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한 ‘머드맥스’가 있는 곳, 서산의 역동적인 겨울 운치란 [함영훈의 멋·맛·쉼]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경광등 달고, 깃발 꽂은 경운기에 ‘키맨’이라고 적힌 모자를 쓴 어르신을 비롯, 6070세대 바지락부대원들을 태운 ‘머드맥스’ 군단이 달리던 곳은 충남 서산시 가로림만의 오지리 갯벌이다. 한국관광공사의 ‘Feel the Rhythm of Korea’ 영상이 지구촌에 전파되자 엄청난 반향이 일었던, 그곳이다.
할리데이비슨 보다 힙하다는 평가와 함께 우리 어르신들의 활기차고 명랑한 조업 풍경, 조업을 끝낼 때 웃음과 나눔의 미학을 보여주던 모습에서, 많은 국내외 젊은이들이 감동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갯벌경운기의 역동성과 흥겨운 노동요로 고된 조업을 견디며 자식들을 키워내고 대학에 보낸 어르신들이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영상을 본 젊은이들이 “효심과 존경심이 절로 솟는다”했던 곳.
서산의 역동성과 억척스러움, 인정, 갓 잡아 올린 청정해역 수산물의 맛을 대변해주는 대표적 풍경이다.
겨울이 깊어가면서 인적이 줄어든 가로림만이지만, 그곳 주민들의 재잘거림은 여전히 들리는 듯 하다. 더 예쁘게 단장된 웅도, 긴긴 저녁해가 드리울 무렵, 서해바다위에 피어나는 꽃, 간월암 풍경화, 펄펄끓는 우럭젓국의 구수한 향기, 국방과 순교성지인 해미읍성의 인문학은 서산 겨울여행을 푸짐하게 한다.
머드맥스 바지락 경운기 부대가 누비는 가로림(加露林)만은 이름부터 멋지다. 이슬이 모이고 모여 숲을 빚어냈다는 뜻이다. 전문용어로 ‘반폐쇄성 내만’이라하는데, 쉽게 설명하면 끄트머리가 붙지 않는 바람에 가까스로 바다인, 항아리형 해역이다. 코앞에 마주보는 서산 벌천포와 태안 만대항이 붙기라도 했으면 여의도 5배 크기의 호수 즉 라군이 됐을 것이다.
대양에서 한 번 들어온 수산물은 이곳에서 좀처럼 나가지 못하니, 어족 자원이 풍부하다. 해양생물들에겐 피난처 일수도 있겠다. 생태적 가치가 매우 우수한 곳으로 환경 가치평가 1위를 차지한 곳으로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해양생물보호구역이다.
서산 대산읍내에서 서쪽길을 따라 가다 웅도 입구를 지나 오지리 쪽에 막 접어들면 “배우 김무생, 김주혁 이곳에 잠들다”라는 표석이 나온다. 그리고는 백령도와 이곳에 출몰하는 물범(해표) 모양의 오지리 동네 표석이 여행자를 맞는다. 천연기념물 점박이물범과 흰발농게 등 보호종들이 사는 청정해역임을 동네 입구부터 알리고 있는 것이다.
서산시는 천혜의 보고인 가로림만을 국가해양정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예비타당성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오지게’ 지구촌을 놀래킨 어르신들의 기세가 느껴지는 오지리는 ‘검은 곶’이라는 자연마을 이름 때문에 까마귀오(烏)자를 쓰다가 지금은 나 오(吾)자를 쓴다. ‘나의 물터(吾池)’라는 뜻으로 강한 애착이 느껴진다.
‘고창개 해초바다숲’이라고 명명된 곳에서 우리 어르신들이 자식 대학 보내고 손주 까지 본 뒤에도 힙한 경운기로 이동해 억척 어로를 했다. 이곳엔 독살 체험장도 있다. 고창개란 국립 세곡창고가 있던 갯가라는 뜻인데, 군량미 등 국가 미곡을 속초시 크기 만한 가로림만 항아리속에서 은밀히 이동시킨 것이다.
오지리에서 경광등을 단 채 갯벌을 내려다보며 쉬고 있는 경운기와 작별을 고하고, 이젠 웅도로 향한다.
오지리 남쪽 섬 웅도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곰이 웅크리고 앉은 모습이라 이런 이름을 얻었다. 이 섬 당산의 제단 주위에 수백 그루의 아름드리 노송들이 있는데, 이를 먼 곳에서 바라보면 마치 섬의 배꼽처럼 보여 배꼽섬이라 부르기도 했다.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유두교는 섬의 관문이자 모세의 기적이 펼쳐지는 신비의 바닷길이다. 밑둥은 하나지만 나뭇가지가 아홉 개로 갈라진 웅도 반송은 쟁반을 닮았다고 해서 반(槃)자를 쓰는데, 400여년 사는 동안 도사가 되었는지, 모든 소원을 담아낸다고 한다. 여행자들은 한 번쯤 이 나무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썰물 때가 되면 길 옆 갯벌과 얕은 해역은 자연 학습장이자 생태계의 보고이다. 홍합, 낙지, 주꾸미, 미역, 우럭,남방붕장어,놀래기,넙치,도다리,꽃게, 돌김,굴,바지락 등이 웅도 등 가로림만 해역과 갯벌에서 채취된다.
서산시 행정 구역 남서쪽 부석반도 끝에 매달렸다 떨어졌다 하는 간월도는 물이 차면, 바다 위의 핀 꽃과 같은 자태를 뽐낸다. 조선 창건에 관여한 무학대사가 창건한 암자 간월암과 솔 숲이 긴긴 저녁해의 붉은 빛을 받아 아름다운 꽃 풍경을 연출한다. 별칭은 물 위에 떠 있는 연꽃, 즉 연화대(蓮花臺)이다.
이곳에서 수행하던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어리굴젓을 보낸 것을 계기로, 간월도 일대 어리굴젓은 궁중의 진상품이 됐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굴의 풍년을 기원하는 ‘굴부르기 군왕제’가 매년 정월 보름날 만조때 간월도리 어리굴젓 기념탑 앞에서 벌어진다.
간월도 동쪽 내륙에 있는 해미읍성은 조선 태종이 1416년에 군사를 이끌고 도비산에 올라 서산태안지방의 지형을 보면서 덕산에 있던 병마절도사영을 이곳으로 옮기도록 결정하면서 축성됐다. 230여 년간 종2품 병마절도사가 주둔하는 충청도의 군사중심지였고, 19세기엔 크리스트교 순교지로서의 가치를 얻게 된다.
1579년에는 충무공 이순신이 병사 영의 군관으로 부임해 10개월간 근무하기도 했다. 적군의 접근을 어렵게 하려고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성 주변에 둘러 심었기 때문에 탱자성이라고도 불렸다.
해미읍성은 조선말 천주교도들의 순교 성지로도 유명하다. 천주교 박해 당시 관아가 있던 곳으로 충청도 각 지역에서 끌려온 1000여명이 순교했다. 1866년부터 1872년 사이 천주교 박해 때 대표적인 순교지로서, 교황청은 무명 순교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2020년 11월, 지옥의 압송로 한티고개를 포함한 해미성지를 국제 순교성지로 지정했다.
국가 양곡 보관과 운반을 책임지던 오지리 고창개를 품은 가로림만은 예나 지금이나 국민 먹거리를 오지게 책임진다. 서산의 먹거리는 꽃게장, 서산어리굴젓, 게국지, 밀국낙지탕, 우럭젓국, 영양굴밥이 대표적이다.
꽃게장은 서산 지방의 전통음식으로 간장에 마늘, 생강 등 갖은 양념을 버무려 담그며 밥도둑으로 불릴 만큼 맛이 뛰어나다.
간월도와 웅도에서 생산되는 자연산 서산 굴은 몸에 미세한 털이 많아 양념이 잘 흡수되어 발효가 잘된다. 간월도 어리굴젓은 자라나는 과정이 특이해 어릴 때는 돌과 바위틈에 붙어 석화로 자라다가 완전히 자란 뒤에는 돌과 바위에서 떨어져 사는 토굴로 변했을 때 이를 채취하여 어리굴젓을 담근다.
게국지는 충청남도 서산의 일부 지역에서만 전해 내려오는 음식으로 겟국지, 갯국지, 깨꾹지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절인 배추와 무, 무청 등에 게장 국물이나 젓갈 국물을 넣어 만든 음식으로 민물새우, 농게, 돌게 등이 있어간 구수하고 개운한 맛이 매력적이다.
밀국낙지탕은 육질이 연하고 맛이 담백한 낙지를 박속과 함께 탕으로 조리해 먹는 서산의 전통음식이다. 박속의 깔끔한 맛과 낙지의 구수함이 일품이며 조선시대 낙향한 선비들이 즐겨먹던 음식이다.
우럭젓국은 서해안의 토속음식 중 한가지인 우럭젓국은 포를 떠서 소금 간한 우럭살을 햇볕에 말려두었다가 쌀뜨물에 우럭포, 무, 액젓을 넣고 끓이면서 어슷하게 썬 대파, 다진 마늘, 미나리를 넣어 한소끔 끓인 찌개이다.
영양굴밥은 서산 지역민은 특산물인 굴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발달시켜 왔는데 풍미 가득한 서산의 굴에 갖은 재료를 넣어 최고의 영양과 맛을 모두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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