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서 11% 오른 집값, 시민단체선 34%… 통계 조작 논란 불지펴 [세상을 보는 창]
부동산통계 민간기관과 현격한 격차
전 정부 통계 중 대표적 조작 의혹
소주성 효과 입증하는 소득분배지표
통계청장 교체된 직후 개선되기도
2019년 비정규직지표도 감사 대상
국민의힘 “통계조작 중대 범죄” 비판
민주 “감사원 정치보복 앞잡이” 반발
2018년 5월 당시 황수경 통계청장은 1분기 저소득층 소득이 큰 폭으로 감소해 소득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졌다고 발표했다. 하위 20% 가구소득이 전년보다 8%가량 급감했다는 내용이었다. 문재인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워 최저임금을 크게 올렸는데도 외려 소득분배 지표가 나빠진 것이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면서 통계청 발표 내용을 반박했다. 이 발언은 당시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의 보고서를 근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계청이 이런 내용의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발표한 3개월 후 황 청장은 강신욱 청장으로 교체됐다. 이후 통계청은 표본 가구 수를 확대하는 등 조사 방식 등을 바꿨다. 통계 개편 이후 소득분배 지표는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통계청장을 지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소득주도성장의 효과를 부풀리기 위해 통계청이 소득분위별 표본을 조정했다고 비판했다.
2020년 7월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 대정부질의 답변에서 문재인정부 들어 3년간 “서울 집값은 11%, 아파트 가격은 14% 올랐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민간 조사기관인 KB부동산 통계를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같은 기간 서울 집값은 34%, 아파트는 52% 상승했다고 발표한 것과 괴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사원의 부동산 관련 통계조작 의혹 조사의 초점은 국토부 산하기관인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의 집값 통계에 맞춰졌다. 민간 조사기관과의 현격한 통계 차이가 조사 방법의 한계에 의한 ‘통계 착시’ 탓이었는지, 아니면 정치적 의도에 따른 ‘통계 마사지’에서 기인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은 2019년 8월 기준 비정규직이 1년 전보다 86만7000명 늘었다고 발표했다. 문재인정부가 ‘비정규직 제로(0)’ 목표를 내걸었지만 결과가 정반대로 나온 것이었다. 그러자 당시 강 청장은 “조사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지난해 조사와 올해 조사를 동일한 잣대로 봐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강 청장의 해명이 적절했는지, 청와대 등의 개입은 없었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정치공방 자제하고 감사결과 지켜봐야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 통계조작 의혹에 대해 “나라를 좀먹는 중대한 범죄 행위”라고 지적했다. 사실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윗선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게 여권 시각이다.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통계조작은 불가능하다면서 “감사원이 야당 탄압, 정치 보복의 앞잡이가 돼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이유로 통계가 조작됐다면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범죄다. 통계조작의 실체를 규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 정권 고위 인사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면 정치적 파장이 큰 만큼 공명정대한 감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치권은 정쟁을 자제하고 조사 결과를 차분히 지켜봐야 할 것이다.
◆세계 통계조작 사례는
통계는 정책 수립의 기반이고 국정 신뢰의 토대다. 통계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잃고 정부 의도에 맞게 조작되면 그 기반과 신뢰가 무너진다. 국가신인도 붕괴로도 이어져 한 국가를 절벽으로 내몰기도 한다.
통계조작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 사례가 그리스다. 그리스는 2000년 유럽 단일통화권인 유로존 가입 기준을 맞추기 위해 통계를 조작했다. 유럽연합(EU)이 과도한 재정적자를 문제 삼아 유로존 가입이 좌초될까 우려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간 재정적자 규모를 실제(13.6%)의 절반 이하인 6%로 낮춰 발표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2009년 그리스 정부가 과거 정권의 재정 통계가 엉터리였다고 고백하면서 드러났다. 그리스가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자 실제 연간 재정적자가 12.7%라고 발표한 것이다. 이후 EU의 실사 과정에서 그리스의 실제 연간 재정적자가 13.6%라는 결과가 나오면서 그리스의 대외신인도는 땅에 떨어졌고 국가부도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아르헨티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2003∼2007년)과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디난데스 전 대통령(2007∼2015년) 시절 노골적으로 통계를 조작했다.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은 방만한 정부 지출을 위해 돈을 마구 찍어냈다. 이 때문에 물가가 급등하자 2006년 말부터 통계 조작에 나섰다. 독립기관이던 통계청(INDEC) 운영에 정부가 개입했다. 2007년 이후 정부가 발표한 물가상승률은 평균 10% 수준이었다. 그러나 민간 조사기관들은 실제 물가상승률이 2~3배 높은 것으로 추정했다. 결국 몇년에 걸친 통계조작이 2015년 대선에서 12년 만의 정권교체로 이어졌고, 국가 경제는 재정파탄 위기에 빠졌다. 2018년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통계조작 얘기가 나오면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중국이다. 통계조작의 역사가 깊고 내용도 다양하다. 무엇보다 지방정부들의 통계조작과 GDP 부풀리기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지방에서는 고위관료들이 인사평가를 잘 받으려고 통계조작에 나서는 게 관습처럼 됐다. 코로나19 관련 통계는 황당할 정도다.
중국 정부는 지난 1∼20일 발생한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6만1875명이라고 밝혔지만 비공개 내부회의에선 2억4800만명가량으로 추산됐다고 한다. 대내외에 밝힌 공식 확진자의 4000배가 넘는 수치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포기한 이후 확진자가 폭증하지만 이를 대내외에 숨기고 있다는 정황이 잇따른다. 중국 코로나 통계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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