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또 “시기상조”라는데…‘17년째 동결’ 의대 정원 이번엔 늘릴까
교육부가 최근 보건복지부에 이례적으로 공문을 보내 의대 정원을 늘려달라고 공식 요청한 것으로 27일 확인됐으나, 정부가 17년째 연간 3058명으로 동결된 의대 신입생 정원을 늘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의 인구 대비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비 절반 수준이고,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늘면서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있다. 다만 의사단체의 반발을 넘고 지역마다 다른 의대 증원·신설 요구를 조율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27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기관 현황 등을 보면, 지난 연말 기준 한국의 인구 1000명 당 활동 의사 수(한의사 제외)는 2.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3.7명)의 56.8%였다. 서울(3.4명)을 뺀 나머지 지역에서는 1.8명에 그쳤다. 고령화로 의사 한명에 쏠리는 의료 수요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최근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에서 국내 의사 수가 의료 수요에 비해 2025년 5516명, 2035년 2만7232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6년 총인구에서 만65살 이상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근골격계 등 진료 빈도가 잦은 질환이 늘어나는 점 등이 추계에 반영됐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등 전공의들이 지원을 꺼리는 ‘비인기 과목’에서는 대형병원 응급실이 문을 닫는 등의 의료 공백이 현실화 되고 있다. 대한병원협회가 지난 7일까지 전국 수련병원 67곳의 내년도 전반기 전공의를 모집한 결과, 환자 생명에 직결되는 ‘필수 진료과목’으로 분류되는 소아청소년과는 201명 모집에 33명(16.4%)만 지원했다. 필수 진료과목인 외과 역시 200명 모집에 131명(65.5%) 지원에 그쳤다.
의사가 부족해진 데는 전국 의대 신입생 정원이 17년째 묶여있는 탓이 크다. 전국 간호대 정원은 2007년 1만1206명에서 내년 2만3183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나는 반면, 의대는 2006년 이후로 매년 3058명만 뽑고 있다. 이에 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거듭 내놓고 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의사인력 확충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된다. 코로나19 유행 상황에 따라 가능한 조기에 의료계와 (인력 증원을) 적극 협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의 의지가 실제 의사 정원 확대로 이어지려면 의사 단체를 설득해야 한다. 지난 2020년 정부는 의대 신입생 정원을 2022년부터 매년 400명씩 늘려, 10년 동안 의사 4000명을 추가 양성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 등이 의사 파업으로 반발하자 복지부는 정원 확대를 중단하고,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정협의체를 통해 지역·필수의료 육성 방안 등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의협 쪽은 관련 논의가 여전히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의협 관계자는 <한겨레>에 “전공의 등이 필수 의료를 지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뒤 인원(의사 정원) 조정을 해야 한다. 코로나19 대응에도 어려움이 커, 정부가 코로나19 안정화 선언을 한 뒤 의료계와 논의에 나서는 게 맞다”고 말했다.
지역별, 대학별 정원 배분에 대한 문제 역시 풀어야 한다. 기존에 의대가 없던 지역이나 대학에서는 의대 신설을, 의대가 있던 곳에서는 정원 확충을 주장하고 있다. 김진현 서울대 교수(간호학)는 “정원 40∼50명의 소규모 의대 정원을 늘리고, 교육여건이 양호한 국립대 6·7곳에 의대를 신설하면 연 1000명 정도의 정원을 늘릴 수 있다. 신설·증원을 병행해 의사 부족 문제의 급한 불을 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필수의료 분야 인력 부족을 해소하려면 의사의 ‘양적 확대’ 외에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전공의들의 지원 기피 과목에 대한 의료 수가를 조정하는 유인책과 함께, 병원이 해당 의료진을 더 많이 고용하도록 강제하는 조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행 의료법·의료법 시행규칙 등은 300병상 이하 종합병원이 내과·외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중 3개 진료과목에 전속 전문의를 두고, 입원환자에 비례한 의사 정원을 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어 의무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인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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