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詩:選)]끝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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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연말이다.
'또다시 별일 없게 이 많은 날을 살아야 한단 말이지.' 선물 같던 새날들이 돌연 막막하게 느껴져 한숨을 쉬었다가, 그 꼴이 우스워 하하 웃다가.
그래야 시작이다.
그날이 그날 같고 그해가 그해 같고 반복되어 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인생 같지만, 끝과 시작이 있어 각오도 해보고 희망을 품어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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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끝이 없는가, 라고 물었을 땐/ 어디가 시작인가, 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어떻게 앉아 있었느냐, 에 따라/ 하루의 슬픔이 변했다// 어떤 날은 꽃을 들고 있었다/ 어떤 날은 칼을 들고 있었다/ 어떤 날은 시간을 들고 있었다’
- 성윤석 ‘9쪽’(시집 ‘그녀는 발표도 하지 않을 글을 계속 쓴다’)
드디어 연말이다. 언젠가부터 이때만 기다렸다. 좋은 일이라곤 하나도 없던, 정말이지 운이 없는 한 해를 떠나보내게 됐다. 어서 털어버리고 새해를 맞이해야지. 아직 며칠 남았는데도, 책상 위에는 새 다이어리가 놓여 있다. 실은 벽에 걸어둔 달력도 내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잠들어 새해 아침에 깨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이 그리 어렵고 힘들었나 생각해보면 글쎄. 그럭저럭 잘 지내왔다. 크게 아픈 곳도 없었고 이따금 작고 반짝이는 일도 있었지. 격려와 응원도 얻었고 때로 칭찬도 받았다. 기억할 만한 나쁜 일이 없었다니 역시 망각의 힘이란 위대한 것이요, 사람의 욕망은 쉬는 법이 없다. 그나저나 이 기시감은 무언가. 그러고 보니, 작년 말에도 비슷하지 않았던가. 12월 31일과 1월 1일은 고작 하루 차이일 뿐이며, 작년과 올해 사이가 그랬듯, 올해와 내년 사이도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달력을 넘겨본다. ‘또다시 별일 없게 이 많은 날을 살아야 한단 말이지.’ 선물 같던 새날들이 돌연 막막하게 느껴져 한숨을 쉬었다가, 그 꼴이 우스워 하하 웃다가.
그래도 끝이다. 그래야 시작이다. 그날이 그날 같고 그해가 그해 같고 반복되어 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인생 같지만, 끝과 시작이 있어 각오도 해보고 희망을 품어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복잡한 상념 따윈 거둬내고 며칠 전 세웠던 새해의 다짐을 되새겨본다. 내년엔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 삶을 한껏 사랑해야지.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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