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부동산]④ ‘전세대란’은 옛말… 역전세난 공포에 월세거래 ‘쑥’
지난해 수요 부족이 심해지며 ‘전세난민’까지 양산했던 임대차 시장은 금리 인상과 함께 순식간에 ‘세입자 우위 시장’으로 전환됐다. 작년에 10% 가까이 올랐던 전세가격은 급격히 하락하면서 올해 5% 넘게 떨어졌다. 실거래 사례를 보면 수억원씩 뚝뚝 떨어져 체결된 거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위기에 처한 집주인들이 세입자에게 도리어 월세를 지불하며 동일한 금액으로 재계약할 것을 요구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이런 가운데 월세 비중이 커진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서울 아파트 임대차 계약의 경우 월세 비중이 40%를 넘어서는 등 ‘월세 선호 현상’이 가속화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아파트 입주물량이 증가하는 만큼, 역전세난과 월세 선호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 “매물적체 심화에 전셋값 ‘뚝’”… 역전세·역월세난
28일 한국부동산원의 월간 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작년 말 대비 5.23% 떨어졌다. 2003년 관련통계 집계 이후 최대폭으로 하락했으며, 같은 기각 매매가격 변동률(-4.79%) 대비 낙폭이 더 크다.
지난해 전셋값이 9.61% 오르며 2011년(15.38%) 이후 상승폭이 가장 컸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당시 2020년 7월 도입된 임대차3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임대차신고제) 영향으로 인해 전세 매물이 줄어들었고, 전세가격은 폭등했다. 임대차 계약 연장 기한이 도래하는 올해 8월 이후에는 전월세 상한제로 보증금을 올리지 못했던 매물이 시장에 나오면서 전셋값이 대폭 오를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시장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올해 2월 전월대비 0.04% 떨어지며 하락 전환했다. 전셋값 폭등을 예상했던 8월에는 0.45% 떨어지면서 월별 기준으로는 2019년 4월(-0.45%) 이후 2년 4개월만에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이후 10월 -1.36%, 11월 -2.36% 등을 기록하며 낙폭은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가파르게 오른 기준금리가 원인이었다. 올해 초 1.00%였던 기준금리가 3.25%까지 가파르게 오르면서 전세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전세를 기피하는 세입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월세보다 저렴한 대출이자를 내며 거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던 전세계약은 한 순간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계약갱신청구권이 끝나는 8월을 기다리며 보증금을 올리려던 집주인들은 졸지에 전세금을 일부 돌려줘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소위 ‘역전세난’이 벌어진 것이다. 시중에는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할 위기에 처한 집주인들이 임대차 계약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계약상의 전세금과 실제 시세의 차익만큼 매달 월세로 돌려주는 ‘역월세’까지 등장했다.
서울 중랑구에 아파트 한 채를 보유한 채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는 A씨(30대)는 “지난 2020년에 전세계약한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해서 새로운 세입자를 찾고 있는데, 2년 전과 같은 가격으로 전세를 내놨지만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면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우리가 들어가야할 상황”이라고 했다.
◇ 전세의 월세화 지속… “중개매물 중 70~80%가 월세”
전세 인기가 시들해진 임대차시장은 빠르게 월세시장으로 전환되고 있다. 전세대출 이자를 피한 세입자들이 월세로 몰리면서다. 6개월에 한 번씩 오르는 전세대출 이자를 감당하기보다는 계약기간 동안 고정된 가격으로 월 임차료를 지불하는 것이 낫다고 본 것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들어 12월까지(지난 26일 기준)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량은 9만2151건으로, 전체 전월세 거래량 21만8878건 중 42.1%를 차지했다. 월세 비중은 2020년 31.4%에서 지난해 38.5%로 증가했고, 올해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
월세 선호 현상이 심화하면서 월 1000만원이 넘는 고가 월세 계약도 증가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중 월 1000만원 이상 월세계약은 132건으로 나타났다. 작년 같은 기간 54건 대비 2.4배로 증가한 수치다.
역전세난 심화로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떼일 위험에 놓인 점도 월세 선호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 가입자가 보증금을 떼인 건수는 올해 1~9월 총 3050건이었다. 금액으로는 6466억원이다. 지난해 연간 규모(2799건·5790억원)를 넘어선 수준이다.
은평구 D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최근 보증금 반환 문제가 부각하면서 임차인들도 전세를 꺼리고 있고, 중개인들도 안전한 전세매물만 거래하려는 추세”라면서 “최근 한 달간 중개한 매물 중 월세가 70~80% 수준이었다. 작년에는 전세가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내년에도 전국적으로 입주물량이 증가하는 만큼 역전세난과 월세 선호현상은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직방에 따르면 내년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30만2075가구(413개 단지)로, 올해(25만6595가구)보다 18%가량 증가한다. 서울에서는 강남4구에서 ▲개포 프레지던스자이 3375가구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6072가구 ▲래미안원베일리 2990가구 ▲신반포메이플자이 3307가구 등이 입주 예정이다.
임병철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2008년에도 잠실주공 1~3단지를 재건축한 엘스와 리센츠, 트리지움이 한꺼번에 입주하면서 일시적으로 역전세가 나타난 바 있다”면서 “지금도 전셋값이 약세를 보이고 있어 역전세난이 일시적으로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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