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와 지중해 잇는 바닷길… 폭 700m 해협서 제국이 명멸했다

주강현 2022. 12.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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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강현의 해협의 문명사]보스포루스 해협
보스포루스 해협 양옆으로 튀르키예 최대 도시이자 세계적 관광지인 이스탄불 시가지가 들어서 있는 모습. 이 해협을 통해 마르마라해가 흑해와 연결되고 유럽과 아시아가 만난다. /AP 연합뉴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해협 관광지’는 보스포루스해협이다. 튀르키예 방문객 대부분이 이스탄불을 방문하며, 이스탄불의 핵심이 보스포루스해협이기 때문이다. 최단 폭이 서울 시내를 관류하는 한강(약 1㎞)보다도 좁은 700m다. 강처럼 흘러가지만 최대 수심이 110m에 달하므로 만만한 해협이 아니다. 거친 역사의 격랑을 안고서 동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 등이 해협에서 명멸해갔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하여 지중해의 마르마라해와 흑해가 연결된다. 동시에 유럽과 아시아가 해협에서 조우한다. 인구의 3분의 2는 역사·상업지구인 유럽지구, 3분의 1은 동쪽 아시아지구에 산다. 그런데 애써 아시아와 유럽을 구분하는 방식은 유럽 중심 사고이며, 그냥 해협이 가로막을 뿐 하나의 유라시아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인식은 늘상 튀르키예가 ‘유럽인가 아시아인가’라는 해묵은 정체성 논쟁과 연결되어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 양옆으로 튀르키예 최대 도시이자 세계적 관광지인 이스탄불 시가지가 들어서 있는 모습. 이 해협을 통해 마르마라해가 흑해와 연결되고 유럽과 아시아가 만난다. /AP 연합뉴스

이스탄불은 기원전에 비잔티온(나중에 비잔티움)으로 건설된 이래로 문명의 십자로로 기능해왔다. 아나톨리아 반도를 거쳐온 실크로드의 마지막 종착역이다. 해협을 건너면 곧바로 로마로 들어간다. 반대로 로마제국에서 건너온 물산이 이스탄불을 거쳐 페르시아만의 바그다드와 바스라로 넘어가며, 거기에서 배에 실려 인도나 중국으로 갔다.

동로마의 소멸은 흔히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로 묘사된다. 십자군전쟁 이래로 기독교도의 거친 공세가 훑고 지나간 터전이 이교도의 손에 의해 함락되는 최대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이 한판 붙은 1453년의 공성전이 보스포루스해협에서 벌어졌다. 이후 정교회의 아야소피아가 이슬람 모스크로 개조된 것이 상징적 징표다. 오스만제국은 이슬람 세계의 중심으로 이스탄불에 뿌리내렸고, 동지중해는 물론이고 흑해도 제국의 판도 내로 접수되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최후가 비장했던 만큼 오스만제국의 최후도 비장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이 패배하자 해협은 영국, 프랑스, 그리스 등 연합국의 손으로 넘어갔으며, 이른바 중동으로 나아가는 교두보로 활용되었다.

보스포루스해협을 이스탄불 중심의 국지적 공간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해협은 내해인 마르마라해로 이어지고, 다시 다르다넬스해협을 통과하여 에게해로 연결된다. 다르다넬스해협은 고대 트로이가 있던 문명의 거점으로 ‘헬레의 바다’라는 뜻의 헬레스폰토스해협으로 불렸다. 트로이전쟁의 신화와 역사가 다르다넬스해협에 각인되어 있다. 다르다넬스해협도 최소 폭은 1.2㎞에 불과하며 서쪽의 유럽, 동쪽의 아시아를 연결한다. 아나톨리아 반도가 유럽 대륙과 2개의 해협을 통하여 조우한다. 흑해에서 보스포루스, 다르다넬스 두 개의 해협을 관통하여 에게해에 당도하는 것이다.

해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북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전혀 다른 역사가 펼쳐진다. 북쪽의 흑해는 케르치해협을 통하여 아조우해와 연결된다. 케르치해협은 한국인에게는 낯선 명칭이다. 케르치 동쪽은 러시아, 북쪽과 서쪽은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와 면한다. 아조우해는 오스만제국의 관할에 있던 시절에는 ‘물고기해’로 불렸다. 우크라나이나-러시아 전쟁의 격전지가 모여 있는 곳이다.

이스탄불 하기아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 전경. 뒤로 보스포루스 해협이 보인다. 동로마 제국 시절 성당으로 지어졌으나 오스만 제국시절 모스크로, 이후 1935년 박물관으로 사용되다, 2020년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시로 다시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다./게티이미지 코리아

케르치해협 역시 보스포루스해협만큼이나 간격이 좁다. 여기에 놓은 케르치 대교(일명 크림대교)는 동쪽의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연결한다. 해협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본디 1943년에 나치가 건설을 시작했지만 미완성으로 끝났다. 구소련 시절에도 끊임없이 해협을 이으려 노력하다가, 러시아가 크림을 점령한 이후 2018년에 다리를 놓았다. 우크라이나가 지난 10월 이 다리를 일부 폭파하여 상징성을 과시하기도 했다.

아조우해가 오스만제국의 내해로 존재했을 당시, 슬라브의 백인 노예들이 흑해를 거쳐서 이스탄불로 팔려왔다. 오늘날 동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백인 노예가 이스탄불의 할렘까지 흘러온 것이다. 20세기에 소비에트가 성립되면서 우크라이나를 포함하여 북쪽은 전일적인 ‘소련의 바다’로 변했다. 그렇지만 이스탄불이 전략적으로 존재하는 한 흑해에서 지중해로 가는 뱃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소련이 해체되고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아조우해와 흑해 연안에서 전쟁을 벌이는 상황은 새로운 문명의 부침이 해협에서 다시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3중 지중해가 3개의 해협으로 연결되는 전략적인 곳이다. 케르치-보스포루스-다르다넬스 3개의 해협이 아조우해-흑해-에게해를 연결한다. 단순하게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동서 문명의 교차로를 뛰어넘어 북쪽의 흑해 문명권과 남쪽의 지중해 문명권을 연결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튀르키예의 전략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러시아 함대가 보스포루스해협을 빠져나가려면 튀르키예의 감시와 규제를 받아야 한다. 목줄을 쥐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튀르키예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날 중국도 해협을 통과하여 흑해로 진입하려고 다양하게 노력하고 있는데 그들 역시 튀르키예의 눈치를 봐야 한다. 게다가 일대일로의 육지 노선 종착역의 하나는 결국은 아나톨리아 반도이고, 이스탄불을 배제하기 어렵다.

여기처럼 해협과 내해가 삼중으로 연결되는 곳은 지구상에 없다. 3중의 해협과 세 바다의 운명적 만남은 전적으로 지구의 지질 변화라는 장기 지속의 산물이다. 간빙기에 빙하가 녹으면서 흑해와 아조우해가 만들어졌고, 해협도 탄생했다. 한창 전쟁 중인 아조우해는 수심이 얕아서 항해가 쉽지 않다. 수많은 물고기가 탄생하고 서식하는 보육장이기도 하다. 흑해에서 살아가는 많은 물고기를 키워내는 생명의 바다가 전쟁 때문에 죽음의 바다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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