습니다. 당시 통계청 고위 관계자는 "황 전 청장이 해임 통보를 받은 건 인사 발표 하루 전이었다"고 KBS에 밝혔습니다.

여기까지가 소득분배 격차가 최악이라는 발표가 나온 2018년 5월 24일, 그리고 그날 회의를 계기로 벌어진 일련의 상황입니다.

2018년 1분기 가계동향 조사 발표 이후 전격 경질된 황수경 전 통계청장


■ 감사원 포렌식에서 확보된 '靑 요청사항' 문건

그런데 후임 강신욱 통계청장이 취임한 후인 2018년 8월 발표된 통계청의 2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도 소득 양극화는 심화된 것으로 나왔습니다. 언론 공표 며칠 전, 청와대는 다시 통계청 직원들을 불러 회의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를 주문했습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통계청 담당자는 회의 내용을 정리해 내부 보고용 보고서로 작성했습니다. 한 장짜리 회의 요약 보고서인데, '통계 자료를 좀 더 빨리 달라', '균형있게 발표해달라', '통계 조사 방법이 바뀌었다는 점을 잘 설명해달라'는 등 청와대 요청사항을 담았습니다. 또 이에 대한 통계청 측의 '수용', '불수용' 여부도 메모했습니다.

'통계 자료를 더 빨리 달라'는 요구는 통계법 때문에 불가능하다며 '불수용' 의사를 밝혔고, 나머지 요구들에 대해선 대체적으로 '수용'했다는 게 당시 통계청 관계자 설명입니다.

실제로 며칠 뒤 통계청은 언론 브리핑에서 표본에 변화가 있으니 "전년도와 올해의 통계수치를 직접 비교해 결과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거듭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한 장짜리 요약 보고서는 감사원이 통계청 직원들의 업무용 PC와 이메일 등을 포렌식하는 과정에서 복원됐습니다. 감사원은 이 문건이 청와대 압력의 주요 증거라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반면 당시 통계청 핵심 관계자는 "균형있게 발표해달라거나 조사 방법이 바뀐 걸 잘 설명해달라는 요구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법 규정을 위반해야 하는 요구에 대해 통계청이 명확히 불수용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압력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 통계청 '원자료 제공' 실정법 위반 논란

감사원이 통계청 감사에서 보는 주요 쟁점은 통계청이 청와대에 마이크로데이터 원자료를 제공한 것이 적법했는지, 청와대의 부당한 압력이 있었는지, 2018년 이후 표본 재설계 과정에서 저소득층 비중을 줄이는 조작이 있었는지 등입니다.

이 가운데 원자료 제공 논란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감사원은 통계청이 강신욱 전 통계청장, 당시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에게 원자료를 넘기는 과정에서 관련 절차와 법을 위반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통계법과 시행령, 관련 규정에 따르면 마이크로데이터를 공표 전 사전 이용하려면 문서로 신청해야 하고, 평가심의회에서 제공 여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하지만 2018년 당시 원자료 제공은 홍 전 수석의 구두 요청에 따라 이뤄졌고, 통계청 평가심의회는 열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당시 통계청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마이크로데이터 사전 제공을 요청한 것이 이례적이라서 절차를 몰랐을 수 있다'는 취지로 해명했습니다.

감사원은 또 연구원에 자료를 제공하면서 일부 개인 정보도 함께 넘긴 것은 개인정보보호 관련 법 위반 소지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 전 통계청 핵심 관계자 "통계 조작은 없다"

또 다른 쟁점인 청와대의 압력으로 위법한 통계 조작 행위가 있었는지를 두고는 당시 통계청 담당자들과 민주당, 국민의힘 간에 진실 공방이 뜨겁습니다.

특히 통계청장 출신인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은 강신욱 전 청장 임명 이후 통계청이 130억 원을 들여 월 소득 200만 원 미만 저소득층 표본비율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방식으로 통계를 조작했다고 강조합니다. 개편 이전 표본에서는 32.9%를 차지했던 월 소득 200만 원 미만 저소득층 비율이 개편 이후 25.8%로 7.05%p 줄었고, 그 결과 저소득층 비중 감소로 양극화가 개선된 것처럼 나왔다는 겁니다.

하지만 KBS와 만난 당시 통계청 핵심 관계자는 "소득 모집단이 없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소득별로 표본을 뽑는 것은 불가하고, 주택 공시지가로 표본을 뽑았다"며, "결과를 보니 공교롭게 2019년도에 소득 200만 원 이하 저소득층 분포가 줄어든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감사원은 황수경 전 청장과 강신욱 전 청장을 이미 불러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른바 '소득주도성장 통계' 논란 감사는 올해를 넘겨 내년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통계청 감사는 감사원 감사 중에서도 '고난이도'에 속한다고 합니다. '국가 통계'라는 전문적인 영역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여러 정황과 사정을 살피고 잘 검토해야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채 무르익기도 전에 정치권 공방만 요란해지자 감사원도 부담스러운 기색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한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기자들에게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일단은 차분하게 감사 진행 상황을 지켜볼 일입니다.
https://news.kbs.co.kr/special/danuri/2022/intro.html

홍진아 기자 (gina@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