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으로 기대넘는 경험… 힘있는 이야기 찾는 게 제 역할” [MZ편집자를 만나다]

박동미 기자 2022. 12. 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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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영화와 연극으로 만들어지고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수많은 담론을 만들어 낸 하나의 현상이었다. 이 책의 편집을 담당했던 박혜진 민음사 한국문학팀장이 서울 강남구 민음사에서 자신이 편집한 책들과 잡지들을 사이에 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 MZ편집자를 만나다 - (2) ‘82년생 김지영’ 편집한 박혜진씨

영화·연극·담론 만들기까지

책의 시간·생명력 더 길어져

특정작가 섭외·출판여부 결정

비문학 못지 않은 기획력 필요

서사의 힘, 스타신인 만들기도

평론가로서 좋은 책 맘껏 얘기

후배들도 ‘쓰는 사람’이 되길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들 하는데, 책이 하는 일을 한번 보세요. 한 권의 책이 나와서 사회적 논쟁거리와 새 담론을 만들어내고, 영화도 되고 연극도 되고…. 거기까지 모두 ‘책의 시간’이죠. 책의 생명이 오히려 길어진 시대라고 생각해요.” 2016년 출간돼, 한국 여성주의 문학과 성 담론에 뜨거운 불을 지핀 조남주 작가의 대표작 ‘82년생 김지영’(민음사).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하고, 해외 수십 개국에서 출간돼 ‘문학 한류’를 이끌었다는 평을 듣는다. 입사 7년 차에 이 책을 만든 박혜진(37) 민음사 편집자. 벌써 6년이 흘러 지금은 한국문학팀 팀장이 됐다. 최근 서울 강남구 민음사 본사에서 만난 박 팀장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긴 시간이었다”고 ‘82년생 김지영’ 출간 후 이 책과 함께 겪고 지나온 시간을 회고했다. 얼마 전 연극으로도 만들어진 소설은 화제성만큼 호불호도 갈렸다. 작품의 완성도나 동명의 영화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다. 박 팀장은 “책 한 권으로 기대와 상상 이상의 경험을 했고, 그만큼 책 만드는 일에 대한 애정과 꿈은 더 커졌다”고 말했다.

얼핏, 문학 편집은 비문학에 비해 편집자의 기획력이 좌우되지 않는 듯 보인다. 시집이나 소설책은 이미 작가의 명성 등이 책의 많은 부분을 결정짓기도 하니까. 그러나, 편집자의 역량과 역할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다는 게 박 팀장의 주장이다. 그는 “특정 작가와 작업을 할지 말지, 그 소설을 책으로 낼지 말지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한다”면서 “그게 이 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그만큼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때 편집자의 취향은 들어설 자리가 없어요. 사람들이 뭘 궁금해하고 지금 시대가 뭘 필요로 하는지 늘 생각하죠. 독자들은 계속 새로워지고 있고, 편집자는 그걸 놓치지 않아야 하니까요.”

늘 독자와 세상을 향해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도, 어떤 소설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지, 어떤 책이 잘 팔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2016년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이 2022년 무대에 오르고, 대만과 일본에까지 페미니즘 출판 붐을 일으킬지는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박 팀장은 “그래서 문학 편집이 더 재밌다”며 웃었다. “권위보다 이야기의 힘이 작동하는 장르거든요. 때로 신인 작가가 돌풍을 일으키기도 하고요.”

박 팀장은 편집자이면서 2015년 등단한 문학평론가이기도 하다. 최근 비평집 ‘언더스토리’와 독서 에세이 ‘엔딩 노트’ 등 자신의 책도 냈다. 편집자는 오랜 꿈이었으나, 평론가는 우연히 됐다고 말하는 그는, “글 쓸 기회, 즉,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게 달라진 점”이라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만든 책, 좋아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건 편집자로 일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비평은 작품에 대한 나만의 애정 논리를 만들어 내는 일이잖아요. 작품을 계속 봐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작가나 작품이 새롭게 보이고,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이 뭔지 더 잘 알 수 있죠.” 일종의 ‘선순환’이다. 그래도, 비평과 편집 중에 고르라면 후자다. 힘은 더 들지만, 보람이 더 크다. “평론은 시작도 끝도, 오로지 저예요. 그런데 편집은 작가의 의중도 파악해야 하고, 동료들과 소통도 해야 하고, 작업 과정에 우여곡절도 생기죠. 하지만 그만큼 출간 후 얻는 기쁨은 몇 배랍니다.”

읽고, 쓰고, 편집한다. 본업의 연장선에서 자신의 비평 활동을 규정하는 박 팀장은, 동료나 후배 편집자들도 ‘쓰는 사람’이길 바란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전문적인 비평과, 대중적인 서평 사이 어딘가에 있을 ‘에디터의 글쓰기’가 한국 문학장에 뿌리내리기를 꿈꾼다. 그가 주축이 돼 2016년 창간한 민음사 문학잡지 ‘릿터’에 최근 들어 유독 편집자들의 글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다. 그는 “아직 그 글쓰기를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는 없다”고 했다. “비평이 가진 마음과 태도에, 친밀한 서평의 방식이 결합한 ‘어떤’ 형태이지 않을까요.”

한 해에 박 팀장이 편집을 담당하는 책은 평균 10권. 그는 “솔직히 자랑할 일은 아니다”라며 겸연쩍어했다. 팀장이 된 지 2년이고, 관리자로서 편집 외에도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출간 책 종수를 줄이지 않고 무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팀원들을 도와주는 일도 즐겁지만, 마음은 늘 ‘현장’에 있는 것 같아요. 책 만드는 일이 여전히, 너무, 좋은걸요, 하하.”

“‘김지영’관련 담론 엮은 100만부 기념판…동시대 한국사회 읽게 할 코멘터리 버전”

■ 박혜진 편집자의 추천도서

박혜진 팀장에게 ‘82년생 김지영’은 이 소설이 한국 문학 시장에 불러일으킨 파란의 크기만큼 의미가 깊다. 그러나 더 각별한 것은 100만 부 기념 특별판이다.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크고 작은 담론과 비평 등 한국 사회를 읽어낼 수 있는 다양한 글들을 함께 실은 일종의 ‘코멘터리’ 버전이다. 박 팀장은 “대중성을 고려해 좀 더 즐겁고 쉬운 형식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이 소설의 최초 목적을 생각했다”고 했다. “100년이 지나서도 이 시대를 증언해 줄 수 있는 책이 되길 바랐어요.”

영화화가 결정됐거나, 이미 촬영 중인 소설도 있다.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2015)와,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2017)다. 기약 없는 미래와 출근길 지옥철에 지친 20대 청춘이 퇴사 후 한국을 등지고, 레즈비언 딸과 함께 사는 엄마는 조금씩 이해와 성장의 과정을 겪는다. 모두 ‘지금, 여기’를 말하는 이야기. 박 팀장은 에너지 고갈, 이상 고온 등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소설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도 꼭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이 책의 새로운 형식과 문학적 상상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또, 곧 드라마로 선보이는 이혁진 작가의 ‘사랑의 이해’에도 관심을 가져 달라며 웃었다.

후배 편집자들이 기획한 ‘매일과 영원’ 시리즈의 홍보도 잊지 않았다. 시, 소설의 창작 과정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박 팀장은 “이런 책들은 독자와 문학 사이에 다리가 되어 준다”고 했다. ‘지속 가능한 독서’를 위한 장기 프로젝트인 셈이다. 또한, 이는 편집자에게도 특별한 경험이다. “무슨 일이든 성장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필요하잖아요. 이런 시리즈가 편집자와 독자를 모두 키웁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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