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회계 투명성’ 꼴찌인 나라

이관범 기자 2022. 12. 2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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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를 잘못 사용하거나 등한시하면 체제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미국 남가주대의 역사학자·철학자이자 회계학자인 제이컵 솔 교수는 2014년 펴낸 저서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 왔는가?' 서문 '루이 16세는 왜 단두대로 보내졌는가'에서 회계의 중요성에 대해 이처럼 말했다.

회계 투명성이 기업, 나아가서는 국가의 흥망성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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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범 경제부 차장

“회계를 잘못 사용하거나 등한시하면 체제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미국 남가주대의 역사학자·철학자이자 회계학자인 제이컵 솔 교수는 2014년 펴낸 저서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 왔는가?’ 서문 ‘루이 16세는 왜 단두대로 보내졌는가’에서 회계의 중요성에 대해 이처럼 말했다. 회계 투명성이 기업, 나아가서는 국가의 흥망성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강조한다. 솔 교수는 대표적인 사례로 네덜란드와 스페인을 꼽는다. 네덜란드는 일찌감치 국가적인 차원의 회계 교육과 체질화를 통해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를 구축하고, 강소국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네덜란드가 반도체 생산을 위한 핵심 장비를 보유한 국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면, 회계 교육을 소홀히 한 스페인은 한때 남미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등 세계 패권을 다퉜지만, 지금은 유럽의 약소국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불러온 회계 부정은 결국 세계 금융 시스템 붕괴를 초래했다.

한국은 회계 투명성으로 보면 ‘꼴찌’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 경쟁력 평가 중 회계 투명성 순위는 2017년 63개국 중 63위, 2018년 62위, 2019년 61위, 2020년 46위, 2021년 37위, 2022년 53위다. 회계 투명성 순위는 각국의 CEO(재무책임자 포함) 등을 상대로 기업의 회계·감사 등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조사하고 평가하는 체감 지표다. 2018년 11월부터 금융감독 당국이 지정한 감사인(회계법인)을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서 의무적으로 선임하게 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도입을 계기로 2020년부터 개선되는 추세에 있지만, 아직은 중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외부감사법 적용을 받는 기업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사회적 감시망을 벗어나 있는 노조 등 비영리 부문의 회계 부정 사고는 심각한 수준이다. 노조위원장 횡령 사건, 공동주택 관리비 유용 사건, 사립학교 회계 부정 논란, 각종 기부금 단체의 내부 비리 등이 끊이지 않는다.

회계개혁 대상을 기업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대해야 한다. 경제와 기업에 국한해 회계개혁이 추진되니 투명성 확보를 둘러싼 사회 전반의 비대칭성 문제는 커질 대로 커졌다. 회계 투명성 확보 없이는 신뢰 사회로 나갈 수 없다. 경제와 공공 부문, 시민사회, 사적 영역을 아우르는 회계 투명성을 확보해야 비로소 우리 사회는 사실관계라는 굳건한 토대 위에서 합리성과 명분을 따지는 대화와 타협의 사회로 나갈 수 있다. 반대로 회계 투명성의 중요성을 망각한 채 불투명한 사회로 간다면 공동체의 안정성은 뿌리째 흔들릴 것이다. ‘사회적 실체’에 대한 진지한 반성 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관철하기 위한 다툼과 갈등의 장으로 사회는 부패하고 말 것이다. 영어로 ‘책임’을 뜻하는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는 회계를 뜻하는 ‘어카운트(account)’에서 나왔다고 한다. 서로가 책임을 인정하는 바탕에는 회계 투명성이 있다는 뜻이다. 회계 투명성과 책임의 가치가 뿌리를 내리면 공동체는 회복되고, 국격과 국가 신인도는 올라가지 않겠는가. 솔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이런 순간에 국가는 더 없는 번영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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