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포용하면서도 "보편가치 도전 우려"…딜레마 품은 韓인태전략
한미일·한미호·쿼드 등 협력 명시…"과도한 경제 안보화 않도록 공조" 언급도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한국 정부가 28일 발표한 첫 독자적 인도·태평양 전략에는 이 지역 내에서 한국이 처한 독특한 외교적 입지와 딜레마가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보편적 가치'를 함께하는 동맹이지만, 중국과도 밀접하게 협력하는 파트너로서 정면 대립하기 어려운 현실이 한국 인태전략에도 담겼다는 평가다.
한국이 인태 전략을 수립한다고 했을 때 핵심적으로 관심을 모은 부분은 인태지역 내 주요국, 특히 중국을 어떤 상대로 규정하느냐였다.
중국의 패권 확장과 이에 따른 미중 경쟁 격화가 현재 인태 지역의 엄연한 현실인 만큼 피해 가기 어려운 문제였다. 이런 까닭에 한국보다 먼저 인태 전략을 발표한 국가들도 각자 국익과 위치에 따라 다양한 대중국 관점을 인태 전략에 담은 바 있다.
정부는 이번 보고서에서 중국을 "인태 지역의 번영과 평화를 달성하는 데 있어 주요 협력 국가"로 규정했는데, 최근 미국과 일본이 내놓은 대중국 인식보다는 포용적인 시각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올해 2월 발표한 인태전략에서 "우리가 다음 10년 동안 어떤 공동의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중국이 인도태평양과 세계를 이롭게 해온 규칙과 규범을 변형시키는 데 성공할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며 중국을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현상변경 세력으로 간주했다.
인도·태평양 개념을 처음으로 주창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도 최근 발표한 국가안전보장전략에서 중국을 "지금까지 없었던 최대의 전략적 도전"으로 기술하며 견제 의도를 드러낸 바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제일 중요한 원칙이 포용성"이라며 "특정 국가를 전혀 배제하는 것이 아닌 다 같이 아우르는 노력을 선도해 나간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한국 인태전략은 "국제규범과 규칙에 입각해 상호 존중과 호혜를 기반으로 공동 이익을 추구하면서 보다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관계를 구현해 나갈 것"이라며 한중관계에서도 '규범과 규칙'을 중시하겠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역내 일부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자유, 법치주의, 인권 등 보편적 가치가 도전받고 있어 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는 시각도 드러냈다.
아세안이 2019년 채택한 '인도·태평양에 관한 아세안의 관점'(AOIP)이 중립적 기조를 강하게 드러내며 아예 중국을 명시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던 것보다는 선명한 관점인 셈이다.
중국 등 특정 국가를 겨냥·배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하면서도, 실제 행동에서는 미국을 비롯해 '보편적 가치와 국제 규범을 공유하는 유사입장국들과 연대'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다수 포함한 것 역시 한국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보고서는 "압제와 강요가 아닌 규칙과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지역 질서를 능동적으로 촉진"하겠다며 "보편적 규범과 가치를 위협하는 행동에 대해 국제사회와 함께 규탄하고 엄중히 대응할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중국 등이 보이는 강압적 행태를 염두에 둔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일 3국 협력을 강조하고, 한·미·호 3자나 AP4(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아시아태평양 파트너 4개국) 간 협력 확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파트너십 발전 등을 언급한 것은 유사입장국 연대 강화를 위한 구체적 계획이다.
또 "쿼드(Quad)와도 협력의 접점을 확대하고자 한다"며 "우리가 강점을 지닌 감염병, 기후변화, 신흥기술과 같은 분야에서 쿼드와 협력을 추진하면서, 협력 기반을 점차 확대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해군 함정 등 군수물자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은 역내 중요한 현안인 남중국해 등 해양안보 문제에서 한국이 더 적극적인 기여를 하겠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인태전략 발표 직후 즉각 환영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발표로 한미, 한미일의 인태전략이 한층 동조화할 수 있다는 기대가 엿보인다.
다만 한국 인태전략에는 안보 논리에 따른 '경제 블록화' 흐름 속에서도 '개방형 통상국가'로서 한국의 고유한 정체성을 강조하려고 한 흔적도 있다.
보고서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제 질서 구축에 앞장서면서 경제문제가 과도하게 안보화되지 않도록 공조해 나갈 것"이라고 명시했다.
미국은 안보와 가치, 경제가 분리되기 어렵다는 인식에 따라 대중국 첨단기술 수출통제 등을 적극 추진 중인데 한국이 앞으로 이에 어떻게 협력할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이처럼 고심 끝에 마련된 한국의 인태 전략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서로 양립이 어려울 수 있는 목표들이 함께 담긴 측면도 있다. 앞으로 실제 이행이 더욱 까다로운 과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국의 인태전략이 "포지티브한 전략"이라며 "인태전략을 발표한 나라들과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을 적극 발굴해 같이 나아간다는 입장이다. 긍정적으로 더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역내외 국가들과 함께 노력해 나간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차대전 이후 세계적으로 봤을 때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국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한 사례"라며 이런 위상을 토대로 한 기여 가능성이 한국 인태전략을 가장 차별화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kimhyo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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