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브렉시트는 "방 안의 코끼리" 같은 존재

강영진 기자 2022. 12. 2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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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CNN 전문가 인용해 보도
영국 경제난의 가장 큰 원인인데도
모든 지도자들 브렉시트 관련 논의 꺼려

[런던=AP/뉴시스]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이 지난 8월 31일 리즈 트러스 총리와 런던 웸블리 공연장에서 열린 차기 총리 선거운동에 참석한 뒤 무대에 서 있다. 수낵 전 재무장관은 24일(현지시간) 영국 차기 총리 겸 보수당 대표로 당선됐다. 2022.10.25.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최근 영국의 극심한 경제난의 근본적 원인이 지난해 1월 1일 발효한 브렉시트(Brexit·유럽연합(EU) 탈퇴)지만 영국 지도자들 누구도 브렉시트가 원인임을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있다고 미 CNN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브렉시트가 ‘방 안의 코끼리(누구나 알면서 발설을 꺼리는 금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플린트 글로벌 컨설팅의 파트너 샘 로우는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 산업계가 유럽 시장에서 활동하기 어려워져 EU와 교역을 하는 기업들의 비용이 증가하고 중소기업들 일부는 너무 힘들고 복잡해 아예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영국 예산국은 올해 초 EU에 대한 상품 및 서비스 수출입이 브렉시트 이후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이는 실생활에 충격으로 나타났다. 수출하지 못한 영국산 채소가 썩고 잡아 올린 물고기들이 다시 바다로 버려지고 있다. 수입 물품의 가격이 오르면서 생활비 상승을 가중시키고 있다.

브렉시트의 부정적 영향은 정치에서도 나타난다. 영국과 EU는 2019년 브렉시트 합의의 핵심 조항이던 북아일랜드 처리 방안에 아직도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북아일랜드 관련 이행 조치를 진행하지 않으면서 현지의 연합당과 공화당 연립정부가 붕괴함으로써 지난 2월 이래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이는 정치 세력 간 폭력사태로 점철된 북아일랜드 역사를 감안할 때 새로운 폭력사태가 벌어질 위험을 높인다.

이처럼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영국에선 브렉시트의 수정 내지 반대 입장을 밝히는 것이 금기가 되고 있다.

브렉시트 전문가 라울 루패럴은 “주요 정당들이 브렉시트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으려 한다. 보수당은 자신들이 주도한 브렉시트가 잘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논의 대상이 되는 걸 꺼린다. 노동당은 유권자들이 내심 EU 복귀를 원하는 경우 총선 승리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브렉시트 완화 정책으로 공격당할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케이르 스타머 노동당수는 브렉시트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5개 정책을 발표하면서 EU는 물론 EU 산하 기관 복귀 의사가 전혀 없음을 전제로 한 것을 강조했다.

노동당원 상당수가 스타머의 노선에 실망하고 있지만 노동당은 현재 어느 때보다도 집권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2019년 총선에서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노동자들이 보수당을 지지해 보수당이 압승했음을 잘 아는 스타머 당수는 이들을 다시 노동당 지지로 끌어 들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늦어도 2025년 1월에 실시되도록 돼 있는 다음 총선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될 전망이다. 브렉시트를 개선하자는 논의는 있지만 모든 정치 지도자들이 ‘EU 복귀’라는 폭탄이 자기 손에서 터지는 일은 결사적으로 피하려 하는 때문이다.

그 결과 국가 운영의 장기적 방향과 목표가 제시되지 않고 있다. 루패럴은 “브렉시트 이후 국가의 방향에 대한 전략이 아직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면서 “성장은 어떻게 추진하고, 유럽 시장과 계속 긴밀한 관계를 맺을 것인지 아니면 보다 넓은 세상에 진출하려는 노력을 펼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없다. 우리는 미국, 중국과 대규모 제조업 경쟁에 나설 형편이 못된다. 그렇다면 첨단 연구 및 혁신에 집중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국의 브렉시트 전략이 불투명한 점은 영국이 EU와 협상하는데 약점으로 작용한다. 나아가 EU와 무엇을 협상해야 하는지마저 불분명한 상태다. 아난드 메넌 싱크탱크 ‘변화하는 유럽’의 영국 지부장은 “EU와 적극적으로 협상을 해 새로운 합의가 필요한 부문이 많은데 영국 정치인 누구도 협상을 질색한다”고 말했다.

2016년 영국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통과될 당시 논리는 영국이 전세계 각국과 새로운 무역협정을 체결해 EU의 규제를 벗어나면 경제의 국제적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었다. 영국은 호주와 새 무역협정을 체결했지만 협정이 영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에 미친 효과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다.

반면 영국 예산국은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남아 있을 경우와 비교할 때 GDP가 향후 15년 새 4%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수출입은 15%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낙후 지역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방법으로,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기업 세금 인하를 통한 공급 부문 개혁을 통해, 리시 수낙 현 총리는 은행규제 및 서비스 부문 규제 완화를 통해 경제 성장을 추동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다른 모든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추진하는 것들이다.

브렉시트는 영국 정치에서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과제다. 가장 큰 쟁점으로 부각되지는 않지만 항상 폭발적 이슈로 잠재해 있다. 브렉시트 때문에 영국이 하룻밤 새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브렉시트는 영국인들의 일상에 더 크게 영향을 줄 것이다.

리시 수 총리든 스타머 노동당수든 다음 총선까지 브렉시트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위험하다. 총선이 열리는 2년 뒤까지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큰 일이 벌어지면 영국인들은 지도자들이 국가가 직면한 중요 문제를 방치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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