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무한] 오늘 내 발자국이 뒷사람에겐 이정표

김윤세 본지 객원 기자, 인산가 회장 2022. 12. 2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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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산동-주천
신수유 시목지. 사진 구례군청 제공.

지난 11월에는 5일의 92차 산행을 필두로 매주 토요일, 일요일마다 '힐링 산행'을 이어가 30일까지 모두 8차례 산에 올랐고 2022년 들어 총 99회의 산행을 기록했다.

11월에는 12일, 19일의 외부 초청 특강 등의 일정으로 인해 산행을 거름으로써 5회의 산행에 그칠 뻔했으나 일정상의 무리를 무릅쓰고 21일, 23일, 30일 지리산 둘레길 3개 코스 걷기에 동참해 '월 산행 횟수'를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

평일 산행의 경우 지난 11월 12일부터 인산가 회원 중 동참을 희망하는 이들과 함께 '지리산 둘레길 21개 구간 모두 완주하겠다'고 선언하고 열심히 둘레길 걷기를 계속하고 있는 우성숙 인산연수원장의 둘레길 걷기에 합류함으로써 이뤄졌다.

12월에도 3일, 4일, 8일, 11일 지리산 둘레길 18코스부터 산동 –주천의 마지막 21코스까지 걷기를 계속했고, 10일에만 지역 행사 참가 일정으로 인해 오후에 2시간 30여 분 동안 구례 지초봉 정상을 산행하는 것으로 모두 104회의 산행을 기록했다.

지난 12월 11일, 점심으로 죽염 김밥을 준비해 아내 우 원장과 오전 9시에 집을 나서 승용차로 남원 주천면 지리산 둘레길 안내소로 이동해 그곳에 주차한 뒤 택시를 이용해 구례 산동면 현천 마을에 도착했다.

둘레길 끝자락 산동~주천

지리산 둘레길을 일주하는 21개 코스 중 마지막 코스인 구례 산동-남원 주천 구간은 총거리 15.9km에 달하는, 다소 긴 코스인데다 해발 500m 가까운 고도의 밤재를 넘는 중간 난도의 쉽지 않은 코스이고 6시간 남짓 소요되는 구간이다.

이날 산행은 면사무소가 있는 산동면 원천마을부터 현천마을까지 1.9km 도로 구간을 생략하고 택시로 곧바로 현천마을로 가서 마을 앞 저수지에서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오전 10시 28분, 마을 앞 저수지에서 지리산 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걷기 시작해 논둑길, 밭둑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노라니 역시 소문 난 대로 온 동네 산야에 산수유나무들이 마치 겨울에 피는 꽃이라도 되는 양, 빨간 열매를 매단 채 나그네들을 맞는다.

눈에 가득 차오는 산촌 풍광을 즐기느라 두리번거리며 그리 숨 가쁘지 않은 논둑길, 밭둑길을 30여 분 걸으니 계척마을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아래쪽으로 조금 내려가자 '살아온 나이 1000년이 넘었다'라는 산수유 시목始木이 신령스러운 자태로 우뚝 서 있다. 화강석을 잘 다듬어 줄지어 쌓아놓은 나지막한 석성石城이, 마치 산수유 시목을 성의 주인공으로 여기고 그 성주城主를 보호하기라도 하듯 빙 둘러 호위하는 모습이다.

계척마을을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시멘트 길이 이어지다가 흙길이 나타나고 또다시 시멘트 길로 들어서는가 싶더니 이내 산길로 접어든다. 제법 심한 오르막 경사가 이어지다가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힐 즈음, 다시 완만한 경사의 소나무 숲길이 눈 앞에 펼쳐진다.

시작점으로부터 5km 남짓의 거리, 1시간 30분쯤 걸으니 빼곡히 들어서서 한껏 멋스러움을 뽐내는 편백 숲이 펼쳐지는 고즈넉한 숲길이 나그네를 맞이한다. 정확하다고 정평이 난 배꼽시계가 10여 분 전부터 계속 꼬르륵, 꼬르륵 소리를 내는 데다 목도 컬컬해 뱃속에서 '탁여현' 농주를 들여보내 달라는 요청이 빗발치고 우 원장 역시 배고프다고 이야기하기에, 산행을 일단 멈추고 나서 길가에 놓인 벤치에 휴대용 깔개를 펴고 앉아서 '탁여현'을 곁들인 '죽염 김밥'으로 맛난 점심을 먹었다.

효자 류익경 사연을 간직한 용궁마을의 정문등에서 필자.

산신령 같은 천년 산수유 나무

점심 식사를 마친 뒤 다시 걷기를 시작해 편백 숲길을 한참 더 걸은 끝에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를 걷다가 오른쪽으로 내려서 조그만 계곡을 건너 19번도로 아래로 난 길을 따라 걸으니 이내 밤재 오르는 입구에 도착한다. 산동에서 6.8km, 주천까지 9.1km, 밤재 정상까지 1.9km라는 안내 표지판이 보이고 지리산 둘레길 이정표인 벅수가 두 팔을 벌리고 길을 안내한다.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다소 편안한 길로 접어들 때마다 문득 내 삶이 시작된 시점으로부터 줄곧 걷고 또 걸어온 인생길의 주요 장면이 마치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며 지나간다.

인생 행로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글귀가 있다. 조선 중기의 고승 청허당淸虛堂 휴정休靜 선사의 시이다.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는踏雪野中去

아무렇게나 걷지 말아야 하리不須胡亂行

오늘 걸어간 나의 발자국이今日我行跡

뒷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되나니遂爲後人程

현천마을 시작점에서부터 6km 지점을 통과했다는 램블러 앱의 안내 말소리를 들으며 완만한 경사의 흙길 임도를 걷고 또 걸어 마침내 밤재 정상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캔맥주와 빵으로 간편한 점심을 먹는, 60세쯤 되어 보이는 신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인사하고 떠난 뒤 '탁여현' 한 잔씩 더 마시고는 다시 고개의 북편으로 난 임도를 따라 남원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쉬운 철계단

시작점으로부터 9km 지점을 통과했다는 램블러 앱의 안내 말소리를 들으며 완만한 경사의 임도를 걷다가 남원에서 산동으로 넘어가는 19번국도를 마주 보며 바로 곁으로 난 길을 걸었다. 지하 굴다리를 지나 또다시 걷다가 유스호스텔을 지나 산동에서 남원으로 가는 19번국도 밑을 통과해 두 개의 산 능선을 넘어 '안 용궁마을'로 내려선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기는 하겠지만 산길을 내려오다가 국도를 이리 건너고 저리 건너가느라 급경사의 계단과 임시 철계단을 오르내리는 길의 설계는, 지리산 둘레길이 세계적인 명품 도보여행 코스의 반열에 들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용궁마을로 내려서서 조선 성종 때의 '효자 류익경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비'가 있는 정문등에서 그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를 읽어본 뒤 다시 걷고 또 걸어서, 5시간 55분이 소요된, 총거리 14.58km, 해발고도 161~496m를 오르내린 지리산 둘레길 21코스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인산가 김윤세 회장

인산가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였던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1909~1992) 선생의 유지를 펴기 위해, 차남인 김윤세 現 대표이사이자 회장이 1987년 설립한 기업이다. 인산 선생이 발명한 죽염을 비롯해 선생이 여러 저술을 통해 제시한 물질들을 상품화해 일반에 보급하고 있다. 2018년 식품업계로는 드물게 코스닥에 상장함으로써 죽염 제조를 기반으로 한 회사의 가치를 증명한 바 있다. 김윤세 회장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내 안의 의사를 깨워라』, 『내 안의 自然이 나를 살린다』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노자 사상을 통해 질병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올바른 삶을 제시한 『自然 치유에 몸을 맡겨라』를 펴냈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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