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서평생활] 지금도 난쏘공을 읽는 이유

장슬기 기자 2022. 12. 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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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이성의힘 펴냄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 일부 비표준어, 장애인 비하 논란 표현이 있지만 원문 그대로 표기합니다.

조세희 작가가 지난 25일 오후 7시경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이 세상에 나온 지 44년이 흘렀다. 독재정권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우화소설 기법을 썼지만 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게 만든 작품, 최소한의 몫조차 없는 약자들 아픔에 공감하며 쓴 소설, 학창시절 한 번쯤 읽고 배우고 고민했던 '난쏘공'을 다시 펴들게 된다.

1975년 12월 난장이(난쟁이) 연작 중 처음 내놓은 '칼날'을 시작으로 '뫼비우스의 띠',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등 연작 12편을 묶어 1978년 소설집 '난쏘공'을 출간했다. 이중 네 번째 단편 이름도 '난쏘공'이다. 1978년 6월 초판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와 1996년 100쇄를 넘겼고 2000년 이성과힘에서 펴냈다. 사회문제를 다룬 소설이 148만부, 300쇄를 넘긴 사례는 유일하다.

소설집의 첫 작품 '뫼비우스 띠'는 탈무드에 나와 잘 알려진 일화로 시작한다. 수학교사가 학생들에게 묻는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13쪽)”

이 질문에 한 학생이 '더러운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답했다. 교사는 아니라고 답하며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의 아이를 보고 자기도 깨끗하다고 생각한. 이와 반대로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는 상대방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학생이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답했다. 교사는 그 답도 틀렸다며 이렇게 말했다. “두 아이를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한 아이의 얼굴은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15쪽)”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이성의힘 펴냄

질문, 즉 전제부터 잘못됐다는 것을 지적한 이 대목을 소설집 처음에 넣은 이유는 뭘까? 같은 굴뚝에 들어갔는데 한 명만 더러워질 수 있는가. 같은 세상에 사는데 한 명만 고통받을 수 있는가. 같은 공간에 산다면 비슷하게 깨끗하거나 비슷하게 더러워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렇지 않다. 같은 굴뚝에서 한 명만 더러워질 수 있다. 사회구조가 그렇게 돼 있다. 옆 사람의 고통이 전달되지 않는다.

수학교사는 이처럼 대답한 뒤 칠판에 '뫼비우스의 띠'라고 적었다.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곡면. 어쩌면 한번 더러워지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 어둠의 굴레를 암시하는 장면이다. 수학교사의 이 이야기 직후 소설은 빈민촌 얘기로 향한다.

재개발 현장에서 '꼽추(척추장애인)'와 '앉은뱅이(지체장애인)'는 한 사내에게 시에서 주는 이주금보다 웃돈을 받고 입주권을 판다. 그러나 그들은 갈 곳이 없어 재개발 현장에서 계속 머물고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친다. 살 곳이 없어진 그 둘은 사내가 자신들의 입주권을 자신들이 판 가격(16만원)에 두배 이상으로 팔아치운 것(38만원) 알고 사내에게 가서 그를 밧줄로 묶고 돈을 훔치고 차에 불을 지른다. '앉은뱅이'는 강냉이 장사를 하기로 결심하지만 '꼽추'는 살인을 하고 죄책감이 없는 '앉은뱅이'에게 질려버린다.

내가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데 원주민인 내가 가장 손해를 보는 질서, 내가 살던 곳으로 엉뚱한 사람들이 돈을 벌어가고 나는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세상, 수학교사가 말한 굴뚝이다. 같은 굴뚝에 있었던 것 같은데 나만 더러워져 있다. 이건 지옥이다.

네 번째 단편 '난쏘공' 첫 부분에도 유명한 대목이 나온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잘 참았다. 그러나 그날 아침 일만은 참기 어려웠던 것 같다.(80쪽)”

그날 아침 일은 '철거 계고장이 나온 일'을 가리킨다. 다섯 식구는 '난장이'인 아버지 김불이, 어머니, 첫째아들 영수, 둘째아들 영호, 막내딸 영희를 말한다.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에 사는 이들의 현실은 이러했다.

“영희의 몸에서는 풀냄새가 났다. 개천 건너 주택가 골목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나(영희)는 그것이 고기 굽는 냄새인 줄 알면서도 어머니에게 묻고는 했다. '엄마, 이게 무슨 냄새야?' 어머니는 말없이 걸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엄마, 이게 무슨 냄새지?' 어머니는 나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걸음을 빨리하면서 말했다. '고기 굽는 냄새란다. 우리도 나중에 해먹자.' '나중에 언제?' '자, 빨리 가자' 어머니는 말했다. '너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집에 살 수 있고, 고기도 날마다 먹을 수 있단다.' '거짓말!'(85쪽)”

집을 잃고 입주권을 얻었지만 투기꾼들이 몰려들면서 입주권 가격이 뛰는 가운데 이를 팔았다. 전세금을 갚고 나니 남는 돈이 없다. 집도 잃고 돈도 잃었지만 투기꾼들은 막대한 부를 벌었다. 영희는 투기꾼에게 몸을 팔았다. 지옥에 사는 영희가 천국처럼 보이는 곳에 있는 투기꾼(그)을 비교한 장면 역시 인상적이다.

“우리는 출생부터 달랐다. 나의 첫 울음은 비명으로 들렸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나의 첫 호흡이 지옥의 불길처럼 뜨거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모태에서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했다. 그의 출생은 따뜻한 것이었다. 나의 첫 호흡은 상처난 곳에 산을 흘려넣는 아픔이었지만, 그의 첫 호흡은 편안하고 달콤한 것이었다. 성장 기반도 달랐다. 그에게는 선택할 것이 많았다. 나나 두 오빠는 주어지는 것 이외의 것을 가져본 경험이 없다. 어머니는 주머니가 없는 옷을 우리들에게 입혔다. 그는 자라면서 더욱 강해졌지만 우리는 자라면서 반대로 약해졌다.(131쪽)”

그렇게 천국과 지옥의 격차를 견뎌가며 힘겹게 영희는 입주권과 돈을 찾아 행복동에 돌아왔다. 하지만 '난장이' 아버지는 이미 벽돌공장 굴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뭘 해도 '비명으로 들린 첫 울음'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뫼비우스의 띠다.

▲ 지난 25일 세상을 떠난 조세희 작가. 사진=MBC 갈무리

난쏘공은 쉬운 대립구도로 구성됐다. 풀냄새와 고기 냄새, 가난한 자와 부자, 노동자와 사용자, 철거민과 투기꾼 등으로 구분돼 이해하기 쉽다.

2000년 속간 당시 조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지금도 박정희·김종필 등 이 땅 쿠데타의 문을 활짝 연 내란 제일세대 군인들이 무력으로 집권해 피말리는 억압 독재를 계속하지 않았다면 '난쏘공'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썼다. 독재가 사라졌는데도 난쏘공이 계속 읽히는 세상이 의아했을 대목이다.

그럼에도 그는 어렴풋이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에서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며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조 작가 별세 소식에 많은 이들이 한마디씩 보태고 있다. 난쏘공에서 착취자 위치에 있는 이들도 애도를 표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권력자들은 필요할 때마다 '난장이'를 자처하거나 '난장이'와 함께하는 제스처를 흉내낸다.

“자세히 보면 지금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만, 그때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악'이 대놓고 '선'을 가장하는 것이었다. 악이 자선이 되고 희망이 되고 진실이 되고, 또 정의가 되었다.(작가의 말)”

'작가의 말'을 쓰고 22년이 흘렀다. 지금은 '난장이'가 악이 됐다. 2022년의 '난장이'들은 난쏘공 속 '난장이'와 달리 열심히 일하지 않고, 불법을 저지르며 다수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처럼 폄하·왜곡당하고 있다. 여전히 난쏘공이 읽히는 이유는 현실의 '난장이'와 난쏘공 속 '난장이'의 간극이 아직도 줄어들지 않아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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