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자동차, 질적 성장 중요… 전기차시대 ‘SW 경쟁력’ 확보가 살길”[현안 인터뷰]
■ 현안 인터뷰 - 나승식 한국자동차연구원장
미국IRA 3년유예 긍정반응 예상
한국 하드웨어 기술 매우 뛰어나
문제는 소프트웨어 부문 부족
한자연, 자동차 부품 혁신 지원
자동차인적자원개발 대표기관
운송 개념 넘어 공유 개념 확장
4차 산업 질적 성장 확대될 것
민·관·연 소통 통해 성과 내야
최근 자동차 업계의 최대 현안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전기차 전환이다. 지난 8월 16일 발효된 IRA는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북미 지역에서 최종 조립한 전기차에 대해서만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한국, 유럽연합(EU), 일본 자동차 업체는 자사 전기차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아져 북미 시장 판매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IRA로 전기차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의 미래 경쟁력 확보 방안 마련도 시급한 상황이다. 글로벌 판매 3위(2022년 상반기)까지 오른 경쟁력을 전기차 시대에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놓고 정부와 기업, 학계가 고민하고 있다. 나승식 한국자동차연구원(한자연) 원장은 이에 대해 “국내 자동차 업계의 살길은 기술력과 글로벌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더는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에 바탕을 둬야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나 원장은 “기업, 노조, 정부가 해외 경쟁 시장과 비교해 전략을 세우고 경쟁력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자연은 1990년 정부와 민간이 설립한 국내 최고의 자동차 연구 전문기관으로 통한다.
―IRA와 관련해 미국 정부가 한국의 요구를 반영해줄지에 관심이 많다. 어떻게 예상하나.
“우리도 피해가 크지만, IRA 타격이 가장 큰 곳은 EU다. 일본도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미국이 무리해서 원안대로 IRA를 시행하지는 않을 것 같다. 과거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 철강에 대한 관세를 세게 부과했지만, 유예기간을 두고 우방국에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이번에도 이러한 수순이 될 것이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시행의 전반적인 수정과 유예는 어려울 수 있으나 우리가 요청한 3년 유예 기간 요청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EU도 IRA와 유사한 핵심원자재법(CRMA) 제정에 나서면서 제2의 IRA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CRMA는 희토류와 리튬 등 주요 금속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역내에서 생산된 자재를 사용한 제품에만 혜택을 주는 방식을 골자로 하고 있다. 내년 1분기에 공개될 예정이다. 정부가 이미 하고 있겠지만, 우리 사정을 정확히 빨리 알려주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EU도 우리나라와 경제교역 규모가 큰 만큼 일방적인 조치를 내놓긴 어려울 것이다.”
―한국지엠과 르노코리아자동차가 아직 본사로부터 전기차 배정을 못 받았다. 2035년 이후에는 내연기관차 생산이 중단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데 이렇게 가다가는 한국이 미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채 수입차 조립공장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한국 자동차 시장을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내수, 생산성, 공급망 등이 잘 갖춰져 있다면 해외 완성차업체들이 전기차 배정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한국 전기차 시장 규모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아직 크지 않다. 고임금과 노조 문제 등으로 생산성 부분도 매력적이지 않다. 정부 지원금 등도 외국에 비해 크지 않다.”
―경쟁력을 회복할 방안은 없나.
“한국 시장을 매력적으로 만들면 된다. 자동차 생산 관련 공급망을 튼튼히 만드는 게 중요하다. 부품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기술을 연구·개발(R&D)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기차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부품과 기술 공급망이 잘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 원가 경쟁력이 생겨 글로벌 업체들이 국내에 전기차 공장을 만들 여지가 생긴다. 부품 경쟁력이 생긴다면 부품업계에도 기회다. 현대차도 공급선 다변화를 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르노, 테슬라 등 해외 업체들도 국내 부품사를 찾게 돼 납품처를 다양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 부품업체 경쟁력은 어느 수준인가.
“하드웨어 기술은 매우 뛰어나다. 판금, 프레스, 성형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부품으로만 보면 테슬라 초기 제품의 완결성이 우리보다 떨어진다. 문제는 소프트웨어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최근 자동차 시장은 전기차로 주력이 바뀌면서 운영체제(OS)를 통해 중앙에서 제어하고 기능을 통합하는 소프트웨어가 핵심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우리 자동차 부품업계도 전기·전자, 소프트웨어 등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는 데 속도를 내야 한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것만이 우리나라 부품업체들이 살길이다.”
―한자연은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의 전동화 전환과 소프트웨어 경쟁력 제고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우선 내연기관차 부품 업체들이 전기차 등 미래차 부품 기업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산업통상자원부와 ‘자동차 부품 기업 혁신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신사업 인력 양성과 내연기관 인력 직무 전환 등을 위한 자동차 인적자원개발위원회(ISC) 대표기관 역할도 맡고 있다. 또 판교 R&D센터를 열어 글로벌 산업규격에 맞는 컴퓨팅 플랫폼 설계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향후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춘 자율주행, 커넥티비티 컴퓨팅 플랫폼 모델 등을 선보일 계획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해지는 자동차 업계 성패를 가를 요인을 꼽는다면.
“앞으로는 ‘차를 얼마나 많이 파느냐’보다 ‘질 좋은 차를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호환 가능성이 있는 차를 만드는 것이 자동차 업체로서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최근 모빌리티 개념은 원하는 장소로 이동시켜주는 운송 개념을 넘어 이용·공유 등의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지금까진 팔고 나면 끝이지만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되는 자동차 시대에는 구독서비스와 인포테인먼트(IVI) 등의 서비스 분야가 자동차업계의 주 수익원이 될 수 있다. 4차 산업시대 자동차산업은 양적 성장은 축소되고 질적 성장은 확대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자동차산업의 구조 자체가 변화될 것이라는 얘기로, 자동차 제조사와 부품사는 전기차, 자율주행 차를 넘어 공유서비스에 따른 모빌리티 산업 확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관련 분야에 대한 규제 완화도 필요하다.”
―미래차 전환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부품·노동력 감소로 인한 일자리 감소 우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사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해법은 있나.
“자동차 산업의 전동화는 ‘점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계에서 걱정하는 고용 감소는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전동화는 노사를 막론하고 피할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에 노조가 전기차 생산 전환을 요구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엔진, 변속기, 연료 및 배기계 부품업체들의 사업전환과 퇴출은 불가피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가 미래차 산업전환을 지원하고 있어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이 수소차 판매 글로벌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2018년 현대자동차 넥쏘 출시 이후 후속 모델이 나오지 않고 있다. 유럽과 미국이 공격적으로 수소 시장을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수소산업 선두 자리를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신차 출시도 중요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수소 연료 특징에 맞는 최적화된 차량 모델을 찾는 게 급선무라고 본다. 수소차는 환경오염이 없고 충전시간이 5분 내외로 짧으며 1회 충전 시 주행 거리가 길다는 장점이 있지만 차 가격이 비싸고 충전소 설치 등이 어렵다는 제약도 있다. 이런 특징을 고려했을 때 수소차는 도심 주행용 소·중형차보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고 장거리를 달리는 대형 상용차에 활용하는 게 적절하다. 선박과 건설기계(건설·물류), 철도 등에도 수소 연료가 적합해 보인다. 특히 에너지 밀도가 높아 무게를 줄여야 하는 드론 시장에서도 수소는 경쟁력 있는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내년에도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이 줄어들 전망이다. 전기차 대중화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전기차가 대중화되기 위해선 내연기관을 이낄 수 있는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전기차 가격이 내연기관차보다 비싼 것은 일정 수준의 수요를 바탕으로 한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는 것도 가격을 낮춰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보조금은 양날의 칼이다. 보조금을 계속 주면 원가절감 등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생력이 생기지 않는다. 적절한 시기에 보조금을 줄여 시장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동차제조사들이 운전대, 페달, 액셀 등이 없는 5단계 수준의 자율주행차 개발을 줄줄이 포기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완전 자율주행차는 가능한가.
“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미 자율주행 기술은 단계적으로 자동차에 적용되고 있다. 주행 중 차선·앞차와의 거리 유지, 자동주차 기능 등이 그것이다. 운전자의 간섭이 전혀 필요 없는 5단계의 완전 자율주행 기술도 반드시 나올 것이다. 다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2030년까지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기술적 한계와 별개로 5단계 기술 상용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 문제도 아직 가려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정부가 지난 9월 자동차 산업의 대전환을 위한 ‘자동차 산업 글로벌 3강 전략’을 발표했다. 전동화 글로벌 톱티어 도약, 생태계 전반의 유연한 전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 자율주행 및 모빌리티 신산업 창출이 구체적인 전략 방향으로 제시됐다. 이를 위해선 분야별 정책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민·관·연이 지속적으로 소통해야 실질적인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황혜진·이근홍 기자 lkh@munhwa.com
■ 나승식 원장은
자동차 기업 40곳 이상 방문… 취임 10개월 간 ‘현장에서 해답 찾기’ 매진
나승식 한국자동차연구원 제12대 원장은 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주요 요직을 거친 정보통신기술(ICT)·무역 정책 전문가다.
지난 2월 취임한 나 원장은 전동화 전환, 미·중 무역 분쟁 등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난제들을 맞아 연구원이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산업 대전환기에 빠르고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선 국내 자동차 업계의 현실과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발맞춰 연구원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살 하나 없는 나 원장에게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 차원에서 “특별히 하는 운동이 있냐”고 묻자 그는 “그저 전국을 열심히 돌아다니는 게 비결”이라고 답했는데, 실제 나 원장이 임기 10개월 동안 방문한 자동차 관련 기업 수는 40곳 이상이었다.
나 원장은 “자동차 산업 자체가 워낙 빠르고 광범위하게 변하다 보니 취임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연구원이 대응을 잘해야겠다’는 것이었다”며 “현장에 가보면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부담 같은 것들이 느껴지는데 이 같은 고민은 100년 넘게 내연기관을 만들어 온 자동차 선진국도 똑같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원은 면밀한 연구용역 능력을 갖춘 동시에 정부와 업계 간 가교로서 연구·개발(R&D) 프로젝트·정책 지원 등을 이끌어낼 수 있다”며 “대한민국의 역량이 집결될 수 있도록 연구원이 잘 유도한다면 지금의 변화는 국내 자동차업계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나 원장은 연구원의 변신도 예고했다. 그는 “연구원은 상당한 노하우와 맨파워를 구축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내연기관 중심이었던 만큼 최근 시대 흐름에 걸맞은 역량 강화를 진행하고 있다”며 “소프트웨어,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반도체 등이 자동차 산업의 중심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연구원이 업계에 새로운 기여를 하려면 변신은 필수가 됐고, 그 과정에서 제가 가진 노하우가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1966년 전남 강진 출생 △서울대 심리학과 △미국 콜로라도대 정보통신공학 석사 △행정고시 36회 △정보통신부 IT중소벤처팀장·지식정보산업과장 △지식경제부 기후변화정책과장·기계항공시스템과장·정보통신정책과장 △국무조정실 산업과학중기정책관 △산업통상자원부 소재부품장비산업정책관·무역투자실장·통상차관보 △무역위원회 상임위원 △한국자동차연구원 원장
이근홍 기자 lkh@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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