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여가부 증액 예산에 ‘성평등’은 없었다
[[현장에서]]
2023년도 여성가족부 예산이 2022년(1조4650억 원) 대비 7.0% 증가한 1조5678억 원으로 최근 확정됐다. 여가부는 맞춤형 가족서비스 확대(가족 정책), 폭력 피해자 지원 강화(권익 정책), 위기 청소년 지원(청소년 정책) 등에 중점을 두고 예산이 편성됐다고 밝혔다.
증액된 예산 가운데 성평등 관련 예산은 찾기 힘들었다. 이는 정부안 마련 과정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다. 앞서 정부 예산안에서 여가부의 ‘여성 정책’ 사업 예산 일부가 2022년 예산 대비 감액된 바 있다. 양성평등 및 여성사회참여확대 공모사업에 참여하는 단체를 지원하는 예산 4천여만 원, 양성평등정책을 조정・협의하는 예산 7백만 원 등이 삭감됐다. 여가부가 관계 부처 논의를 통해 정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해당 예산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기순 여가부 차관은 지난 11월16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에서 양성평등정책 의제 발굴 등 예산이 삭감된 성평등 정책과 관련해 ‘민간보조금 사업 평가에서 미흡 판정을 받았다’ ‘다른 사업과 중복 가능성이 있다’며 증액이 아닌 현안 유지를 원한다고 밝혔다. 부처에서 나서서 예산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당시 여야 의원들이 오히려 ‘예산 심의 과정에서 적극적인 수용 자세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 ‘기술적인 보완책이 있다’며 증액에 동의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렇게 삭감된 예산은 국회에서 부활하지 못했다. 여가부 전체 예산은 정부안에 견줘 늘었지만, 성평등 예산은 전혀 늘지 않은 것이다. 여가부가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여성가족부 2023년도 예산 현황’을 보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여가부 예산은 정부안 대비 약 172억6천만원이 증액됐다. 이 가운데 89%가 청소년 관련 예산이다. △스토킹 피해자 지원(7억) △가족센터 운영(12억) 등의 예산도 늘었다. 각각 권익 정책, 가족 정책에 속한다.
야당 예결위 관계자들은 여가부가 성평등 정책에 대한 증액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해당 부처에서 특정 부문이나 사업과 관련한 예산을 증액해달라고 요청하면, 예결위원이 판단해 의견을 넣는 과정을 거친다”며 “여가부가 성평등 정책 예산 확보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건 사실”이라고 했다.
성평등 예산과 달리 청소년 관련 예산은 다양하게 증액됐다. △청소년치료재활센터 건립 △청소년 국제교류지원 △청소년 방과 후 활동 지원 △청소년 사회안전망 구축 △청소년 복지시설 운영지원 등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립호남권청소년디딤센터 건립(17억), 국립광주청소년디딤센터 건립(10억), 2023세계잼버리지원(45억), 청소년국제교류 프로그램(3억), 스카우트 활동지원(2억7천),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운영지원(16억), 청소년안전망 운영(10억), 청소년상담1388 운영(2억1천), 학교밖청소년 지원(19억), 이주배경청소년 지원(3억2천), 청소년쉼터(21억), 청소년자립지원관(2억) 등이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청소년 관련 예산이 정부안보다 약 153억원 늘어날 수 있었던 데는 여가부가 그만큼 관련 예산 확보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야당 예결위 관계자들은 “여가부 담당 국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의원실로 찾아와 청소년 관련 예산을 증액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지만, 성평등 예산에 대해서는 예산을 증액해 달라는 요청은 없었다”고 말했다.
청소년과 가족 정책에 대한 여가부의 관심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늘여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여가부 사업 가운데 가족 정책과 청소년 정책이 차지하는 비중도 성평등 사업보다 월등히 크다. 2023년 여가부 예산 가운데 가족 정책 예산은 전체의 65.5%를 차지한다. 이어 청소년 정책 예산(16.1%)과 권익 예산(8.8%), 성평등 예산(7%) 순서다. 궁금한 것은 청소년 정책과 가족 정책에 보이는 관심을 왜 성평등 정책에는 보이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의 성평등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는 점은 여러 지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성별임금격차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지난해 오이시디 38개 회원국의 평균 성별임금격차는 12.0%인 반면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31.1%로 가장 컸다. 한국은 1996년 오이시디 가입 이래 이 지표에서 26년째 줄곧 1위를 기록 중이다. 여성의 경제참여 기회와 정치권한 등을 주요 지표로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21 세계성격차보고서(GGI)’에서 한국은 156개국 중 102위로 최하위권이다. 지난 3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지수를 보면, 한국은 오이시디 국가 가운데 10년째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지난 9일 <에스비에스>(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에서 “세대가 평등하고 그다음에 남녀가 평등한 시대로 가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상 성평등 정책을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겠다는 취지다. 이런 정책 속에서 한국의 성평등 지수는 바닥을 기고 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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