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관용과 조화

이정엽 국립부산국악원장 2022. 12.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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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엽 국립부산국악원장

지금이야 한 해에도 몇 번이고 갈 수 있는 해외여행이지만 1989년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가 시행되기 이전에는 다양한 국가와 문화를 접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1980년대 중·후반 올림픽과 같은 큰 규모 국제 행사들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우리나라는 경제 발전은 물론이거니와 문화 향유 수준도 급속한 상승세를 탔다. 또한 이 시기 경제 문화의 변화와 더불어 민주화에 대한 갈망은 민주주의 성장을 앞당겨 선진국 국민으로서 시민 의식을 한껏 고양시키고 있었다.

이즈음 대학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입학 후 첫 교양 수업에서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에 대한 질문이 주어졌다. 단순하게 사전적 의미에 집착하고 있던 나는 시간이 한참 지난 이후 그 질문이 품고 있는 의미를 깨달았다. 앞선 시대적 배경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한 계몽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기본 원칙 또는 목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 즉, 다원주의는 관용(tolerance)을 필수로 한다. 유일무이한 절대자에 대한 믿음과 그로부터 부여받은 우월감을 내려놓고 다른 종교를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서구에서 관용은 종교의 자유를 이끌어 냈다. 한발 더 나아가 동양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은 관용과 더불어 조화를 강조한다. 공자는 “군자는 조화를 추구하고 획일적이지 않으며, 소인은 획일적이고 조화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했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조화를 이루되 같아서는 안 된다! 공자가 말하는 군자의 덕목이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풍류 음악에서 화이부동의 철학을 찾을 수 있다. 지금도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 ‘풍류’는 짧은 문장으로 정의하기 쉽지 않지만, 사회관계 속에서 살며 자연과 더불어 글 음악 그림 등을 즐기며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맥락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다. 사회관계가 단절된 경우는 은둔에 가깝고 자아 성찰 없이 단순히 자연과 문학 그리고 예술을 즐기는 것을 우리는 풍류라고 하지 않는다. 즉 글과 음악 등의 수단을 통해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고, 그 관계 속에서 스스로 정체성을 찾으며, 궁극에는 조화를 이루고자 했던 것이 풍류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즐겼던 음악을 풍류 음악, 또는 줄여서 풍류라고도 한다. 주로 학식과 견문이 있는 계층이 즐기던 음악으로 가장 많이 연주했던 악기는 금(琴) 즉, 거문고였다. 이러한 까닭에 거문고 악보가 가장 많이 전해지고 있으며 그중에는 1572년에 만들어진 악보도 남아있을 정도이다. 또한 조선 시대 회화에서도 뒤뜰이나 자연 속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선비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조선 중기 문인화가 이경윤의 ‘월하탄금도(月下彈琴圖)’에서는 달을 바라보며 거문고를 타고 있는 선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자면 줄이 없는 거문고 위에서 노니는 손가락의 모양새가 마치 그가 가고자 하는 관념의 세계를 향한 발걸음이지 않을까 하는 느낌마저 든다.

이렇듯 거문고 연주가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행위에 가깝기에 보통은 혼자서 연주했지만 다른 악기와 같이 연주하기도 하는데, 거문고를 중심으로 다른 악기와 함께 연주하는 것을 ‘줄풍류’라고 한다. 줄풍류의 대표적인 곡은 ‘영산회상’과 ‘도드리’ 등이 있으며 악기로만 연주하는 이들 곡과 달리 악기 반주에 맞춰 시조를 가사로 부르던 ‘가곡’ 또한 대표적인 풍류 음악이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거문고 연주 그 자체도 그렇지만, 다른 악기와 같이 연주하는 풍류 음악을 듣고 있으면 화이부동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독특한 음색의 다양한 악기들은 자신의 소리만 집중하거나 내세우지 않고 다른 악기 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인다. 이는 마치 관용을 통해 조화를 추구하는 화이부동의 철학을 소리로써 들려주고 있는 것 같다.


다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 또한 다름 속에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달라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동일한 개체는 독립된 개체가 될 수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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