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눈을 심어라 外[신간]
<거기 눈을 심어라>
M. 리오나 고댕 지음·오숙은 옮김·반비·2만원
헬렌 켈러가 손바닥 위에 적힌 ‘물’이란 단어에 환희를 느낀 건 일곱 살 때였다. 그는 여든일곱 살까지 살았지만, 성인 이후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사회적 사안에 계속 목소리를 냈음에도 장애와 무관한 부분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 시각장애인은 시인이나 예언자, 초능력자 혹은 순수한 존재로 등장하곤 한다. 대중은 시각장애인에게 시각을 대신한 초감각을 기대할 뿐, 평범한 시민으로서의 모습은 기대도 신뢰도 하지 않는다. 작가이자 공연예술인이면서 망막변성으로 수십년에 걸쳐 시력을 잃어온 저자가 시각 중심 사회와 비장애 중심주의를 해부한다. 참고로, 시각장애인이 보지 못하는 색상 중 하나가 검정이라 한다. 눈멂은 짙은 어둠이 아니라 빛의 폭격이나 뿌연 안갯속이란다. 맹목적 사랑 등 비유적 표현이 시각장애인에게 어떤 의미일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인류 종말 기계
대니얼 엘스버그 지음·강미경 옮김·두레·2만3000원
그는 세계의 종말을 예감했다. 북반구 대부분의 파멸을 의미하는 숫자가 ‘일급기밀’, ‘대통령만 열람 가능’이란 제목 아래 적혀 있었다. 1971년 미국의 베트남전 결정 과정을 담은 ‘펜타곤 문서’ 폭로자는 핵전쟁 관련 폭로도 준비하고 있었다. 불의의 사고로 폭로는 미뤄졌다. 그에 따르면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속 ‘둠스데이 머신’은 실재한다. 미국의 핵무기는 단 한 번의 선제공격을 위해 존재하며, 대통령이 위기에 처하면 사령관들에게 위임됐다. 사실 그동안도 늘 ‘사용’돼왔다. 협박용으로.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백신애, 최진영 지음·작가정신·1만5000원
근대 작가(백신애)의 소설을 현대 작가(최진영)가 변주함으로써 여성 문학의 어제와 오늘을 잇는다. 백신애의 ‘아름다운 노을’, ‘광인수기’, ‘혼명에서’ 속 인물과 설정을 녹인 최진영의 표제작이 변치 않은 여성의 삶과 매혹을 그린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전미연 옮김 열린책들·1만6800원
가상의 실험용 샴고양이 피타고라스-실은 고양이 집사 베르베르-가 쓴 고양이 잡학사전. 고양이가 인간 역사에서 존재감을 자랑한 순간들, 호기심을 자극하는 생물학적 정보가 털이 만져질 듯 생생한 도판과 함께 펼쳐진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지음 휴머니스트·1만8000원
자신의 이름 대신 OO이 엄마로 불리며 집안일과 바깥일을 넘나든 고령 여성 수십명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세상은 일로 인정하지 않았던 ‘N잡러’ 언니들 인생의 진짜 가치를 데이터와 통계를 통해 구조적으로 재조명했다.
임소정 기자 sowh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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