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특별사면은 임기 초에 '유독' 많았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1,373명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잔형 집행 면제와 복권이 이뤄졌습니다. 김경수 전 지사는 복권 없이 잔형 집행만 면제됐습니다.
법무부는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사면 대상에 포함한 이유에 대해 "새 정부 출범 첫해를 마무리하면서 범국민적 통합으로 하나 된 대한민국의 저력을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국민 통합'은 사면 때마다 나오는 수사입니다. 이번 사면에서도 '윤석열 정부 출범 첫해'를 강조한 것처럼, 임기 초에는 늘 국민 통합의 필요성이 강조됐고, 통합의 정치적 행위는 '특별사면'의 형태로 자주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정부 임기 초기에 특별사면이 많았을까요. 다른 시기에 비해 임기 초에 정말 많았는지, 역대 정부의 사면 데이터를 전수 분석했습니다.
SBS 사실은팀이 확인했습니다.
사실은팀의 전수 분석 결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번 사면을 포함해 총 105번의 특별사면과 감형, 복권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현재 진행형이므로, 문재인 정부까지 단행된 103번의 사면의 구체적 내역을 확인해 정리했습니다. 아래 그래픽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임기 초의 특별사면입니다. '임기 초'의 기준은 정부 출범 이후 1년 내로 잡았습니다.
이승만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특별사면은 24만 4,406명, 특별감형은 5만 4,724명, 특별복권은 3만 3,665명이었습니다. 총 33만 2,795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가운데 집권 1년 차 이내 단행된 경우를 따로 떼어 보니, 특별사면은 15만 6,459명으로 전체의 64.0%, 특별감형은 3만 1,667명으로 57.9%, 특별복권은 1만 403명으로 30.1%였습니다. 다 합쳐서 계산하면, 59.7%였습니다.
역대 정권들은 특별사면의 5분의 3 정도를 집권 1년 차 이내에 단행한 걸로 분석됐습니다. 특히,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만 명의 대규모 특별사면, 감형, 복권이 임기 초에 몰려 있었습니다.
정부 임기 초에 특별사면이 유독 많았다는 주장은 대체로 사실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87년 민주화 이전입니다.
이승만 정부 당시인 1956년 8월 15일, 1,140명에 대한 특별사면이 단행됐습니다. '사사오입'으로 상징되는 3선 개헌 이후, 이승만 전 대통령이 3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 단행된 특별사면이었습니다. 다음으로 5·16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당시 권한대행 당시, 5.16 1주년을 맞아 1만 3,000명 규모의 특별사면이 이뤄졌습니다.
이후, 박정희 정부 때는 유신체제 성립 직후인 1972년 12월 27일, 8대 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1,203명의 특별사면과 5,017명의 특별감형이 단행됐습니다. 전두환 정부 때는 1981년 3월 3일, 2,417명의 특별사면이 있었습니다.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 투표, 이른바 '체육관 선거'로 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일주일 만이었습니다.
위 대규모 특별사면은 대통령들이 3선 개헌, 유신헌법, 간선제 투표 같은 민주적이지 않은 방식에 의해 취임한 '직후'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권의 정치적 정통성이 약할 수밖에 없던 만큼, 임기 초 대규모 사면을 통해 정치적 부담을 털고 가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민주화 이후에도 대규모 사면은 임기 초에 집중됐습니다. 사실은팀이 계산해 보니, 민주화 이후에도 임기 1년 차 이내 특별사면의 비중은 전체의 60%에 달했습니다. 민주화 전이나 이후나 비율은 비슷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민주화 이후, 임기 초 특별사면의 구체적 사례도 살펴볼까요. 김영상, 김대중 정부는 임기 초 수만 명의 특별사면을 실시했습니다. 군부 집권의 역사를 정리하는 성격이 짙었습니다. 김영삼 정부 취임 기념 사면은 방북으로 수감된 문익환 목사 등이 포함됐습니다. 김대중 정부 초기에는 민주화 운동가를 비롯해, 장세동, 정호영, 허화평 등 12.12 군사 쿠데타 주동자에 대한 특별사면이 함께 있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1년 내 특별사면 대상은 생계사범이 중심이었습니다. 다만,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현대 정몽구, SK 최태원, 한화 김승연 회장 등이 대거 포함됐습니다.
민주화 이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선거의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돼 임기 초 사면으로 이어진 측면도 있습니다.
1997년 4월, 전두환과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형 집행이 확정되자, 김대중과 이회창, 이인제 당시 대선 후보 3명은 이들에 대한 사면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지지의 외연을 넓히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됐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 직후 단행된 두 전직 대통령의 특별사면은, 당시 김대중 당선인의 건의를 김영삼 대통령이 받아들이는 모양새로 이뤄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을 공약한 바 있습니다.
사면의 명분은 당시에도 '국민 통합'이었습니다. 치열한 대선전이 끝나면, 사회는 정치적으로 분열돼 후유증을 앓기 마련이고, 정부 입장에서는 임기 초 '통합'을 위한 정치적 행위가 필요했을 겁니다.
(특별사면은) 근본적으로 법률의 원칙을 어기는 것이고, 법 앞의 형평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최소한'으로 시행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사면은 이상적인 목적을 위해 시행하기보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 정일영(2020). 국가폭력 이후의 사면, 한국사학사학보, 제42권, 76-110.
대통령 사면권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됐습니다. 중대 경제 범죄나 민간인 학살 같은 중대 범죄는 사면 대상 범죄에 제한을 둬야 한다, 사면심사위원회를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식의 대안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개선된 것은 없습니다.
SBS 사실은팀은 다른 시기에 비해 정부 임기 초 유독 특별사면이 많았는지 살펴봤습니다. 집권 1년 차 이내 단행된 특별사면과 감형, 복권을 따로 떼어 전체와 비교해보니, 각각 64.0%, 57.9%, 30.1%였고, 다 합쳐서 계산하면, 59.7%였습니다. 역대 정권들은 특별 사면의 5분의 3 정도를 집권 1년 차 이내에 단행했습니다. 이에 사실은팀은 "임기 초 특별사면이 많았다"는 일각의 주장을 '대체로 사실'로 판정합니다. 다만, 임기 초 특별사면의 역사를 훑어보니, '국민 통합'이라는 대의보다 정통성이 취약한 정권이나 선거 후보자에 의한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이용된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 사면권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되는 만큼, 진지한 성찰과 토론이 시작돼야 한다는 게 사실은팀의 판단입니다.
(인턴 : 강윤서, 정수아)
이경원 기자leek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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