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어떤 인간으로 파이를 만들까’···핏빛 무대 ‘스위니토드’[리뷰]

선명수 기자 2022. 12. 2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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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손드하임 작곡 스릴러 뮤지컬
잔혹 복수극에 대담한 풍자 얹은 블랙 코미디
전미도, 6년 만에 ‘러빗 부인’ 복귀
뮤지컬 <스위니토드> 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스위니토드>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막이 오르면 런던의 어둡고 음울한 뒷골목, 오랫동안 방치된 폐공장을 떠올리게 하는 무대가 펼쳐진다. 이 뒷골목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이들이 한 편의 잔혹동화 같은 ‘도시 괴담’을 들려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들어는 봤나, 스위니토드. 창백한 얼굴의 한 남자. 시퍼런 칼날을 쳐들면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네. 이발사 탈을 쓴 악마.”

‘어느 잔혹한 이발사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스위니토드>는 뮤지컬 무대에서 흔치 않은 스릴러 장르의 작품이다. 화려한 퍼포먼스, 흥겨운 춤과 노래 대신 기괴한 불협화음과 그로테스크한 무대가 펼쳐진다. 내용 역시 충격적이다. 세상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탄 연쇄 살인범이 주인공이다. ‘인육 파이’라는 파격적인 소재가 등장하고 무대 위엔 선혈이 낭자하다.

엔터테이닝 뮤지컬 문법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낯설고 어둡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이지만, 화려한 대작들이 쏟아지는 연말 극장가에서 이 핏빛 뮤지컬이 순항하고 있다. 지난달 프리뷰 티켓 오픈 5분 만에 7000석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기괴하고 잔인한 이야기로 부조리가 넘치는 당대 사회상을 풍자한 블랙코미디다. 작품의 배경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혼돈과 빈부 격차가 극심한 1868년 런던. 귀족 판사 터핀에게 아내와 딸을 빼앗기고 누명을 쓴 채 추방당했던 이발사 벤저민 바커가 15년 만에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스위니토드’로 이름을 바꾸고 런던에서 가장 맛이 없는 파이 가게를 운영하는 아래층 러빗 부인과 함께 세상을 향한 복수를 계획한다.

뮤지컬 <스위니토드> 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지난해 91세를 일기로 타계한 브로드웨이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의 대표작으로 1979년 초연한 작품이다. 조니 뎁이 주연한 팀 버튼의 동명 영화(2008)로도 유명하다. 뮤지컬과 연극, 영화는 물론 오페라로도 제작됐다. 국내에선 2007년 초연했으나 흥행하지 못했고, 2016년 오디컴퍼니가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무대에 올려 이번이 세 번째 시즌이다.

파격적인 스토리 이상으로 매력적인 것은 그로테스크한 불협화음으로 몰입감을 높이는 음악이다. 낯선 소리로 극의 스산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음악, 음율을 살린 풍자적인 가사는 ‘음악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극작가’로서 손드하임의 면모를 드러낸다.

작품의 블랙코미디적인 매력이 잘 드러난 대목은 ‘인육 파이’를 팔 계획을 세우는 스위니토드와 러빗 부인의 1막 마지막 대화 장면. 두 인물은 흥겹고 리듬감 있는 선율에 맞춰 목사, 변호사, 공무원, 정치인, 사채업자 등을 줄줄이 ‘파이 재료’로 열거하고 무슨 맛일지 상상하며 신나한다. “정말 기막힌 반전이야. 윗놈이 아랫놈 식사거리.” “경제적이야, 장례식도 할 필요 없어!”

극중 러빗 부인의 캐릭터가 매력 있다. 러빗 부인은 복수심에만 눈이 먼 스위니토드를 짝사랑하면서도 그의 충동을 부추기고, 솔직하고 유쾌한 이면에 냉소적이고 탐욕적인 면모를 가진 인물이다. 2016년 러빗 부인을 맡아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미도가 6년 만에 같은 역으로 복귀했다. 김지현·린아와 함께 번갈아 러빗 부인을 연기한다. 가족을 빼앗은 귀족 판사를 넘어 사회 전체에 광기어린 복수심을 쏟아내는 주인공 스위니토드는 강필석·신성록·이규형이 연기한다.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2023년 3월5일까지.

뮤지컬 <스위니토드> 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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