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스승’ 된 조수미 “성악은 모든 걸 불태워야 하는 직업”
“이 아리아는 교태를 부리면서 노래할 수 있으면 더 부려도 돼요(웃음).”
27일 서울 마곡 LG아트센터. 후배 소프라노 정은지(28)가 부르는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를 듣고 있던 소프라노 조수미(60)가 급하게 노래를 멈춘 뒤 이렇게 말했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돈 파스콸레’ 여주인공의 아리아였다. 조수미는 “이 오페라의 여주인공은 이미 자신이 재기발랄하고 매력 넘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여기선 애교와 색기를 부리고 뻔뻔해져도 된다”고 조언했다. 이 말에 관객 360여 명도 폭소를 터뜨렸다.
조수미가 세계 데뷔 36년 만에 한국서 첫 마스터클래스를 열었다. ‘거장의 수업’이라는 뜻의 마스터클래스는 클래식에서 일가를 이룬 연주자나 성악가의 공개 수업이다. 공연이 아니라 수업이었지만 ‘일일 스승’이 된 조수미를 만난다는 소식에 일찌감치 매진을 이뤘다. 조수미는 1986년 이탈리아 명문 트리에스테 극장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로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이날 조수미는 젊은 성악가 6명의 노래를 들으면서 4시간 동안 발음과 발성, 연기를 지도했다. 무대 곁에 의자가 놓여 있었지만, 거의 앉는 법도 없었다. 후배들이 노래할 때는 복도 한구석에서 음량(音量)을 체크하면서 들었고, 노래가 끝나면 피아노를 직접 쳐주거나 후배들의 손을 붙잡고 무대를 누비면서 온몸으로 가르쳤다. 가르칠 때에도 조수미는 조수미였다.
이날 조수미에게 지도받은 성악가는 10대 여고생부터 30대 테너까지 다양했다. 최연소 참가자인 여고생 소프라노 김세화(16)양은 교복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와 모차르트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리아를 불렀다. 조수미는 “이 나이 때는 화초나 아기를 다루듯이 사랑스럽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대를 다치지 않도록 발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5년 전 성대 결절의 후유증으로 고심하는 30대 테너에게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줄이고 음악 자체를 즐길 필요가 있다”며 어깨를 두드렸다.
조수미의 레슨은 철저하게 현장형, 실전형이라는 점이 특징이었다. 후배들이 뻣뻣하게 굳은 자세로 노래하면 윙크하거나 소품을 던지는 시늉을 하면서 연기 시범을 보였고, 음정이 조금이라도 낮아지면 곁에서 함께 노래하면서 곧바로 교정에 나섰다. 무엇보다 강조한 건 정확한 발음. 그는 “세계 무대에 서려면 외국 관객들이 눈감고 들었을 때 ‘우리나라 사람인가’ 하고 착각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스터클래스가 끝난 뒤에도 현장 신청을 통해서 두 명의 노래를 더 듣는 ‘즉석 오디션’도 열었다.
조수미는 인터뷰에서 “딱딱한 격식을 차리기보다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동안 음반과 공연 등 바쁜 일정 때문에 미뤄 왔는데 밀린 숙제를 드디어 해결한 기분”이라며 웃었다. 후배 성악가 지도와 후원은 그의 최근 화두 가운데 하나. 그는 “앞으로도 꾸준히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내후년에는 파리에서 제 이름을 딴 콩쿠르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말미에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성악은 사랑과 열정을 모두 불태우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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