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도 김환기도 힘 못써… 미술시장 한파 본격화

정상혁 기자 2022. 12. 2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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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유찰·취소 잇따라 한파 예고
경기 침체로 신규 고객 유입 줄고
낙찰 총액 지난해보다 30% 감소
“조정기를 건전성 강화 기회로…
명작 발굴하고 작가군 다각화해야”
지난 20일 서울옥션 경매에 오를 예정이었으나 출품이 취소된 박수근 '시장의 여인'(45.5×37.8㎝). 여인의 표정이 어둡다. /ⓒ박수근연구소

올해 경매 시장 마지막 대어(大漁)로 평가받던 김환기의 1970년작 푸른점화(‘무제’) 출품이 갑자기 취소됐다. 낙찰가 65억원이 예상되던 작품이었다. 2005년 9억원에 팔려 국내 미술품 최고 낙찰가 기록을 썼던 박수근의 ‘시장의 여인’ 역시 경매 며칠 전 소장자가 매물을 거둬들였다. 제값을 못 받을 우려가 클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 20일 열린 서울옥션 마지막 메이저 경매 낙찰률은 69%였다.

이튿날 열린 케이옥션 경매에서도 찬바람은 이어졌다. 추정가 30억원이 매겨진 김환기 1958년작 ‘새와 달’은 시작가 16억원에 경합 없이 팔렸다. 최고 추정가 5억원짜리 유영국 1991년작 ‘Work’는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아 유찰됐다. 낙찰률 74%. 경매는 낙찰 결과가 곧장 공개되는 대표적 거래 장소이기에 경기 수준을 드러내는 바로미터다. 한국 양대 미술품 경매 회사의 부진이 미술 시장 한파를 예고한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던 한국 미술 시장이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상반기만 해도 경매 신고가가 속출하고, 갤러리 앞에는 ‘텐트 부대’가 등장했으며,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의 서울 개최로 들뜬 분위기가 역력했다. 증명할 수 없는 매출액을 합산한 것이기에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사상 첫 미술품 거래 시장 1조원 시대를 예측하는 전망도 나왔다. 지난 3월 서울옥션은 “1분기 오프라인 경매 총액은 지난해 동기 대비 약 184억원 증가해 85% 상승세를 보였다”며 “시장 호황이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26일 예술경영지원센터 ‘2022 미술시장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경매 낙찰 총액은 2229억원, 12월 경매 결과까지 반영하더라도 지난해(약 3385억원)보다 약 30% 후퇴한 수치다.

경기 침체로 거품이 빠지며 신규 고객의 진입이 사실상 멈췄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금리 인상, 가상 화폐 폭락 등의 여파로 돈줄이 얼어붙으면서 대표적 사치품 시장인 미술계로도 충격파가 들이닥쳤다는 것이다. 연초만해도 미술계 새 먹거리로 여겨지며 전방위 확장하던 NFT(대체불가토큰)는 가격 급락을 거듭하며 종적을 감춘 모양새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장기적 안목 없이 시세 차익을 위해 불나방처럼 뛰어든 컬렉터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이번 조정기를 국내 시장의 건전성 강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낙찰가 64억2000만원으로 올해 국내 경매 최고가인 일본 구사마 야요이 그림 '호박'(위)과 17억원으로 한국 작가 최고가에 판매된 이우환 '점으로부터'. /서울옥션

반면 외국 경매 시장은 지표상 여전한 호황을 누리고 있다. 크리스티는 지난달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의 ‘폴 앨런 컬렉션’으로 단일 경매 역대 최대인 낙찰가 2조원을 기록하는 등 올 한 해 11조원 대박을 터뜨렸다. 소더비와 필립스 역시 역대 최대 수익을 공표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측은 “국내 미술시장이 외부 여파에 빠르게 잠식되는 건 불황에도 버텨낼 메가 컬렉션 경매가 없고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는 블루칩 작가군이 한정돼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환기·박수근 등을 필두로 한 근현대 작가, 이우환·박서보 등 단색화 원로만으로는 꾸준한 수요를 창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올해 국내 최고 낙찰가 역시 김환기(17억원), 이우환(17억원) 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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