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층간소음은 사람들 잘못"이라고? 거대한 거짓말입니다

김범주 기자 2022. 12. 2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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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건설사는 왜 층간소음을 키워왔을까

국민 농락하는 정부의 거짓말들


1. "승리자는 절대로 "진실을 말했느냐"는 질문을 받지 않는다."

역사상 최고의 거짓말쟁이 중 한 명이 한 말이라서 믿음이 가는 '거짓말' 격언입니다. '워런 버핏의 투자 격언' 같은 느낌이죠. 경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작은 거짓말은 범죄지만, 엄청나게 큰 거짓말은 진실처럼 굳어져 버립니다.

이 코너에서도 이미 몇 가지를 소개해 드렸죠. "연금저축보험은 여러분의 노후를 확실히 책임져 드립니다" 같은 게 우선 있겠고요. 깨지긴 했지만 국민들 일을 더 시키려고, "일주일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다" 같은, 몇십 년간 이어져 온 정부의 거짓말도 얘기를 드렸습니다. 또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제가 법 시행 이전부터 주야장천 비판했던 '단통법'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국민들에게 싸게 스마트폰 팔면 안 된다"는 법입니다. 통신사들이 고객들에게 주던 마케팅비를 확 줄여주는 법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단지 통신사만 돈 버는 법'이라고 제가 몇 년을 두고 씹었습니다. 모아만 놔도 일종의 역사가 되네요.

'정부가 왜 기업 마케팅비 상한선을 정하나' (2014년)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2601293&plink=SEARCH&cooper=SBSNEWSSEARCH ]
'단통법에 골룸 된 LG전자, 미래는 어디로' (2015년)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3125195&plink=SEARCH&cooper=SBSNEWSSEARCH ]
'단통법의 비밀' (2015년)
[ http://www.youtube.com/watch?v=TEcsmEjBSYs ]
'통신사들이 단통법으로 아낀 1조 원은 어디로 갔을까' (2016년)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3397766 ]

걱정했던 대로,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을 접었고 통신사들은 매년 떼돈을 벌고 있습니다. 원래 3년만 해본다고 했던 법은 8년이 지나도록 유지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단통법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었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입니다.

당시에 "통신사가 돈을 더 벌면 통신 요금을 내릴 거다"라는 전설의 인터뷰를 남겼던 고위 공무원분은 지금 유명한 로펌에 5년째 고문으로 계시더군요. 저 같은 일개 기자가 혼자 떠들어 본들 바뀌는 건 없습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않는다' 같은 거겠죠. 그래도 포기는 안 합니다. 다만 오늘은 단통법이 본론이 아니니까, 다음 기회에 계속 씹고 뜯고 맛보도록 하죠.

아, 맨 처음 나왔던 저 격언, "승리자는 진실을 말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일이 절대로 없다"는 말을 남긴 인물은, 바로 거짓말로 시대를 농락했던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2. 오늘은 그래서, 또 몇십 년 동안 진행 중인 큰 거짓말 하나를 들춰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도 역시 10년 넘게 공격 중이지만, 바뀌는 게 없는 분야입니다. 바로 '층간소음' 문제입니다.

윗집 샤워는 몇 시에 하는지, 옆집은 밥을 언제 먹는지,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집들이 많이 있습니다. 함께 사는 것 마냥 소리가 들려오니까요. 그래서 흉흉한 사건사고도 많이 납니다. 그럴 때마다 왜 집에서 조심조심 움직이지 않느냐, 혹은 사람들 중에 특히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이웃끼리 서로 잘 이해하고 넘어가면 별일 없다, 결국 '사람이 문제다'라는 식의 결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런데, 거짓말입니다. 사람 잘못 아닙니다.

집 지은 회사, 더 나아가서는 그걸 용납해 온 국가 잘못이 훨씬 큽니다. 그동안 이 거짓말을 뒤집으려는 노력이 여기저기서 있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워낙 저질러 놓은 일이 크다 보니까, 그리고 거기서 이득을 본 쪽이 워낙 또 힘이 세다 보니까, 그냥 묻혀온 겁니다.

일단 오늘은 대체 뭐가 거짓말이었는지, 그래서 그 정책이 우리 삶을 어떻게 힘들게 만들어 왔는지 짚어보죠.

3. 저도 사실은 이 내용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10년 전쯤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지은 지 30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에 몇 년 동안 살았는데, 갑자기 윗집에서 천장에 주먹만한 쥐가 뛰어가는 것 같은, '다다다'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겁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낮에 네 살쯤 되는 손자를 보는데, 이 손자가 전력으로 집안 곳곳을 뛰어다니는 소리였습니다. 한 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서 좋게 좋게 대화를 나눴더니 바닥에 매트를 까셨고, 그날 이후로는 아주 멀리서 '아 그냥 애가 노는구나' 정도의 느낌만 받을 정도가 됐습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윗집 아이가 전력 질주 테스트를 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층간소음을 못 느껴봤다는 것을요. '다른 집엔 그렇게 심하다는 층간소음이,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없을까' 갑자기 확 궁금해졌습니다.

확인을 해봤더니, 이 아파트는 '제대로 지어진 아파트'여서 층간소음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에 지어진 집인데, 그때 건설사가 모범케이스를 만들겠다고 시멘트를 말 그대로 '때려 붓다시피' 지었다는 겁니다. 어쩐지 벽에 못 하나를 박으려고 해도 손이 아파서 망치질을 못 할 정도로 벽이 제대로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깨닫게 됐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확인하고 나니까 반대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그러면 다른 집들은 왜 그렇게 시끄러운 걸까, 하는 부분이요.

4. 바로 답부터 말씀드리자면, 정부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1주일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다"와 비슷한 수준의 거짓말을요.

아파트 층간소음 기준, 원래는 없었습니다. 그냥 '바닥 두께는 12센티미터 이상으로 한다'는 규정만 지키면 됐습니다. 아파트가 보편적으로 퍼지기 전까지는 층간소음 문제도 없었고, 기준을 만들자는 생각도 못 했던 거죠.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그래도 80년대 초중반까지는 꽤 많은 건설사들이 정석대로, 제대로 집을 지어 왔는데, 문제는 80년대 후반부터 벌어졌습니다.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을 2백만 채 짓겠다"는 공약을 밀어붙였는데, 문제는 그러면서 '짓는 속도'만 강조됐던 겁니다. 질은 저 멀리 사라져 버렸고요. 여기저기서 제대로 씻지도 않은 바닷모래와 당시엔 정말 질 떨어지던 중국산 저가 시멘트를 섞어서 집을 쌓아 올렸습니다. '아 이렇게 지어도 되는구나', 많은 건설사들이 알아 버렸고, 부실 아파트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래서 되겠느냐는 논란 끝에 2003년, 그러니까 20년 전이죠, 결국 처음으로 아파트 층간소음 기준이 법으로 정해집니다. 작은 물건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경량충격음'은 58데시벨, 아이들 뛰는 소리 같은 '중량충격음'은 50데시벨 이하로 집을 지으라는 겁니다. 자, 이 규정만 제대로 지켰다면 그래도 그 이후로 허가 나서 지은 2000년대 후반 집부터는 층간소음이 사라졌어야죠. 그런데, 여기서 정부가, 건설사들 부담을 줄여준다면서, 엄청난 거짓말을 만들어 냅니다.

5. 바로 '표준바닥구조'라는 걸 창조해 낸 겁니다. 대부분 국민들은 이런 게 있는지 자체를, 지금 이 순간까지 모르고 계실 겁니다. 아마 저런 아파트 층간소음 기준이 있고, 잘 지켜서 지었는지 누군가 가서 검사를 해서 확인했을 거라고 생각하시겠죠. 아닙니다. 그런 과정 전혀 없습니다. 아무도 검사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 정부가 건설사들에게 그렇게 안 해도 되는 '007 면허'를 슬쩍 만들어 줬거든요. 한마디로 "우리가 정해준 규정대로 바닥을 만들면, 층간소음 기준을 지킨 걸로 인정해 주겠다"는, 우회로를 터줬습니다. 바로 이렇게 생겼습니다.

'각 재료를 이 정도로 써서 모두 21센티미터 이상 바닥을 만들어라'라는 이야기입니다. 각 재료별 두께도 정해는 놨습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걸 생략했습니다. 저기서 층간소음을 막는 핵심은 '20mm 두께 이상의 완충재'입니다. 층간 소음을 중간에서 흡수해줄 스티로폼 등등의 물건들이겠죠. 그런데 문제는, '완충재'라고만 적어놓고는, 그 완충재가 어떤 물질이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소리를 먹는 성능을 갖춰야 하는지 등등, 기준은 제대로 정하질 않았습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건설사들이 '아무 스티로폼이나 2센티 넘는 것'을 끼워 넣고 지어도 오케이였다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요.

6. 그다음 상황은 다들 예상이 되시겠죠. 내 집 바닥 한 번 파 보시면, "세상에 요 딴 걸 흡음재, 완충재라고 넣었나" 싶은 곳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완충재 부실한 데 더해서, 공사도 콘크리트 제대로 안 붙고 들뜨게 부실시공을 해놔 가지고는, 마치 종처럼 그 안에서 공명현상까지 일어나서 오히려 아랫집 윗집 소음을 키우는 경우까지 벌어집니다. '부실 재료+부실시공', 환장의 콜라보가 일어나는 거죠.

이 제도 만든 국토부가 이래 놓고는 20년째 나 몰라라 하니까, 감사원이 대신 2018년 2019년에 새로 입주하던 2백 개 가까운 아파트 단지들에 가서 확인을 해봤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3, 4년 정도 됐을 신축 아파트들 바닥을 두들겨 본 건데, 결과는, 뭐 안 봐도 유튜브 수준이죠. 감사원 발표 자료에서 잘라낸 도표를 보시죠.

건설사들이 애당초 밝혔던 소음 등급을 지킨 경우는 단 4%였습니다. 96%가 가짜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그래프가 정말 충격입니다. 중량충격음은 1등급 2등급은 아예 씨가 말랐습니다. 반대로 무려 60%가 법에 정해진 최소 기준도 못 맞추게 지어졌습니다. 자, 이런 상태인데, 왜 사람들이 잘못인가요. 장판을 깔고 실내화를 신고 까치발을 하고 살아도, 층간소음이 없어질 리가 없습니다.

7. 그러면 그사이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없었느냐, 있었습니다. 그런데 맨 앞에 붙여 놓은 격언대로, 이미 승리자는 정해진 상태였고, 소용없는 짓이었죠.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10년 전에 한 대기업 계열 회사에 취재를 갔습니다. 소음을 대부분 잡아주는 엄청난 완충재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입니다. 연구진들도 야심 차게, 기존 방식으로 지은 바닥과, 이 완충재를 넣고 지은 바닥을 동시에 놔두고 저희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양쪽 아래층에 내려가서 소리를 들어봤습니다. '뱅 머신'이라는, 타이어가 달린 다리를 기계가 내리치는 실험이었는데, 기존 방식 바닥은 머리 옆에서 징을 울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새 완충재가 들어간 바닥에 간 순간, '엇 이것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로, 제가 당시에 살고 있던 그 집에서, 윗집에 바닥 매트가 깔린 이후에 아이가 뛸 때 같은, 뭔가가 왔다 갔다 하는구나 정도의 소리만 들렸던 겁니다.

아, 이거 대박이다, 이걸 쓰면 사람들 다툼이 많이 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뉴스로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제품은 결국 세상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두세 군데 현장에만 깔리고 더 이상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 기술을 개발한 해당 부서도 결국 그냥 그대로 사라졌고요.

왜 그렇게 됐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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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주 기자news4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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