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전셋값… 입주물량 쏟아지는 내년이 더 위험

정순우 기자 2022. 12. 2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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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지역 10% 넘게 하락… 보증금 분쟁 늘어날 우려

대구 수성구 ‘힐스테이트황금동’ 84㎡(이하 전용면적) 전셋집이 지난달 3억6000만원에 거래됐다. 1년 전만 해도 최고 6억원에 계약서를 썼는데, 거의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들어 전세 수요가 급감한 데다, 대구 지역 신규 입주 아파트가 작년보다 20% 늘면서 전세 공급은 풍부했기 때문이다. 수성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대출 금리가 너무 높아 전세를 구하는 사람은 없는데 매물은 넘쳐난다”며 “보증금을 돌려줄 현금이 없는 집주인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집값뿐 아니라 전셋값 하락세도 가팔라지고 있다. 특히 내년 신규 입주 물량이 많아, 전셋값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세입자 입장에선 좋은 일이지만, 돌려줄 보증금이 부족한 집주인들은 애를 태우고 있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면 보증금을 못 돌려 받은 세입자의 피해가 커지고 관련 분쟁도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고금리 직격탄, 반 토막 난 전셋값

27일 한국부동산원 월간 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월까지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 변동률은 -5.23%를 기록했다. 아직 한 달 남았지만 이미 연간 기준으로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04년 이후 최대 하락 기록을 갈아치웠다. 세종(-15.47%), 대구(-10.93%), 인천(-10.2%) 등은 10% 넘게 떨어졌다.

하락 폭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 변동률은 지난 6월 -0.08%였지만, 지난달에는 -2.36%였다. 개별 단지 중에는 전셋값이 반 토막 난 경우도 있다. 인천 연수구 ‘더샵센트럴파크2차’ 146㎡는 작년 11월 15억5000만원에 거래됐는데, 지난달엔 7억2000만원에 계약됐다. 주거 수요가 가장 많은 서울 강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강남구 ‘래미안블레스티지’ 59㎡ 전세는 올해 6월 12억원에 거래됐지만 지금 호가(呼價)는 6억원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전국 주요 지역 올해 아파트 전세가 변동률

아파트 전세는 수요가 많아 웬만해선 떨어지지 않는다. 2004년부터 작년까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이 하락한 것은 2004년과 2018~2019년 3년뿐이었다.

최근 전셋값이 유독 큰 폭으로 떨어지는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2020년 주택임대차법 개정으로 전셋값이 비정상적으로 급등한 데 따른 후유증과 고금리가 겹친 영향으로 분석한다. 2020년 7월 계약갱신청구권(2+2년)과 전·월세 상한제(임대료 인상률 5%로 제한)를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법이 시행되면서 전세 매물이 급감했다. 당시 재계약했던 전세 물건들이 이번에 대규모로 풀리면서 공급 과잉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최근 3개월 사이 3만8925건에서 5만4103건으로 39% 급증했다. 반면 대출 금리 인상 여파로 전세 대신 월세를 찾는 이들이 늘면서 전세 수요는 감소 추세다. 전세수급지수는 7월 91.3에서 지난달 67.1로 떨어졌다. 이 숫자가 작을수록 공급 대비 수요가 적다는 뜻이다.

◇내년이 더 걱정…대구·인천 입주 역대 최다

내년 전국적으로 아파트 입주 물량까지 늘면서 전셋값 하락세가 더 가팔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입주가 많으면 전세 공급이 늘어나기 때문에 전셋값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내년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35만2031가구로 올해(33만2560가구)보다 5.9% 늘어난다. 올해 전셋값 약세가 두드러진 인천(4만4984가구)과 대구(3만6059가구)는 관련 조사가 시작된 2000년 이후 23년 만에 가장 많은 아파트 입주가 이뤄질 예정이다. 빅데이터 업체 아실이 추산한 연간 적정 입주 물량은 인천이 1만4824가구, 대구는 1만1828가구다. 적정 수요 대비 3배가량 많은 아파트가 공급된다는 의미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지난 정부 후반기에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아파트 인허가를 늘렸던 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전세 수요가 둔화한 가운데 입주 물량이 집중된 지역은 전셋값이 큰 폭으로 내리면서 집주인이 신규 세입자에게 받는 보증금으로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충당하지 못하는 ‘역전세’가 확산할 수 있다”며 “임대인은 여유 현금을 마련하고, 세입자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보증보험에 가입해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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