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조화 담긴 조선후기 천문시계 '혼천시계' 복원

이영애 기자 2022. 12. 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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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과학관은 260년 전 발명된 혼천시계를 2년간의 연구 끝에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왼쪽이 천문 관측 기구 혼천의, 오른쪽이 자명종 시계다. 과기정통부 제공

국내 연구팀이 시간과 천문 정보를 동시에 알려주는 조선 후기 발명품인 '혼천시계'를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국보 제230호로 남아있는 유일한 혼천시계인 '송이영의 혼천시계'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나온 셈이다.

국립중앙과학관은 윤용현 한국과학기술사과 과장팀이 2년간의 연구 끝에 문헌으로만 전해지던 조선 후기 천문시계 '홍대용 나경적의 혼천시계(통천의)'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고 28일 밝혔다.

혼천시계는 당시 천문 관측 기구였던 '혼천의'에 시계를 연결해 시간은 물론 천체와 계절까지 한 눈에 알 수 있는 발명품이다. 혼천의는 지구를 중심으로 하늘의 적도 좌표, 태양과 행성의 운행궤도를 알려주는 천문 관측 장비로 국내 1만원권 지폐 뒷면에도 그려져 있다.

홍대용의 혼천시계는 천체의 운행을 통해 날짜와 시각을 알려주는 혼천의에 추를 동력원으로 삼는 자명종을 연결했다. 자명종은 무게추가 좌우로 움직이며 발생한 동력으로 시계를 돌리는데 혼천시계는 혼천의를 자명종의 한 축과 연결해 자명종에서 발생하는 동력원으로 해와 달의 주기까지 알 수 있다.

윤 과장팀은 홍대용의 저서 속 혼천의와 자명종의 재원과 서술된 수학적 특성을 분석해 이를 복원했다. 고려대 박물관과 서울대 박물관에 남아있는 조선 후기 자명종의 작동방식을 참고했다.

윤 과장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혼합된 발명품이라는 점에서 우리 선조들의 창의성을 엿볼 수 있다"며 "청나라(중국)와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자명종이 들어왔지만 여기에 기존의 발명품을 접목해 개량하려고 시도한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1592년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에는 일본이나 청나라를 통해 자명종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당시 많은 학자들은 자명종의 원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조선 후기 문신 김육의 견문록인 '잠곡필담'에서는 "효종 때에 밀양사람 유여발이 일본 상인이 가지고 온 자명종에 대해 연구한 끝에 그 구조를 터득했는데 기계가 돌아가면 매시 종을 친다"며 "자오시(11~1시, 23~1시)에는 9회, 축미시(1~3시 13~15시)에는 8회, 인신시(3~5시, 15~17시)에는 7회 치고 매시의 중간에는 1회씩 친다"고 쓰여 있다. 기록에 따르면 유여발은 우리나라에서 자명종의 원리를 처음 체득한 인물인 셈이다.

자명종의 원리를 토대로 이를 국내 기술로 구현하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현종실록에는 조선 후기 과학자이자 관상감의 천문학교수였던 송이영이 자명종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관상감은 지금의 기상청에 해당하는 관서이고 그는 천문학교수라는 천문학 생도의 교육을 맡아보던 종6품의 관직을 지냈다. 또 1715년 관상감의 관원이었던 허원이 청나라에서 들여온 자명종을 본떠 새로운 자명종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 선조들은 자명종을 따라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혼천의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개량해 혼천시계를 만들었다. 이번에 복원에 성공한 혼천시계는 조선의 실학자였던 홍대용과 나경적이 만든 혼천시계로 국내 유일하게 남아있는 송이영의 혼천시계(국보 제230호·고려대 박물관 소장)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송이영의 혼천시계가 태양 모형에 실을 감아서 일 년간 태양의 연주운동을 구현했다면 홍대용의 혼천시계는 톱니바퀴를 이용했다. 회전력과 기어장치만으로 태양 모형을 실제 천체의 움직임에 맞게 자동운행시킨 셈이다.

크기도 더 작아졌다. 윤 과장은 "홍대용의 혼천시계는 송이영 작품의 3분의 1 크기로 훨씬 정교해졌다"며 "시계는 작아질수록 더 발전된 형태라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동·서양 문화가 접목된 혼천시계의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혼천시계에 관한 책을 집필하기도 한 중국 과학사학자인 영국의 조지프 니덤 전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조선의 혼천시계는 동아시아 시계사에서 획기적인 유물"이라며 "세계 유수의 과학관에서 복원해 전시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석래 국립중앙과학관 관장은 "홍대용 혼천시계는 세종대 자격루, 옥루 등 과학문화재와 함께 해외전시를 통한 과학한류 확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국립중앙과학관은 홍대용 혼천시계의 핵심 과학원리를 체험할 수 있는 전시품을 만들어 내년 봄부터 전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ya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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