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 다시 돌아온 계묘년
문익점은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공민왕을 폐하려는 데에 맞서다가 강남 지역으로 유배되었고, 귀국길에 목화씨를 몰래 가지고 들어와 고려에 보급시켰다고 알려져 왔다. 그의 행적에 대한 고려사 열전의 기록은 이와 상당히 다르지만, 조선 초기부터 이미 미화하고 가필되기 시작한 이야기가 여러 기록에 담기며 점차 사실로 여겨지게 되었다.
문익점의 실제 행적이 어떠했든, 목화씨를 붓두껍에 숨겨 왔다는 일화가 사실이든 윤색이든, 심지어 삼국시대 유물에서 면직물의 흔적이 일부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목화의 보급에 기여한 그의 공로는 부인될 수 없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지고 들어왔고 장인 정천익과 함께 이를 우리 토양에 맞게 대량으로 재배하여 활용하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우리나라에 목면이 일반화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복 생활사는 문익점의 목화씨 도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363년, 계묘년의 일이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오랫동안 60진법으로 연도를 표기해 왔다. 그래서 끝없이 순환되는 시간의 흐름 가운데 주기적으로 같은 갑자가 되돌아오는 회갑(回甲)에는 큰 의미가 부여된다. 2023년은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온 뒤 열한 번째 돌아오는 계묘년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함으로써 유럽인의 세계관을 180도 바꿔놓은 1543년 이후 여덟 번째, 미국의 독립으로 구대륙 중심의 세계질서에 획기적 변화가 일어난 1783년 이후 네 번째, 그리고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이동의 혁명이 시작된 1903년 이후로는 두 번째 계묘년이다.
이번 계묘년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휴대전화로 간편하게 주고받는 새해 인사처럼 올해와는 달리 복된 일들로만 가득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덕담은 덕담일 뿐, 얼마 뒤 열릴 계묘년이 어떤 일들로 채워질지 알 수 없다. 코로나로 닫혔던 하늘길은 얼마나 더 많이 열릴까? 미국이 주도해 온 세계질서는 어떻게 전개될까? 지구를 병들게 할 정도로 내달려 온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 어떤 변화가 가능할까? 목화 같은 오래된 작물을 대체하는 신소재들이 우리 생활을 또 어떻게 바꿔놓을까? 돌아온 계묘년을 맞이하며 지나간 계묘년들을 불러내 본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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