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개혁 성패에 국가흥망 달려… 노조 등 사회 전방위로 확산해야”
■ 안영균 세계회계사연맹이사 인터뷰
기업 등 경제주체 필수 경영수단
외부감사 규율 따라 부수적 취급
부처별 회계담당 전문성도 부족
시민단체 등 반복되는 회계부정
칸막이·불투명성 높은 게 원인
누구나 열람 가능한 장치 필요
韓 회계개혁, 해외서도 큰 관심
자료축적·국제기구와 연구 필요
“회계는 중요한 국가 인프라입니다. 한때 세계를 제패한 강소국 네덜란드는 국민 모두에게 회계 교육을 받도록 해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국내 법체계와 사회적 관행은 회계를 외부감사법(외감법) 적용을 받는 기업의 전유물처럼 취급합니다.”
안영균(63) 세계회계사연맹(IFAC) 이사는 “회계는 기업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등과 같은 비영리단체(NPO)는 물론이고 공공 부문, 소상공인 등 각 경제 주체 누구나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경영 수단”이라면서 “하지만 우리는 일관성 있는, 국가적인 차원의 회계 인프라나 법·제도조차 갖추지 못한 채 후진적인 상황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 이사는 최근 이슈로 떠오른 노동조합의 회계 투명성 문제에 대해서도 “비영리단체의 생명은 신뢰이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기반은 회계 투명성이지만 공개조차 안 될 정도로 문제가 있었다”고 진단한 뒤 “회계개혁 성패에 국가 흥망성쇠가 달린 만큼 인프라를 재정비하고 사회 전방위로 확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 세계 300만여 명의 회계사를 대표하는 IFAC 이사로 2019년 11월부터 활동해온 안 이사를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7길 한국공인회계사회 사옥에서 만났다.
―회계 제도와 관련해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할 사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리나라는 회계가 국가 인프라라는 생각을 못해온 것 같다. 주식회사의 외부감사 규율을 다룬 외감법에 회계 규정을 적어두고 이를 준용하라고 하고 있다. 외감법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규정을 담고 있는 법률에 불과하다. 회계는 오히려 부수적으로 다루고 있다. 본말이 전도된 법체계다. 국가적인 차원의 공통 회계 규정을 정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본시장법·상법 등 주요 법률의 특성에 맞게 적용하고 있는 해외의 접근법과는 대조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영리단체나 공공부문의 경우 소관 법률을 담당하고 있는 주무 부처별로 제각각 회계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부문마다 용어조차도 다를 정도로 일관성이 부족하다. 더욱이 대부분의 부처별 담당자가 회계와 관련 없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회계에 대한 전문성도 부족한 상황이다. 회계기준의 제·개정이 필요하거나 회계기준의 해석이 필요한 경우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법률체계나 구조로는 투명성을 담보할 수가 없다.”
―해법은.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칭 ‘회계기본법’과 같은 회계의 기본적 구조를 다루는 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부분별 법률에서 특성에 맞게 추가 규정을 정하도록 해야 일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제대로 인프라가 갖춰지면 노조 회계비리 등과 같은 문제도 예방할 수 있는가.
“이번에 수면 위로 떠오른 노조나 지난해 이슈화된 비영리단체의 회계 비리 문제 등도 국가적인 차원의 회계 인프라가 정비돼 있다면 상당 수준 예방할 수 있는 사안이다. 회계기본법이 있다면, 부문별로 이걸 지켰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은 일관성 없는 법률에 따라 사안별로 따로 들여다봐야 한다. 칸막이와 불투명성이 높을수록 신뢰의 문제가 생겨난다. 해외를 보면 비영리단체도 자발적으로 공시하고 회계 감사를 받는다. 그래야 떳떳하게 대외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비영리단체가 먼저 외부의 비판이 있기 전에 스스로 먼저 공개해야 한다. 정부에 제출토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관 사찰 의혹을 살 수도 있지만, 공공영역에 회계자료를 보관만 하고 정부가 이를 개별적으로 조사하지 않는다면 논란도 없을 것이다. 대신 문제가 되면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정도 수준에서만 해도 상당 부분 문제는 해소될 것이다.”
―외부 감사를 받는 기업도 분식회계나 횡령 사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외부 감사인(회계법인)과 함께 회계 부정을 막아야 하는 이사회의 감사위원회가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현재 감사위원 전원을 사외이사로 구성한 기업 비중은 약 96%(조사대상 173사 중 166사)인데 사외이사는 각 분야의 전문가이자 외부자로서 객관적 시선을 견지할 수 있어 독립성이 확보될 수 있지만, 기업 업무에 대한 전반적 이해도 측면에서는 전문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내부 감사조직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감사위원회(또는 감사) 산하의 독립된 내부전담조직을 운영하는 곳은 소수에 불과하다. 감사위원회가 보고 라인과 책임자 임면 동의권을 모두 보유한 기업은 9.7%(조사대상 175사 중 17사)에 불과하다. 해외는 감사위원회가 독자적으로 외부 감사인을 선임한다. 감사위원회가 외부 감사인을 틀어쥐고 경영진을 철저하게 감독한다. 이 때문에 회계 부정 사건이 발생하면 사외이사를 막론하고 감사위원들에게 막중한 책임을 묻는다. 반면, 한국은 법원에서 사외이사에 대한 책임을 가볍게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회계개혁과 관련, 한국처럼 감사인 주기적 지정제를 도입한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해외의 평가는 어떤가.
“이사로 참여하는 IFAC와 국제기준제정기구인 국제윤리기준위원회(IESBA) 등 국제기구에서는 한국이 회계개혁을 통해 감사인의 독립성을 강화한 것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는 없는 일이라며 놀라워하면서 큰 관심을 보인다. 일부 국가에서는 한국의 입법 사례를 요청하기도 하는 등 회계 투명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싶어 한다. 한국의 회계개혁에 대한 자료를 축적하고, 그 결과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국제기구 등과 공동 연구할 필요가 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신외부감사법 시행에 따른 회계 투명성 제고 효과에 대해 국내외 기관투자자의 평가 및 제언을 청취했는데, 참석자들(외국계 투자은행 3명, 국내 연기금 2명, 신용평가사 1명)은 주기적 지정이 해외에 없는 독특한 제도이지만 한국 기업의 취약한 지배구조 문제를 보완하고 회계 투명성 향상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3년치만으로는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당국 지정 6년과 자율 선임 3년’이라는 사이클을 온전히 돌아봐야 합리적인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회계개혁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기업도 적잖은데.
“회계개혁 직후 기간만 보면 감사비용이 급격히 상승한 것 같지만, 사실 회계개혁 이전 감사보수의 시간당 단가는 지속적으로 하락(2009년 9만9000원→2018년 7만9000원)하는 상황이었다. 회계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감사시간 및 감사보수로 부실 감사 우려가 상존한 점을 고려하면 최근의 감사단가 상승은 국제적 추세에 맞게 정상화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감사인의 자료 요청 등에 대해 피로감을 호소하는 기업도 있는데, 선진국의 경우에는 감사인이 회사 자료에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과거보다 감사기준에 따라 원칙대로 충실히 감사하고 발견한 사항을 소신 있게 감사의견에 반영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최근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의 사정을 고려해 감사인들은 정도(正道) 감사의 자세를 견지하되 역지사지의 자세로 사려 깊게 감사업무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기업이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국제 활동을 오래한 회계전문가로서 우리 기업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 것으로 보는가.
“주요 요인으로 취약한 기업지배구조와 낮은 배당 성향, 회계 불투명성, 낮은 수익성·성장성, 지정학적 위험 등을 꼽는다. 회계사로서 무엇보다 먼저 개선됐으면 하는 부분은 회계 투명성이다. 이를 위해 강도 높은 회계개혁이 진행된 만큼 향후 좋은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개선해야 할 또 다른 주요 분야는 기업지배구조라고 생각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지배주주의 지배력 유지를 위한 순환출자, 물적분할 등의 관행이 이어지고 있고, 이사회의 독립성 상실, 소액주주 보호 정책 미비 등 기업지배구조가 취약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를 반영하듯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순위는 아시아권 내에서도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에 따르면 12개국 중 9위에 불과하다.”
“재무제표 등 회계 진입장벽 높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경영 기본 도구로 편의성 우선
회계기준원·금감원 자료 참고
“회계는 이용하는 사람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재무제표 등이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난도가 높아졌습니다. 1980년대에 정교함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많이 받다 보니 경제 현상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데 매진한 결과입니다.”
지난 11월 세계회계사연맹(IFAC) 이사로 다시 선임된 안영균 이사는 최근 회계 흐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회계는 경영 목적이 아니라 수단인데도 재무제표 등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나치게 어려워진 점은 앞으로 회계업계가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라고 역설했다.
―이용자 관점에서 보면 진입 장벽이 무척 높은데.
“2011년 국제적으로 고품질의 회계기준으로 인정받는 국제회계기준(IFRS)을 전격적으로 도입하면서 재무 보고의 수준이 한 단계 도약했다. 하지만 이제는 회계 전문가들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나아간 측면이 있다. 특히 원칙 중심 회계기준은 이용자들의 전문성 축적과 경험이 일천한 국가에서는 운용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회계는 경영의 기본 도구이므로 무엇보다 이용자 편의성이 우선돼야 한다.”
―활용 팁을 준다면.
“회계기준에 대한 해석이나 교육 자료는 회계기준원과 금융감독원, 한국공인회계사회 홈페이지에 다양한 자료가 올라와 있다.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할 때 주석사항을 함께 검토하는 것이 좋다. 재무제표와 주석사항을 전년도와 비교하고, 동종 업종의 타 회사와 비교하는 것도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공시된 재무정보를 직접 해석하기 어려운 경우 간접적으로 해당 기업과 산업에 대해 분석한 재무분석가의 분석보고서 등을 이용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IFRS 재단은 올해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를 설립했다. 지속가능성 보고(Sustainability Reporting)가 화두가 되고 있다. 국내 대응과 과제는.
“ISSB는 지난 7월까지 국제지속가능성공시기준(IFRS S1, S2)의 공개초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2023년 상반기 중에 공시기준을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 지난해에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행한 기업은 179개다. 이 중 상장사는 136개로 전체 상장사의 5%에 미치지 않는다. 이 기업들의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IFRS S1, S2의 수용 수준은 높지 않다. 늦어도 2025년부터는 관련 공시를 하지 않는 기업은 글로벌 차원에서 투자조차 받기 힘들어질 것이다.”
■ 안영균 이사는…
△1959년 출생 △서울대 경영학과 학사·석사 및 국민대 경영학 박사 △세계회계사연맹 이사 △한국공인회계사회 상근부회장 △삼일회계법인 대표 △한국경영학회 부회장 △한국회계기준원 이사 △세계회계교육기준위원회 위원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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