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300]에이, 쿨한 척해도 올드한 거 티 나요
손정빈 기자 2022. 12. 28. 05:57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12월 5주차 개봉 영화 및 최신 개봉작 간단평을 정리했다.
더 일찍 나오시지…젠틀맨(★★☆)
약 10년 전에 국내에서 이런 영화가 유행한 적이 있다. 주인공은 동네 양아치처럼 건들 거리지만 비상한 머리를 가졌고 잘생기기까지 한 남자. 그 옆엔 각자 자기 분야에서 최고 실력을 가졌으나 아웃사이더인 동료들. 이들이 기상천외한 작전을 짜서 부자 혹은 권력자를 골탕 먹인다. 위기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 위기마저 다 계획된 것이었다나. 유쾌하고 경쾌하게 그러면서 반전에 반전이 이어진다. '젠틀맨'이 딱 이런 영화다. 그런데 지금은 2022년이 아닌가. 아무리 쿨한 척해도 너무 낡아버렸다는 얘기다. 주지훈과 박성웅은 맞춤옷을 입은 듯한 연기를 하지만 그 맞춤옷이 촌스럽다면 그들의 뛰어난 연기력도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아슬아슬한 도전…영웅(★★★)
영화 '영웅'은 국내 최고 흥행 감독인 윤제균 감독의 클래스를 확인해준다. 러닝 타임 120분은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채워져 있고, 웃길 때와 울릴 때가 치밀하게 계산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은 아슬아슬하다. 두 가지 치명적 약점 때문이다. 하나는 스타급 주연 배우가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뮤지컬 영화라는 것. 매번 거기서 거기인 배우들이 주인공을 도맡는다고 욕하면서도 관객은 눈에 익은 배우를 더 좋아하는 법이다. 게다가 한국 관객은 뮤지컬 영화를 웬만해선 반기지 않는다. 서사가 치밀하고 역동적이길 바라기 때문에 뮤지컬 영화 특유의 성긴 이야기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잦다. 그래도 '영웅'에는 한 방이 있다. 그 강력한 펀치는 배우 나문희에게 있다. 나문희는 노래와 연기가 다른 게 아니라는 걸 딱 한 장면으로 보여준다.
슈퍼 럭셔리 스펙터클…아바타:물의 길(★★★★)
일단 돈 얘기부터 해야겠다. '아바타:물의 길'은 제작비로 약 4억 달러(약 5200억원)를 썼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미국 현지에선 더 많은 비용이 투입됐을 거로 보기도 한다. 일각에선 이 영화에 쏟아부은 돈이 10억 달러에 육박할 거라고 추정한다. 한화로 1조원이 훌쩍 넘는 액수다. 뭐가 됐든 이 영화가 역대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많은 돈을 쓴 영화라는 건 확실하다. 말하자면 '아바타:물의 길'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정점이다. 돈값은 하고도 남는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192분 간 펼쳐보이는 이 럭셔리한 스펙터클은 도무지 질리지가 않는다. 절경이고 장관이다. 문자 그대로 이건 영화다. 스토리는 클래식하고 메시지는 선명하다. 물론 이 명쾌함이 맘에 들지 않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바타:물의 길'이 자주 볼 수 있는 볼거리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식인의 사랑, 식인의 윤리…본즈 앤 올(★★★★)
어떤 관객은 애초에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일 것이다. 다른 관객은 역겹다며 중도에 포기할 수 있다. 또 누군가는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릴지 모른다. 카니발리즘(cannibalism·동족포식을 뜻하며, 인간에 적용하면 식인을 의미)은 분명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새 영화 '본즈 앤 올'(Bones and All)을 관객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진입 장벽이다. 하지만 일단 러닝 타임 130분을 견뎌낼 수 있다면,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르게 보일 것이다. 카니발리즘은 극단적 은유일 뿐 '본즈 앤 올'은 상식을 벗어난 기이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보편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익숙한 이야기를 새로운 감각으로 풀어내고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익숙한 이야기가 우리 모두 한 번쯤 겪었던 일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이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일침의 메타포…올빼미(★★★☆)
'올빼미'는 러닝타임 내내 서스펜스를 가지고 놀며 이른바 스릴러로 불리는 이 장르의 재미를 채울 줄 아는 작품이다. 그러나 얼렁뚱땅 넘어가며 정교함을 포기해버리는 대목도 있어서 완성도가 매우 높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올빼미'를 괜찮은 장르물 정도로만 평하는 건 부족하다. 이 영화엔 그 이상의 것이 있다. 바로 비유와 상징. '올빼미'는 갖가지 메타포를 통해 정치 권력과 흔히 이 권력에 지배당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민중의 관계를 매섭게 풍자한다. 게다가 주맹증을 앓고 있는 침술사라는 설정은 참신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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