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규제 완화와 도심 재정비

김길성 서울 중구청장 2022. 12. 2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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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성 서울 중구청장.

다산로는 종로구 창신동에서 중구 신당동을 지나 약수고개까지 이어지는 총 3.2km의 6차선 도로다. 짐작하겠지만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의 호에서 이름을 따왔다. 조선 시대 청계천에서 한강으로 나가는 주요 통로였고 지금도 강남과 강북을 잇는 관문 역할을 한다. 충무로나 퇴계로보다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중구민 70% 이상이 살고 있고 신당역, 청구역, 약수역 등 지하철 4개 노선이 관통하는 초역세권이자 중심가로다.

필자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창 시절을 중구에서 보냈다. 이후 37년이 지나 중구청장으로 다시 왔는데 사람만 변했지, 다산로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수십 년 새 더 낡아졌을 뿐이다. 30년 넘은 저층 건물이 65%에 이를 만큼 노후 돼 버렸다. 남산 자락이나 을지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심각한 도심 노후화의 원인은 규제다. 중구에는 남산과 여러 역사자원이 있어 높이 제한 등 몇 겹의 규제에 오랜 시간 묶여 있다. 50여 년 가까이 개발은 막혔고 남는 건 오직 주민들의 끝없는 희생이었다. 게다가 전임 시장 때까지 개발보다는 보존에 초점을 두고 재생사업에 주력했다. 그 사이 주거환경은 더 낙후됐고 도심 공동화도 심해졌다. 한때 20만 명대까지 갔던 중구 인구는 12만 선까지 줄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중심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무엇이 필요한 지 밑그림을 그리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절박함 속에 구청장 직속의 도심재정비전략추진단을 구성하고 도시개발 비전과 실행전략을 세웠다. 핵심은 규제 완화를 통한 고밀·복합 개발이다. 쉽게 말해 건물은 최대한 고층으로 올려 다양한 용도를 집약하는 대신 건물 간에는 보다 여유를 둬 녹지와 즐길 거리로 채우는 전략이다.

가장 먼저 눈길을 돌린 곳은 다산로다. 저층 일색 다산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신당·청구 역세권과 황학동 일대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고 약수역 일대 지구단위계획도 다시 손봤다. 건축물 높이 완화, 토지 종 상향 등을 적극 반영해 개발 여건을 마련했다. 고밀・복합 개발 방향성 그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일대와 장충동 일대도 재정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신당10구역 등 인근 주택재개발사업에는 속도를 입혔다. 과거처럼 팔짱만 끼고 지켜보는 게 아니라 신속통합기획과 조합 직접설립제도를 권장하고 정부의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 참여를 통해 사업 기간 단축을 도모하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는 서울시의 도심부 정책 방향이 적극적인 정비로 전환된 만큼 큰 변화가 예고된다. 서울시는 174개 구역으로 작게 나눠놓은 촉진 계획을 변경해 대규모 개발이 가능토록 구역을 조정한 후 고시할 예정이다. 서울시와 손발을 맞춰 고밀·복합 개발로 업무와 주거, 녹지와 문화가 조화된 ‘직주락(Work, Live, Play)’ 도시로 조성할 것이다.

아무리 탄탄한 도시계획도 주민 참여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정비사업 자체가 워낙 다양하고 복잡해 올바른 정보를 얻는 게 쉽지 않으니 참여의 벽도 높다. 결국 특정 세력에 의한 편향적 정보에 그릇된 판단을 하거나 불필요한 갈등에 휘말려 개발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잦아진다.

이를 방지하고자 시작한 일이 찾아가는 주민설명회와 아카데미였다. 구청이 나서 공신력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주민 궁금증을 일일이 풀어드렸다. 설명회를 열 때마다 행사장이 가득 찼고 서서 듣는 주민도 수십 명에 이를 만큼 호응이 뜨거웠다. 설명회에 왔던 한 주민은 그동안 오해하고 있었다며 생각을 바꾸기도 했다.

이제는 남산 고도제한 완화에도 주민 목소리를 담고자 한다. 현재 고도 제한은 이미 철거된 고가도로를 기준으로 설정되어있는 등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남산 보존과 주민 피해 최소화 사이에 적정선을 찾기 위한 연구 용역과 함께 주민 공론장을 활성화하여 남산 고도제한 완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것이다.

도시 노후화와 그에 따른 주민 갈등은 중구만의 고민이 아닐 것이다. 지자체가 앞장서 규제 완화에 팔을 걷고 개발에 주민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눈높이에서 소통해야 한다. 도시의 미래를 찾는 여정에서 유일한 지름길이다. 이제 우리도 뉴욕 허드슨야드나 런던 더샤드처럼 숲과 사람, 건물이 어우러진 도시를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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