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올 겨울 정전 60% 급증… 탈원전에 전력 안정성 ‘골병’

이윤정 기자 2022. 12. 28. 15:1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 12월 전국서 74건 정전… 2만3000여가구 피해
겨울철 취약한 태양광 늘리고 설비투자 소홀 결과
산업부 차관·한전 사장의 ‘설비 관리’ 당부도 무력

체감온도가 영하 15도 안팎으로 떨어졌던 지난 22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 아파트 단지의 전력이 끊겼다. 아파트 관리실은 “한국전력으로부터 전원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상암동 일대에서 예고 없는 반복적인 정전이 발생하고 있다”며 긴급 공지했다.

올해 12월에만 전국에서 70건이 넘는 정전이 발생해 2만3000여가구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60% 이상 급증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변동성이 큰 신재생에너지 발전원을 대폭 늘리고 전력망 투자에 소홀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이라도 투자를 늘려야 하지만, 한전은 탈원전 정책 여파로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고 있어 자금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그래픽=손민균

28일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2월 들어 지난 26일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5분 이상의 정전은 총 74건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46건)과 비교하면 61% 늘어난 수준이다. 12월 정전 건수는 2018년 61건에서 2019년 53건으로 줄었다가 2020년 다시 66건으로 늘어났다. 작년에는 46건으로 줄었지만 1년 만에 다시 70건을 넘어선 것이다.

12월 한 달간 74건의 정전으로 피해를 본 가구 수는 2만3007호에 달한다. 지역별로 보면 광주전남본부의 피해 규모가 5280호(13건)로 가장 컸다. 이 외에는 ▲대구본부(4392호·10건) ▲대전세종충남본부(4390호·8건) ▲부산울산본부(2050호·5건) ▲충북본부(1760호·4건) ▲경기본부(1737호·11건) ▲경기북부본부(1612호·5건) 등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정전이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지역은 경남이 유일했다.

올해 12월 정전의 원인은 기자재 고장이 20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 외엔 일반인 과실 17건, 고객 소유의 구내설비 불량 등 고객 파급이 15건, 조류와 은박지 등 외물 접촉이 8건, 자연현상과 시공보수가 각각 4건씩이었다. 올해 12월 정전 건수가 증가한 데 대해 한전은 “차량 충돌, 중장비 접촉 등 일반인 과실이 6건 늘었고, 고객 소유의 구내설비 불량 등이 10건 늘어 대부분의 증가분을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정전이 급증했다는 것은 그만큼 전력 안정성이 취약해졌다는 신호다. 원인 중 하나로는 문재인 정부가 5년간 시행한 탈원전 정책이 꼽힌다. 국내 태양광 설비는 원전 축소·신재생 확대 정책에 따라 수년간 4~5GW(기가와트)씩 늘어왔다. 특정 시간대에만 전력을 생산하는 태양광 설비는 겨울에 특히 취약하다. 지난 23일 전라·충청권에서는 폭설이 내려 태양광이 전력을 제대로 생산하지 못했다. 이 빈자리는 값비싼 액화천연가스(LNG)가 채웠다.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지난 22일 서울 성동구 성동변전소를 방문, 겨울철 전력수급 관리상황을 점검했다./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전력 공급의 핏줄인 송·배전 설비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점도 전력 안정성을 낮춘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은 동해안 지역 발전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230㎞ 길이의 500㎸ 직류 장거리 송전망(HVDC)을 당초 올해까지 건설할 예정이었지만, 주민 반대 등의 이유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 지역에 화력발전소가 속속 들어서고 있지만 송전망이 없어 전력을 생산하고도 내보내지 못할 상황이다.

올 겨울은 기온이 급격히 낮아져 전력 안정의 중요성이 크게 확대됐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전 11시 최대 전력 수요는 9만4509㎿(메가와트)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날 오후 5시 9만2999㎿로 최고치를 찍은 지 하루 만에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정부는 당초 1월 셋째주는 돼야 겨울철 최대전력수요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그 수준 역시 9만400~9만4000㎿였다. 12월에 이미 피크 전망치를 넘어선 것이다.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과 정승일 한전 사장까지 나서 전력 안정성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급증하는 정전은 막지 못하고 있다. 지난 22일 박 차관은 서울 성동변전소를 찾아 “전력 유관기관은 변전소를 비롯한 전력설비에 불시 고장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를 철저히 하고 비상 대응태세를 유지해달라”고 당부했다. 정 사장 역시 하루 뒤 서울 신양재변전소를 방문해 겨울철 전력설비 운영과 관리 상황을 점검했었다.

탈원전 정책으로 취약해진 전력 시스템 때문에 국민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전임 정부가 에너지 안보를 가볍게 여긴 결과는 이제 시작”이라며 “당장 투자를 늘린다 해도 전력 안정성을 다시 높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한 만큼 전기요금 인상, 에너지 절감 등을 통해 국민이 버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