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의 시론]법치를 팬덤으로 무너뜨리려는 野
이현종 논설위원
英 의회는 작은 범법에도 소환
신현영 ‘갑질’ 김의겸 ‘거짓말’
우리 국회에서는 버젓이 활동
李 방탄 3종 모자라 검사 공격
당내에서도 몰상식·맹종 비판
민생 투어 앞서 法治 투어 해야
의회정치의 모범이라는 영국에는 2015년 의원소환제가 도입됐다. 3가지 요건으로 의원을 소환할 수 있는데 첫째는 범법행위로 금고형 이상 판결을 받았을 경우다. 우리나라도 금고 이상 형을 받으면 의원직이 상실되는 것과 같다. 둘째는 하원의원이 잘못을 저질러 의회 개회일 중 10일 이상 의회 참석정지 처분을 받으면 소환 요건이 된다. 거짓말이나 품위 상실이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는 의회윤리독립감사청(IPSA)에 의해 하원의원이 경비를 부당하게 청구했다는 사실이 적발돼 사실로 판단되면 소환 대상이다. 의원 소환은 해당 지역 유권자가 10% 이상 동의하면 가능하다.
그런데 소환돼 의원직을 잃은 사례를 보면 우리 국회 기준으로 ‘하찮은 수준’이다. 외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방문한 사실을 의회에 보고하지 않았거나, 우리 돈으로 100만 원 정도를 부당 청구한 경우에도 의원 소환으로 의원직을 잃었다. 또, 제한속도가 시속 48㎞인 도로에서 시속 66㎞로 과속하다가 적발돼 과속 통지서를 받았는데 자신이 운전하지 않았다고 거짓말해 소환을 당한 의원도 있다.
우리 국회 기준으로 보면 별로 쟁점도 안 될 사안이 영국에서는 의원직을 잃을 정도의 중대한 요건이 된다. 최근 이태원 참사 현장에 ‘닥터카’를 불러 ‘갑질’ 논란에 휩싸인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나 거짓 브리핑,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청담동 술집’ 허위 사실을 유튜브 채널과 협업한 김의겸 의원 정도면 아마 영국에선 의원 생활을 하기 힘들 것이다.
더욱이 국회 제1당인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받고 있는 검찰 수사는 대장동·백현동 개발 사업 의혹, 성남FC, 변호사비 대납 의혹, 선거법 위반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 대표는 ‘망나니 칼춤’ ‘정적 죽이기’라고 검찰을 비난하지만 이미 자신의 최측근인 정진상·김용은 구속됐고, 다른 관련자들도 구속되거나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자신의 주변 측근들이 모두 구속돼 수사를 받는 사건을 ‘망나니 칼춤’ 운운하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국회의원 보궐선거-당 대표-당헌 개정 등 ‘방탄 3종 세트’를 모두 갖췄지만, 검찰의 칼날을 피하기 어렵자 이젠 검찰 수사 자체를 ‘정적 죽이기’ 프레임으로 공격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처럼 팬덤 조직이 서초동에서 강력한 시위라도 벌여주면 좋겠으나 이것도 시들하다 보니 이젠 당 차원에서 수사 검사들의 사진과 이름 등을 담은 ‘웹 포스터’를 전방위로 살포하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한다. 공직을 수행하는 검사들을 마치 조폭 계보도처럼 그려놓고 ‘윤 사단’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같은 당 이상민 의원조차 “공당에서 권한을 오남용한 몰상식한 짓이고 이재명에 대한 과잉 충성과 맹종”이라고 비난할 지경이다.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장인 법무부 장관 출신의 박범계 의원은 “수사 검사들이 누군지 국민이 알 권리가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과연 국민이 이 대표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들의 이름과 직책을 일일이 알고 싶을까. 5·18 유공자나 전교조 교사들의 이름은 개인 정보 보호 운운하며 끝내 공개를 거부했던 민주당이 왜 일선 검사들의 이름은 국민이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속셈이 뻔하다. 정말 국민의 알 권리는 서해에서 북한군에 피격·소각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 사건의 진실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이 법원의 판결도 무시하고 관련 자료를 모두 대통령기록관으로 넘겨 국민의 알 권리를 짓밟은 것은 옹호하면서 검사 이름 공개는 알 권리라고 강변한다.
‘개딸’ 등 이 대표 지지 팬덤 조직에 먹잇감을 던져주고 물어뜯으라고 하는 신호나 마찬가지다. 법치를 팬덤의 힘을 빌려 뭉개 보겠다는 반(反)법치 발상과 다름없다. 차라리 민주당은 제1 야당 대표에 대해선 검찰이 수사하면 안 된다는 ‘이재명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검수완박’처럼 밀어붙이는 것이 빠를 듯하다.
민주당이 이 대표 방탄에 몰두하다 보니 점점 이성을 잃어간다. 입만 열면 국민·민생 운운하지만, 노골적으로 특권을 주장하는 게 현실이다.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은 검찰 소환 앞에 휴지 조각이 됐다. 민생 투어에 앞서 ‘법치 투어’부터 하는 게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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