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아직도 멀어 보이는 현장과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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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2022년도 며칠 후면 막을 내린다.
날이 추워지면서 마늘밭에 눈이 쌓이고 땅이 얼어붙어 들에 나갈 수 없는 우리 동네 겨울은 적막강산이다.
고려말 정도전이 전남 나주 귀양지에서 만난 늙은 농부의 말을 빌려 '자신의 힘이 부족함을 헤아리지 않고 큰소리치기 좋아하고 때가 아님을 알지 못하고 바른말 하기를 좋아한' 자신의 죄를 고백했듯 필자 역시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스스로 돌아보며 위기의 농업·농촌을 살리려면 부디 현장과 수요자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들으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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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부 농정 과제 중요하지만
농업계 등과의 소통 매우 필요
위기의 농업·농촌을 살리려면
현장의 목소리 겸허히 들어야
다사다난했던 2022년도 며칠 후면 막을 내린다. 날이 추워지면서 마늘밭에 눈이 쌓이고 땅이 얼어붙어 들에 나갈 수 없는 우리 동네 겨울은 적막강산이다. 사랑방에 군불을 때고 한해 동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본다. 강의와 칼럼 쓰기, 사과학교 운영 등은 계획에 따라 그럭저럭 좇아갔지만 ‘농촌살리기현장네트워크’ 사회적협동조합 운동은 조합원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에머슨이 제시한 성공한 인생의 기준 가운데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받고 아이들로부터 사랑받는 일’에는 부족했지만 상시분속(傷時憤俗)의 마음으로 ‘작은 정원을 가꾸고 사회환경을 개선하고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는 나름대로 애를 썼으니 후회는 없다.
지난주에 내년도 정부예산이 확정되고 기획재정부 업무보고가 있었다. 보고에서 경제위기 극복 및 재도약을 위한 ‘신성장 4.0 전략’이 발표됐는데 여기에는 도심형 복합수직농장과 간척지에 대규모 첨단온실 건설, 스마트 축산단지 조성 등 농업분야 과제도 포함됐다. 농업의 미래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걱정을 하니 고마운 일이지만 한편으로 국민 식량의 안정적 공급이 중요한 시기에 농업진흥구역의 농지에도 수직농장 건설을 허용하는 등 자칫 정책 기조가 흐트러질까 염려된다. 현 정부 출범 후 밝힌 국정과제에 기초식량 중심의 자급률 제고가 포함되고, 이를 뒷받침하고자 농림축산식품부에 식량정책실까지 신설하지 않았던가.
스마트팜은 원칙만 서면 어렵지 않게 합리적인 방안을 찾겠지만 행여 1990년대 농가를 빚더미로 내몬 유리온실사업의 실패를 반복해선 안된다. 농업 혁신을 위해선 먼저 국가가 농업분야에 어떤 역할을 부여하고 이를 위해 얼마나 자원을 배분할 것인지, 기술과 자본이 집약된 전문경영체의 육성과 영세고령농 대책은 무엇인지, 기술·자본 집약적 농업을 확산하기 위한 기업과 정부의 역할 및 농가의 참여방안 그리고 농업계는 물론 관련 기업과 국민간 소통과 공감대가 필요하다.
사실 농촌에는 일할 사람이 없어 농사를 포기하는 땅이 속출한다. 이웃에도 고령농들이 큰 농기계를 가진 몇몇 전업농에게 위탁해 농사를 짓고 있는데 대부분 산업으로서 농업 경영이 아니라 자산관리나 생계수단에 불과하다. 젊은 농업인을 확보하려고 도시 청년을 불러들이고 있으나 지속가능한 자립 기반을 구축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유형별 맞춤형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농업교육시스템을 정비해 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승계농제도를 발전시켜 가족뿐 아니라 3자 승계도 가능할 수 있도록 지원시스템을 정비해 전문경영체를 육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고향으로 돌아와 7년째 농사를 지으며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저런 말도 하고 일도 해봤지만 은퇴자가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겠는가. 고려말 정도전이 전남 나주 귀양지에서 만난 늙은 농부의 말을 빌려 ‘자신의 힘이 부족함을 헤아리지 않고 큰소리치기 좋아하고 때가 아님을 알지 못하고 바른말 하기를 좋아한’ 자신의 죄를 고백했듯 필자 역시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스스로 돌아보며 위기의 농업·농촌을 살리려면 부디 현장과 수요자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들으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정책의 타당성이나 수용성, 집행의 효율성은 결국 이해관계자와 소통·공감, 즉 현장과의 거리를 얼마나 좁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늘 근심에 찬 무거운 현장 이야기를 해도 묵묵히 듣고 함께해준 독자들에게 송구영신의 묵은세배를 드리며 새해에는 우리 모두 몸과 마음이 조금 더 넉넉하고 여유 있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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