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오마카세를 위하여…오늘은 기꺼이 참는다” [어떻게 보십니까 2023 - 新소비]
스스로 가치있는 소비 위한 ‘극단적 절제’
여러 플랫폼 이용 소비 ‘체리슈머’ 등장
경험 더 중시…살 때부터 ‘중고거래’ 염두
가성비·과시형 소비 아무렇지 않게 공존
형식적 관계 거부, 통제 가능한 만남 추구
# 1. 직장인 권모(30) 씨는 물가가 가파르게 오른 뒤로 12월 한 달간 옷을 사지 않는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 중이다. 권씨는 2년 전에 구입한 롱코트와 지난해 산 숏패딩 두 벌로 겨울을 버티고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챌린지에 성공한 나를 위한 선물을 살 예정”이라며 “최대한 아끼다가 ‘정말 애정하는 브랜드’에서 나온 신상 목도리를 사려고 구입 우선순위를 만들어 놨다”고 했다.
# 2. 혼자 자취하는 박지은(28) 씨는 편의점 구독쿠폰을 구입해 일주일에 일곱 번은 4000원대 도시락을 사 먹는다. 내년 1월 중순에 4박5일 일정으로 일본여행을 준비 중인 그는 “비행기표 가격이 올라 계획보다 60만원을 더 쓰게 됐다”면서도 “해외여행을 포기할 수 없어 두 달간 식비 지출을 최대한으로 절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금리·고환율·고물가 여파로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졌지만 미래를 위해 현재의 욕구까지는 희생하지는 않는 ‘소비 디톡스’ 시대가 내년 도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를 무작정 줄이기보다는 여러 플랫폼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소비하려는 추세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이 같은 소비자를 가리키는 ‘체리슈머(cherry-sumer)’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한정 자원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용 대비 효용이 뛰어난 것만 쏙쏙 골라 합리적으로 구매하는 전략적 소비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구매는 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챙기는 ‘체리피커(cherry-picker)’에서 진일보한 개념이다.
해당 키워드를 제시한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등은 ‘트렌드 코리아 2023’을 통해 “1998년 외환위기 등 불황기에 소비자가 지갑을 닫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며 “그런데 현재 소비자의 행태는 자신의 소비 지출을 주도적으로 관리하고 편집한다는 점에서 과거 불황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는 심도 있게 자신의 취향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배경과도 연관돼 있다. 특별한 사람의 고급 취향으로 여겨지던 미술이나 사치품으로 간주되던 프리미엄 주류 등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취향의 영역으로 넓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기간 우리의 ‘음미력(吟味力)’이 높아진 결과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나 자신을 느끼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고 그 결과 소비를 대하는 자세도 바뀐 것이다.
과거에만 해도 고물가로 인한 소비 양극화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소비를 부추겼다. 이제는 가성비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가치 있는 소비를 위해 극단적으로 절제하는 효율 감각도 키우게 했다.
대홍기획은 ‘2023년 소비를 이끄는 라이프 시그널’ 보고서를 통해 “함께하기 어려워 보이는 ‘가성비’와 ‘플렉스(과시형 소비)’가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하고, 살 때부터 팔 것을 생각하며, 어떤 영역에서든 이익을 내는 방법이 무엇인지 궁리하는 게 요즘 소비”라고 진단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특히 MZ세대에게 소비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신한카드가 올해 1~9월 고객의 유통기한 임박 식품몰 이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이용 건수는 22%, 이용 회원 수는 17%, 이용금액은 10% 각각 늘었다. 올해 3분기까지 모바일 쿠폰거래 플랫폼 이용 건수도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83%까지 증가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빅데이터 분석 전문기업 NICE지니데이타에 따르면 ‘오마카세(요리사가 알아서 내주는 코스요리)’ 결제금액과 언급량이 늘었다. 외식물가가 2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뛰어올랐지만 스시부터 한우, 디저트까지 미식 경험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취향형 소비’로 꼽히는 골프·호텔·리조트 결제금액도 지속 상승했다. 올해 5월 이후 호텔·리조트 결제금액은 2019~2021년 수준을 넘어섰다.
대홍기획이 진행한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 조사(16~24세 수도권 거주 남녀 2000명 대상)에서도 ‘미래를 위해 현재의 소비를 참는 것이 현명하다’라는 항목에 ‘그렇다’는 답은 연령이 낮아질수록 그 비율이 줄어들었다. 응답률로 보면 50대가 75.3%를 차지한 반면 20대는 61.3%였다.
이 같은 소비 맥락을 설명하는 또 다른 예가 ‘중고거래’와 ‘투자(재테크)’다. 이제 소비자는 살 때부터 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중고거래라는 실속은 물론 다양한 경험까지 챙기는 현명한 소비라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한편 소비 디톡스는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관계의 측면에도 발휘되고 있다. 형식적인 관계나 자신이 주도할 수 없는 관계를 거부하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관계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효율적으로 재편하는 양상으로도 나타난다는 의미다. 무인 포맷의 부상과 함께 반려 동식물 관련 아이템 키워드가 증가하는 것 역시 연장선에 있는 현상으로 분석된다. 이정아 기자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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