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나눔 직접 해보니…난방취약가구 위한 온정 ‘활활’ 타올랐다
2004년부터 매년 어려운 이웃돕기 나서
중랑구 봉사는 망우교회서 단체로 참여
한집당 300장씩 5곳에 직접 전해 ‘뿌듯’
올겨울 온기 나누려면 누리집에서 신청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이 쓴 시 ‘너에게 묻는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안고 있는 연탄은 제 한몸 불태워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한다. 매년 지독한 한파가 찾아올 때쯤 어김없이 등장하는 연탄처럼 다른 이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연탄 나눔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이다.
“모두 반갑습니다. 3년째 같은 자리에서 모이니까 이젠 익숙한 얼굴도 많이 보이네요.”
13일 오전 9시, 서울 중랑구 신내동 한 골목길 앞에 사랑의연탄나눔운동과 20명 남짓한 봉사자들이 연탄 나눔을 하려고 모였다. 사랑의연탄나눔운동은 2004년부터 어려운 이웃에게 꾸준히 연탄을 전달해온 봉사단체다. 봉사자들 앞엔 새까만 연탄 1500장이 마치 담장이 세워진 듯 층층이 쌓여 있다. 사람들은 서로 안부를 물으며 두꺼운 겉옷을 벗고 검은색 앞치마와 토시를 착용했다. 두손에는 두꺼운 목장갑을 끼며 일할 채비를 단단히 한다. 이날 방문할 집은 모두 5곳으로 연탄 300장씩 배달하는 것이 목표다. 장한우리 사랑의연탄나눔운동 사업팀 차장은 “오늘은 망우교회에서 단체로 봉사활동을 신청했다”며 “보통 봉사하는 단체에서 연탄 값을 후원한다”고 설명했다.
연탄 나눔 봉사에서 제일 처음 해야 하는 것은 역할을 정하는 일이다. 연탄을 ‘나르는 사람’과 ‘쌓는 사람’을 정하는데 특히 쌓는 역할이 중요하다. 연탄을 10개씩 쌓아 올려 무너지지 않게 균형을 맞추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다. 지난해에 이미 연탄을 한번 쌓아봤다는 경력자가 손을 들었다. 쌓는 사람은 배달할 집 대문 안에 들어가 연탄 둘 자리를 봐둔다. 땅이 평평한지, 젖어 있진 않은지 꼼꼼히 확인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연탄을 한두개씩 두손으로 들어 나르기 시작한다.
“이렇게 한사람씩 연탄을 나르니까 동선이 꼬여서 시간이 더 오래 걸리네요. 이제부턴 배달할 집까지 띄엄띄엄 줄을 서서 앞 사람에게 연탄을 전달하는 식으로 속도를 높여봅시다.”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데 연탄을 잡은 두손은 감각이 없을 정도로 꽁꽁 얼었다. 처음엔 봉사자들끼리 부딪히며 우왕좌왕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손발이 착착 맞는다. 자녀와 함께 봉사하러 왔다는 정진주씨(55)는 “지난해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왔었는데 또 오고 싶다고 성화를 부려 올해도 참여하게 됐다”며 “배달이 다 끝나면 집주인 어르신이 나와서 차곡차곡 쌓인 연탄을 바라보는데 이때 입가에 번지는 행복한 미소를 보고 있자면 괜스레 뿌듯해진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시간에 걸쳐 봉사자들이 제일 먼저 연탄 300장을 채워놓은 곳은 연규환씨(87) 집이다. 연씨는 연료비 부담을 줄이려고 20년 넘게 연탄으로만 겨울을 나고 있다. 봉사자 가운데 한명이 이날 난생처음 연탄을 봤다고 이야기하자 연씨는 직접 거실 한가운데에 있는 연탄 난로를 보여 주겠다며 나섰다. 연씨가 난로 뚜껑을 열자 발갛게 타고 있는 연탄이 보인다. 연씨는 “연탄 3개를 한 줄로 쌓아놓고 한번에 태우는데 아침에 새것으로 갈아두면 해질 때쯤 가장 밑에 있는 연탄이 새하얗게 재로 변해 새로 교체해야 한다”며 “난로 가까이 있어야 열기가 느껴지니 날이 추워질수록 여기 딱 붙어서 생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난로 위에 물을 가득 채운 주전자를 올려두고 달달한 커피를 타 마시기도 하고, 가끔 가래떡을 올려 구워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날 봉사는 오후 1시에 끝났다. 봉사자들은 몇시간째 쉬지 않고 연탄을 나르며 뻐근해진 허리를 두들기며 꼼꼼히 뒷정리까지 마쳤다. 봉사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사랑의연탄나눔운동 누리집(lovecoal.org)에서 원하는 날짜를 골라 신청하면 된다.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봉사에 참여할 수 있고, 평일에도 신청자가 많으면 상시로 운영된다.
장 차장은 “우리나라엔 아직도 연탄으로 추위를 이기는 집이 10만가구나 되지만 최근엔 석탄 생산량도 줄어 겨우내 쓸 연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겨울 이웃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눌 기회를 가져보기를 추천한다”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서지민 기자, 사진=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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