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2', 이 경이로운 스펙터클에 딱 2% 부족한 것

듀나 칼럼니스트 2022. 12. 2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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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2’,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심어놓은 교훈적인 서사에 대하여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아바타> 시리즈를 SF 영화로서 이야기할 때 가장 애매한 점은, 이 영화들의 과학적 오류처럼 보이는 대부분에 대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알면서도 일부러 넣었을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SF 전문 거물 감독으로서 카메론은 수많은 장르 경험을 쌓았을 뿐 아니라 수많은 '똑똑한 사람들'을 주변에 거느리고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무언가 수상쩍은 일을 저질렀다면 저지르기 전에 이미 한 번 이상 지적을 받았을 것이다.

그 수상쩍은 것들을 하나씩 열거해 보자. 일단 실제 센타우루스자리 알파가 영화가 그린 곳과 비슷할 가능성은 그냥 제로다. 인위적 조작 없이 판도라의 생태계가 수상쩍을 정도로 지구와 비슷하게 진화했을 가능성도 없다. 판도라에 인간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무언가가 있다면 지구에서 합성하는 것이 반물질 수백톤을 태우면서 우주선으로 물건을 실어 나르는 것보다 경제적일 것이다.

판도라로 지구인들이 이주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비경제적으로, 그럴 돈이 있다면 그냥 지구환경을 고치는 게 낫다. 그리고 판도라의 대기를 지구인에 맞추어 고친다면 일단 토착 생물들이 멸종할 것이고 고농도의 이산화탄소가 만들어내는 온실효과가 사라져 판도라는 얼음세계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정복한 행성에서 평생 가스마스크를 쓰고 살 것인가? 그게 오염된 지구에서 사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 세계는 지구인 남자 주인공에게 버로즈(<화성의 공주>, <펠루시다>)스러운 모험을 안겨주기 위해 디자인된 곳으로 그 뻔뻔스러움을 감출 생각이 없다. (나비족이 고양이 얼굴을 한 섹시한 외계인인 건 이들이 눈이 아홉개 달린 핑크색 젤리라면 섹스와 연애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비난하자니 감속하는 우주선이 별처럼 빛난다거나, 판도라의 밤 일부는 모행성이 항성을 가리는 일식이라거나, 인간은 판도라의 대기에서 오래 버티기 어렵지만 나비족은 지구 대기 안에서 덜 고통스러워한다는 SF적 설정들이 그 사이사이에 끼어 있다. 아무리 설정이 수상쩍어도 영화는 실제 과학과 기술에 기반을 둔 디테일을 넣는 데에 최선을 다한다.

그 결과물은 딱 그 위치에서만 가능한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이 있다. <아바타: 물의 길>을 보는 동안 눈앞에서 펼쳐지는 시각적인 성찬을 무덤덤하게 넘기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이야기의 지나친 친숙함과 설정의 수상쩍음이 계속 눈에 들어오긴 하겠지만 그래도 스펙터클의 힘이 이를 앞선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이 영화를 보러 가는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그 다음이 메시지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 시리즈에 하나로 연결되는 두 가지 메시지를 심는다. 하지만 환경주의이다. 다른 하나는 지금도 모양만 바꾸어 이어지고 있는 서구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판도라의 사람들과 세계가 익숙해 보인다면 그건 지난 몇백 년 동안 있었던 세계 역사를 판도라에서 비슷한 모양으로 다시 재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번 바다 배경은 남태평양과 수상쩍을 정도로 비슷하고, 바다 사람들은 대놓고 마오리족의 전통을 훙내내며 툴쿤이라는 거대한 바다 동물은 그냥 외계고래이다. 후반부에 나오는 툴쿤 사냥은 그냥 포경이고.

이 모든 것은 할 만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남태평양 사람들에게 대한 이야기를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남태평양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건 고래나 서구 식민주의도 마찬가지. 영화는 외계 달의 모든 것들을 지구의 것의 비유로 만드는데, 그 결과 판도라의 모든 것들은 지나칠 정도로 깔끔하고 납작하다. 생각해 보라. 판도라의 생테계는 신기할 정도로 나비족과 인간들에게 친절하다. 자연의 균형을 깨트리지 않으면 자가용 비행기, 보트, 인터넷, 도서관이 무료로 제공된다. 자연이 과연 그런 곳이던가. 자연은 우리에게 좋기만 한 곳이기에 지켜야 하나? 문명과 자연의 관계는 언제나 더 복잡하지 않던가?

그 납작함은 제이크 설리와 나비족과의 묘사에도 보인다. 한마디로 우리의 주인공들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이성애 정상 가족의 틀 안에 속해 있다. 그것도 미국 문화의. 설리가 가족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자 아버지인 것에 대해서는 아무 불만이 없다. 하지만 지키려는 가족이 수상쩍을 정도로 미국 사람들처럼 보인다면 우리 같은 외국 관객들은 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건 나비족이나 새로 등장한 바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아마존 사람들이나 남태평양 사람들처럼 굴지 않을 때는 수상쩍을 정도로 미국인 같다. 특히 청소년들은. 여러분은 비영어권 청소년과 미국 청소년들이 같은 장르 안에서 얼마나 다르게 행동하는지 알 것이다.

하려는 이야기는 단순하다. 판도라의 세계는 다채롭고 장엄하고 아름다우며 여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유익한 교훈을 준다. 하지만 기왕 지구로부터 4.3광년을 건너 다른 항성계로 갔다면 그건 익숙한 역사의 반복을 넘어서는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며 우리 경험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아바타: 물의 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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