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국민 피해만 키우는 재판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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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은 1심 판결이 선고 되는데 무려 5년이 소요됐다.
노 관장 측은 항소했다고 하니 그 둘의 이혼 소송이 완전히 마무리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그런데 사실관계나 쟁점이 복잡한 사건은 새 재판부가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심리하는 일도 적지 않고 그 과정에서 소송이 또 한 번 지연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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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로 일하며 의뢰인들로부터 많이 듣는 질문 중에 하나는, 소송이 끝나는 데 얼마나 걸리는 지이다. 송사를 겪는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기간을 묻는 의뢰인의 마음을 모를 리 없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대답은 ‘빠르면 1년 정도지만 경우에 따라 더 늦어지기도 합니다’ 이다. 왜 그리 오래 걸리냐는 질문에는, 소장을 제출하고 첫 변론기일이 잡히는 데까지는 아무리 빨라야 3개월이고, 변론기일은 한 달 또는 한 달 반마다 잡히기 때문에 1년은 금방 지나간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그러나 이제 나의 대답도 바꿔야 될 것 같다.
최근 5년간 전국 법원에서 2년 내에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이 민사소송은 3배, 형사소송은 2배로 늘었다고 한다. 특히 서울중앙지법에서 5년 넘게 판결이 나지 않는 ‘초장기 미제 사건’도 5배가량 늘었다. 안그래도 오래 걸리던 재판이 몇 년 새 더욱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대한변호사협회가 전국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한 변호사의 89%는 소송 진행 중 재판 지연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문제는 소송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은 단순히 시간 낭비의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뢰인들 중에는 정신과 상담을 받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소송 과정에서 겪게 되는 스트레스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알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다. 공평 타당한 판결을 하는 것만큼이나 신속하게 제 때 판결을 하는 것 또한 당사자에게 중요한 문제인데, 지루하게 늘어지는 소송기간은 당사자들을 또 한 번 괴롭히는 셈이다. 현실에서는 당사자가 판결을 보지 못하고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고, 청구한 원금보다 지연손해금이 더 많아지는 일도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 속의 그 ‘지연된 정의’가 실제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연말이 되면 변호사들은 올해 미처 끝내지 못한 사건들로 근심에 젖는다. 2월에는 법원의 정기 인사가 있어 재판부가 교체되는데, 그동안 심리했던 재판부가 인사 전에 선고하지 못하면 결국 새 재판부에 사건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관계나 쟁점이 복잡한 사건은 새 재판부가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심리하는 일도 적지 않고 그 과정에서 소송이 또 한 번 지연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당사자들이 납득할 리 만무하다.
법원의 재판 지연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주된 원인은 법관의 부족으로 꼽히지만 법관의 정원을 법으로 정해두었기에 과소하게 법관을 뽑던 방식을 고수해왔다. 더욱이 사회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사법 수요가 늘어남에도 법원은 현실을 도외시했고, 그 결과는 재판 지연의 고착화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4년 이후로 8년 만에 법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관 증원에 앞서 필요한 것은 당사자의 갈급함을 진심으로 헤아리는 마음이다. 우리는 때때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선고가 유난히 늦어지는 경우를 보게 된다. 국민들은 그러한 상황을 보며 법원이 당사자의 입장보다는 법원의 안위를 위해 재판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것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게 되고, 이는 결국 사법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법원이 외부 상황에 좌고우면 하지 않는 태도, 도움을 청한 당사자를 헤아리는 태도로 임할 때 비로소 느리게 가는 법원의 시간을 바꿀 수 있다.
송길호 (kh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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